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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으로부터 온 이별 편지

2024년 버리기

by 봄책장봄먼지


버리다


끝나 버리다
잃어버리다
피해 버리다
지워 버리다...

'버리다'를 가지게 된 슬픈 언어들은
단순히 끝나거나 잃거나 피하거나 지우지 못했다
오직 버려야만
자신의 언어를 완성시킬 수 있다, 끝내 버리고, 잃어버리고...

당신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다.
다만 완성해야 할 언어들이 있어
나와의 기억들을
끝내 버리고, 잃어버리고, 피해 버리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워 버려야만 했던 것이다

버려야지만,
당신은 나의 언어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나는 버려진 것이 아니다.



연말에 맞이해 이것저것을 버린다. 버리다 보니 버리기 조금 아까운 글자들이 나타난다.




벌써 20년도 전에 겪은, 내 마음에 아주 작은 생채기조차 남지 않은 이별. 그 이별을 담은 어설프디어설픈 시 한 편이 뜬금없이 20년을 거슬러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녀석의 뜻밖의 출현이 적이 위로가 된다. 살아오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플 때나 즐거울 때나 틈틈이 (아무 곳에라도) 글을 끄적였다는 게, 그 자체가 내겐 위로가 되었다. 조금 추울 수 있고 조금 더 혹독할 수도 있는 이 겨울이, '버리다'를 반복하는 이 이별 편지 덕분에 따뜻하다.


어쩐지 '2024년 버릴 것 버리기' 작업이 이 '버리다' 시 한 편 덕에 무난히 진행될 듯하다. 2024년을 아주 잘 '버리고' 2025년으로 잘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이 시를 쓴 20년 전의 나의 말에 따르면...


난 지금 2024년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 완성'하고 있는 셈이니까.


2025년에는 어떤 것들을 모으고 어떤 것들을 버리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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