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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책장봄먼지 Nov 20. 2024

마녀를 주문합니다

『마녀가 되는 주문』을 읽고

나는 가끔 내가 '마법 소녀'인지 '마녀'인지 헛갈린다. 위로가 필요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마법 소녀'처럼 ( 혹은 '마법 아주머니'처럼) 살뜰한 위안과 경청을 안겨 주다가도 그 위로의 길이가 늘어지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내 시간 대신 남의 시간에 공을 들인다는 생각에 점점 조급해지고 내 표정은 점점 '마녀'로 변해 간다.


'대체 언제까지 들어줘야 해, 매번 똑같은 이야기를? 나도 힘든데 말이야.'


그리고 나와 비슷한 경로를 걷다가 저 위로 '승승장구', 혹은 저 멀리 '탄탄대로'로 가 버린 사람들을 볼 때면 묘한 기분을 느끼곤 한다. 나는 '왜'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을까. 노력이 부족했을까, 시간을 더 들여야 했을까. 아니면 '운'이 좀 더 '많이', 아주 많이 필요했던 것일까.



여기, 옥상 위로 올라온 '서아'가 있다. 3학년(총 1~7학년)인 서아는 불안하다.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남들은 잘만 앞서가는 것 같은데 어째 슬슬 뒤처진다. 사실 이 학교에 들어오기만 하면 미래는 보장된다고 했다. 영재들이 모인 곳. 단, 연구 주제를 잘 정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체 후원을 받는다. 학생들 모두 어마어마한 학비를 지원받지만 졸업 때까지는 유예다. 그 유예가 때론 희망이고 때론 감옥이다. 졸업 때까지 갚지 못하면... 모든 지원은 고스란히 개인의 빚이다.


그래서 서아는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거기에 끝이라는 미래가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려는 순간. 마법 소녀 복장을 한 선배 '현'이 나타난다. 그리고 제안한다.

 

"나는 새로운 마법 소녀를 찾고 있어."

 

삶에서 '절정'의 순간보다 '절벽'의 순간'(29)을 더 자주 맞닥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게 소설 주인공 '서아'였을 수도, 아니면 서아를 닮은 '또 다른 서아'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돌려 보자. 다른 것들이 보인다. (굳이 타인의 절벽과 낭떠러지를 곰곰이 볼 필요는 없으니까. 거기서 누가 아슬아슬 매달려 있든 말든 '나 알 바' 아니라고 잠시 눈을 감아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

절벽 위에 선 이들이 보이는 대신 저 너머의 '별구름', 달구름을 보자. 어쩌면 그곳에 내가 닿을 수 있을지도? 열과 성을 다해, 모두를 밟고 오르고 나면 나도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를지도? 그래, 저 너머는 찬란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안 될까? 아니, 우선 내 사람들에게만 다정하면 안 될까? 아니 아니, 그것도 여의치 않다면, 그냥 모든 것을 몰랐다고 해 버리면 되지 않나? 보이지 않았다고 해 버리면 되지 않나?


진실이 궁금하기보다는, 영영 모르고 싶다는 게 게 서아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알지 못하는 것에는 고민도 책임도 필요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외면하는 데는 변명이 필요했다. (129)


'서아'는 게임 속 관리자가 된다. '마법 소녀'가 되는 는'운'을 누린다. (그것이 '운'이 맞다면...) 안 그랬다면 연구 주제를 정하지도 못했을 테고, 핵심 연구원으로 기업의 선택을 받는 일도 꿈꾸지 못했을 텐데... 그러나 가상 서버에 발을 조금씩 더 내디딜수록 무언가 이상하다. 15년 전의 그 묘령의 사건도 떠오른다. 자신은 그저 '마법 소녀'만 하면 되는 줄로 알았는데 이 시스템에 접속한 사용자나 전임 관리자의 잔영이 다가온다. 그들은 가상 서버를 통해 삶과 죽음까지 가르려 든다. 어쩌면 '서아'가 괴물을 막는 역할이 아니라 괴물을 '대 주는' 역할을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이러다가는 마법을 부리는 일이 아니라, 마녀가 되는 주문을 배워야 할 것만 같다. 서아는 게임 아래 숨은 암호 같은 세상 속 비밀에 몇 번이고 부딪친다. 그것을 향해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며 답이 없거나 끝이 없는 이 경쟁 속에서, 서아는 혼란을 느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GPS를 제대로 수신하고 있는 걸까?)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어. 과장이라고 생각했지. (...) 그렇게나 대단한 선택이라면, 마주치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을 거라고도 믿었어. 내가 제대로 된 방향을 골랐는지 아닌지 의심할 필요조차 없이 분명할 거라고. 아니더라. 세상에는 종착역에 가까워지고서야 표를 잘못 끊었다는 걸 깨닫는 문제가 있는 거야. 그런데 시간이 너무 늦었고 돈도 바닥난 탓에 돌아갈 표를 구할 수가 없는 거지. 나는 이제 7학년인데. 이룬 것도 없고 너무 지쳐 버렸는데."

서아는 (이선의 말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119~120)


서아는 전임자가 그랬던 것처럼 게임 괴물을 처단하며 가상 서버를 누빈다. 그것이 정해진 서아의 임무. 그런데 괴물은 게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처에 괴물이 깔렸다. '능력'만을 따지는 학교가 그렇고, '효용'만을 따지는 기업체가 그렇고 '쓸모'만을 따지는 이 세상 자체가 그렇다.


서아는 쓸모, 라는 말이 싫었다. 2학년 말부터는 더 그랬다. 초라해지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어디든 쓰일 구석을 찾아 들어가는데, 자신만 덩그러니 남은 기분이 들어서. 지금은 처지가 나아졌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이게 다 운이라는 생각을 하면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75)


마녀가 되는 주문. 가상 서버가 열리는 주문. 괴물의 '아가리'에 들어가거나 괴물의 몸체를 파괴하는 주문. 정의를 외치거나 정의는 역시 그저 그런 결말로 끝나 버린다는 것을 알게 하는 주문. 그 모든 주문은 어떤 문장들로 우리를 괴롭혀 왔을까.


서아의 심장에는 항상 돈을 앞세우는 마음과 그 바깥을 꿈꾸는 마음이 함께 붙어 굴러다녔고, 만약 둘 중 하나를 없애야 한다면 꿈이 먼저 사라질 터였다. 그래서 서아가 느끼는 최선은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간직하는 게 됐다. (...) 여유가 생기면 꿈 한 조각을 꺼내 볼 수 있도록. (99)



우리는 어쩌면 이따금 우리 자신이 '마법 소녀(소년)'인지 '마녀'인지 헛갈릴지 모른다. 사람이 필요한 곳에 다가가 손을 내밀다가도 그 손이 나의 꿈을 방해하고 심지어 내 삶을 구렁텅으로 잡아끌라치면 얼른 그 손을 놓아 버리고 싶다. (놓지 못한다면 엉겨 붙은 내 그 손을 끊어 내서라도 절연하고 싶은 사람, 관계, 장소, 시간, 세상 등이 있을 수도.)


그래, 나 하나로는 구하지 못하는 세상이 도처에 널렸다. 그러니 이제 결정해야 한다.

괴물이 될지, 괴물에게 먹힐지.

마녀가 되는 주문을 읊을지, 마녀 사냥에 열을 올릴지...


'왜 이딴 곳이 존재하는 거야?'라고 묻는 일은 순진하다. 제도권 안에서 정형화된 행복을 학습했을 뿐인데, 그것이 뾰족하게 돌아와 아이들을 겨눌 때에는 좀처럼 책임지려 하지 않는 이 거대한 학교는 우리 사회 그 자체나 다름없으니까. 현실은 언제나 소설에 앞서니까. (첫 번째 리뷰, 작가 윤혜은, 272)


경쟁의 숲에서 도태되고 제거되어 온 수많은 나무들이 읽어 보면 좋을 소설. 

'하나하나의 나무가 소중히 자라야 숲이 숨을 쉰다'사실을 아직 모를 때 만나면 좋을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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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또 다른 마녀를 만나고 싶다면...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 '케이크 손'도 추천한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830777

https://brunch.co.kr/@springpage/547

(작가의 성장소설, '다이브'를 읽고 그럭저럭 재미를 느꼈다가 이내 해당 기억을 삭제했다. 그러다 올여름 우연히 '케이크 손'을 보고서 점점 관련 작품들에 빠져드는 중이다. 차기작도 무척 기대, 아니 고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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