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겸손하다.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양심 없고 ‘겸손’ 없는 짓임을 알지만 어쨌든 나는 꽤 겸손한 편이라고 적어 본다.) 스스로 대놓고 말하기에 뭣하지만 나는 심하게 겸손한 편이어서, 어떤 일에서건 먼저 나서는 법 없이 ‘뒤꽁무니로 달아나는 쪽’을 택하곤 한다. ‘난 이걸 잘해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다 낯이 가렵고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쑥스럽다.
와, 선생님 천재!
그녀가 이런 말을 내게 건넬 때마다 나는 부끄러워 손사래를 치며 겸손을 유지했다. 그녀는 실제인지 장난인지 모를 ‘천재’ 발언을 내 삶에 종종 건네곤 하였는데, 사실 ‘천재’라는 말은 내게 쓰여서는 결코 안 될 법한 단어였다.
예를 들어보겠다. 종이컵에 담은 물이 너무 뜨겁다 말하는 동료에게 내가 종이컵 하나를 덧대어 두 개의 컵으로 잔을 만들어 준다. 그랬더니 동료가 나에게 천재란다. 또 하나의 예. 수업에 쓰이는 태블릿을, 방향을 잘 맞추어 수월히 고정하고 잠금장치를 잘 걸어 둔다. 그녀가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라는 듯 과장을 섞어 ‘오, 선생님, 천재’라는 말로 내 ‘자존감 엉덩이’를 두들겨 가며 ‘우쭈쭈’를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주인님에게 칭찬을 받는 똥강아지라도 된 것 같다.
똥강아지는 더 긴장하며 고삐를 조인다. 앞으로도 비난보다는 칭찬받을 일만 만들어야지, 하고 다짐하는지도 모른다. 똥강아지는 그렇게 은근히 자기 목줄을 상대에게 종종 내맡긴다. (그녀가 강아지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슬슬 ‘천재’ 대신 대놓고 ‘바보’라는 소리를 마땅히 들을 법한 사람이 되어 간다. 터질 게 터진 건지도 모른다. 회식 사건 이후로 그녀는 갑자기 사적인 이야기를 내게서 일체 거두어 갔고, 회사 메신저도 뚝 끊었다. 정보나 감정을 교류하는 통로가 완전히 끊겼다. 그러다 보니 업무에도 슬슬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휴가 가실 때 미리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어요."
한껏 용기를 쥐어짜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전시된 기기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우리말 체험을 안내한다. 그런데 체험 인원이 너무 많으면 혼자서는 진행이 곤란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반의 예약이 확정된 후에야 그녀에게서 휴가 일정을 전달받는다. 그녀가 말하길, 자신은 벌써 비행기 표를 구매했으며, 자신이 놀러 가는 날에 체험 예약이 잡혔으니, 해당 교사에게 일정 변경 전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 관계가 엇나가다 보니 미주알고주알 다 나누던 이야기들이 우리 사이에서 ‘일괄 삭제’가 되고 대화의 소리는 완전히 ‘음소거’가 된다. 휴가 날짜쯤이야 백만 년 전부터도 공유하던 ‘우리 사이’였는데 이제는 휴가 날짜조차 서로 언급을 안 하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된 것이다. 결국은 클라이언트에게 ‘죄송’을 고하고 체험 날짜를 미루거나 취소해 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다.
“아, 휴가 날짜는 그때, 그 회식 때 이야기했었어요.”
내 부탁에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서 약간의 흔들림을 읽는다. 하지만 그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어쩐지 성이 나 보이는 그녀의 뒤통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제야 이 답답한 관계의 실마리를 조금이나마 찾은 것 같다.
'아, 일단 회식 때부터구나. 다른 원인도 많았겠지만 그녀와 나, 이 비틀림의 결정적 첫 원인은, 회식 때문이구나.'
‘내가 휴가 날짜를 회식 때 이야기했는데, 너는 그 자리에 없어서 못 들은 거야.’라는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는 그녀. 그렇게 그녀는 한 번도 제대로 주도적이지 않았던 나에게 과제를 남기고 정말 휴가를 떠나 버린다. 지역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신청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기였지만, 그녀는 나에게 ‘잘 알아서 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비행기에 오른다. 그녀는 ‘그동안 나 혼자 알아서 이 모든 일을 처리했다.’라는 표정으로 나를 대한다.
“그럼, 이건 그 학습 카드를 써서 해 보면 어떨까요?”
“그것도 알아서 하세요.”
그녀는 이제 더는 나를 봐주지 않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군다. 그 ‘작정’은 표면 온도가 너무나도 차갑다. 뜨거운 불에서만이 아니라 단단한 ‘얼음’에도 손을 델 수가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그나저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설마 진짜로 그때 그 회식에 안 가서 그런가? 갑자기 싸늘해지고 화를 내는데도 내가 그 이유를 안 물어보고 화해를 시도하지 않아서 그런가? (하지만 싸운 것도 아니고 저 먼저 화가 난 것에 화해를 청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변하면 변하는 대로 수긍해 버리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1도 노력하지 않는 내 태도에 더 화가 났던 것일까? 더는 나를 봐주지 않을 테야, 라고 마음먹은 그녀에게 더 매달리며 평소처럼 맞춰 줘야 했던 것일까? 점점 나를 미워하는 것만 같고, 그래서 나도 자꾸 미워하게 되는 그녀를 나, 이제 어떻게 대해야만 할까?
이런 와중에 자꾸만 내 머릿속에 단어 하나가 맴돈다. 그 단어는 내 앞에 와서 점점 또렷해진다. 나는 그 단어의 생긴 모양, ‘ㅌㅅ’을 얼핏 보고 흠칫 놀라, 그 두 글자를 얼른 품 안으로 도로 집어넣는다. 이 녀석이 내 품에서 내 입 밖으로, 내 세상 밖으로 튀어나오기 전에 어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나는 급히 내 신앙의 멘토, 우리 큰이모를 떠올린다. (아흔이 다 되어 가시는 우리 큰이모와 나는 종교는 살짝 다르다. 그렇지만 이모는 내 성령의 멘토시다.)
"그럴수록 그 사람을 위해 더 기도해야 한다."
나를 늘 '우리 천사'라고 부르시는 우리 큰이모께서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미운 사람이 있으면 오히려 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위해 더 기도하고 더 아껴 주라고. 미움을 시작한 사람에게 더 연민을 품어야 한다고.
그런데 과연 그런 신앙의 힘으로 이 관계, 개선될 수 있기는 한 걸까?
“제가 좀 답답한 면이 있었죠?”
그래, 한번 질러 보는 거다. 이모의 말씀대로. 나는 눈 딱 감고, 딸기 캐러멜을 건네며 그녀에게 한 번의 화해를 시도해 본다. 순전히 큰이모의 말만 믿고 일단 한번 저질러나 본 것. 내가 부족했던 면이 있어서 그녀가 화를 낸 것이리라 굳게 믿으며 또 한 번 겸손한 척 내가 먼저 사과를 청한다.
“겨우 이걸로요?”
그녀가 어색한 웃음으로 내 딸기 캐러멜을 받아 든다. 그녀가 붉어진 얼굴과 뼈 있는 농담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그녀를 뒤따라 또 멋쩍게 웃으며 얼굴을 붉힌다. 그녀와 나의 얼굴이 동시에 붉어진다. 하지만 ‘붉어짐’의 이유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아직 성난 찌꺼기가 남아 있어 얼굴이 붉다. 나는 그녀의 붉은 찌꺼기를 어쩔 줄 모르고 받아 옮기다 뭔가 부끄럽고 쑥스러워 얼굴을 붉힌다.
그녀도 나도 아직 일상 구석구석에 붉은 기가 팽팽히 감돈다.
아, 이렇게 붉은 얼굴인 채로, 우리 사이, 어느 지점까지 같이 걸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