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속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자

갈 데까지 가 보려는 너와 나

by 봄책장봄먼지

“선생님, 방금 ○○ 선생님이 저한테 ‘선생님 속 썩이지 말라’고 말하고 가던데 그게 대체 무슨 뜻이에요?”


"네? 저는 그 선생님께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그런데 왜 저한테 속 썩이지 말라고 그래요? 그 선생님이 원래 넘겨짚어 이야기하시는 거 잘 알긴 하지만 그래도 왜 갑자기 저한테 와서 속 썩인다고 말하고 가는 거죠?”

“저는 진짜 그 선생님께 아무 말도……. 진짜 정말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그럼 할 말은 있는 거고요?

‘아차차. 이렇게 또 걸려드는 거구나.’


나는 또 ‘말꼬리’라는 미끼를 문다. 그녀가 꼬리를 놓치지 않고 대화를 잇는다.


“그럼 그 선생님은 어떻게 알고 저한테 선생님 속 썩이지 말라고 그러는 건데요?”

“저는 정말 1도 말 안 했어요. 제가 여기서 뭐 친한 사람이 한 명이나 있나요? 그 선생님이 제 책을 사 주셔서 전 그저 고마워서 간식거리를 사 드리고 그랬는데, 그분이 저한테 좋은 책까지 선물해 주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 선생님께 ‘요새 자존감 떨어져 바닥’인데 이런 책 정말 감사해요, 라고 했더니 저러신 거예요.”(아이고, 또 구구절절 변명한다, 나.)


그때 갑자기 체험을 하러 온 아이들이 들이닥친다. 우리의 대화는 급하게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른다. 가까운 거리에서 차가운 기운을 서로에게 내쏘던 우리는 먼 거리로 잠시 떨어진다.



나는 체험에 앞서 주의해야 할 사항을 낭독하고 아이들에게서 약속을 받는다. 소란스럽지 않게 소곤소곤해 줄 것, 귀 기울여 들어줄 것, 사뿐사뿐 걸어 다녀 줄 것, 정성 들여 활동지를 사각사각 적어 줄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약속으로, 안전하게 조심조심 체험을 해 줄 것. 체험하러 온 아이들에게 매번 이런 식의 약속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나와 그녀는 약속이란 것 자체를 더 이상 만들지도 지키지도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서로의 마음을 늘 소란스럽게 만들고 있으며, 귀를 막고 입도 닫고 서로에게 눈까지 감는다. 더는 서로를 조심하지 않는다.



“이제 쉬는 시간이에요. 화장실은 저기 저 하얀 손잡이 달린 문 보이죠? 그 문 열고 나가서 오른쪽으로 쭉…….”

학생들에게 쉬는 시간을 알린다. 이 시간이 끝나면 동료와 나는 체험 대상을 교체한다. 자리를 이동하는 그 순간마다 우리는 눈빛으로 소소한 응원을 전하곤 했다.



지금도 그러느냐고? 설마……. 말해 뭐하겠냐마는 그런 다정한 눈빛을 나누던 ‘시절 좋은 시절’은 아예 기억 너머 저편으로 하직을 했고, 우리는 오늘도 서로를 본체만체 체험을 이어 나간다. 게다가 아이들 앞에서만 거짓 웃음을 짓는, 아니 아이들 앞에서만 진짜 웃음을 보여 주는 사람들, 즉 철저히 이중적인 사람들이 되어 간다. 체험은 끝나가고 너무 어지러웠던 두 사람의 마음은 다시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간다.




사실 얼마 전, 내가 그녀에게 캐러멜을 내밀었을 때, 나는 내 딸기 캐러멜이 우리 사이의 공기를 조금이나마 딸기 향으로 바꿔 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녀가 캐러멜을 먹었는지 폐기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용기를 들이민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여 ‘장밋빛’까지는 아니어도 우리 관계, ‘심심한 딸기 빛’ 전망 정도는 내다보던 터였다.



하지만 지금, 딸기고 나발이고 우리 사이에는 그 어떤 향기도 남아 있지 않다. 점점 올라오는 쾨쾨한 냄새만이 우리의 앞날을 고약하게 예측할 뿐이다.



“할 말은 있으시다면서요, 그럼 선생님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데요?”

수업이 끝난 후, 그녀가 먼저 말의 포문을 연다.

“……. 솔직히 갑자기 어느 한순간에 선생님이 차가워졌잖아요. (인정?)”

“(어, 인정)…….”

“그래서 전 솔직히 좀 슬펐어요.”


나도 모르게 ‘슬프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은데 꽤나 감정적인 ‘슬픔’ 따위의 단어를 내밀다니. 역시나 ‘찌질함’을 못 감추는 나다.



“그럼 말을 하셔야지, 왜 말을 안 해요.
말을 해야 알죠.”



자네 같으면 말을 했겠느냐고 따져 묻고 싶은 걸 간신히 참는다. 몇 분 전까지 웃으며 대하던 사람이 갑자기 웃음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서늘함을 쑤셔 넣고 있는데 그 당황스러움을 뒤로하고 차분히 이야기를 꺼낼 수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아마 선생님이 변하고 나서 전 그 관계를 회복할 의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요.



최대한 꺼내 보인 솔직함이었다. 갑자기 변한 사람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왜 그러니? 무슨 일 있니? 내가 뭘 잘못한 거니? 우리 한번 이야기 좀 해 보자’라고 말하기가 어쩐지 좀 싫었다. 처음엔 당혹스러웠고 그다음엔 이렇게 1년 반의 동료애가 사라지는 건가 싶었다. 그저 관계의 격랑과 소멸의 추이를 관찰만 했을 뿐, 내가 상대의 마음 안으로 걸어 들어가 본다 한들 우리의 관계, 특별히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내 갑갑함은 오로지 일기장에서나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지,
‘관계 개선 의지’ 따위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고
나 스스로 이 관계를 단정 지어 버렸다.




“아니, 할 말이 있으면 말을 해야지, 말을 안 하면 사람이 어떻게 알겠어요?”


‘감정의 토로’를 그녀가 내게 채근한다. 그러나 그녀에게 나는 더는 할 말이 없다. 그저 하는 말이라곤 또 ‘자기 비하’ 발언이다. 이렇게 많은 나이를 먹고도, 그토록 많은 시간이 지나고도 ‘이 모양’이라는 내 모양만 그녀에게 제시하며 자네가 이해하게, 라는 말만 전한다. 그러나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꺼내 본 ‘나’는 다른 말을 한다.



‘말을 해 봤자일 거야.’

말을 건넨다 한들 돌아오는 건 그녀가 전속력으로 당겨 쏜 날카로운 화살뿐이리라 생각한다. 먼저 다가가 ‘괜찮아요? 뭐가 문제인지 저한테 말을 해 주면 저도 고치려고 노력해 볼게요.’라고 말할 용기도 사실 없다. 나의 ‘용기 없음’ 혹은 ‘비겁함’에다 대고 그녀가 다시 말을 잇는다.



“전 그 말이 더 슬프네요. 관계를 회복할 의지가 없었다는 그 말이…….”

그녀의 말에 나도 공감은 한다. 사실 그녀는 내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평소에도 내가 맞추기에는 버겁고 힘든 상대라고 늘 생각해 왔다. 강하고 능력도 있는 사람. 나와는 조금 쓰임새가 다른 사람. 이 직장에서 나보다 더 요긴하게 쓰일 수밖에 없는 사람. 나는 내일 당장 닥친 수업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는 유사 체험처들을 견학 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체험장을 좀 더 발전적인 곳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지 큰 그림을 고민했다. 내게 메신저로 말을 걸 때면 종종 그 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는데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야’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찰떡같이 자기 의견을 잘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나에게 이 얘기, 저 얘기를 참 많이도 건넸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녀의 얘기들에 피로감을 느꼈다. 공적이든 사적이든 나보다 잘난 사람에게 ‘리액션’을 해 줘야 하는 사실이, 그리고 뭘 모르면서 괜히 아는 척, 이해하는 척 '반응'을 해 줘야 하는 현실이 조금 벅차고, 사실 지겨웠다. 정직하지 않은 건 딱 질색인데, 자꾸만 정직하지 않은 나로, 가식적인 나로 ‘잘못 성장’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을까? 여실히 달라진 그녀의 태도가 차라리 속 편했다. 적어도 서로에게 그건 ‘정직’이었고 ‘진실’이었다. 일을 좀 못하는 나를 책망하고 싶은 그녀의 심리는 진실이었을 테고, ‘천재’라는 우스운 독려나 말장난을 걷어 내고 ‘솔직히 님, 별로’라는 상대의 투명한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현실이 나로서도 마음 가벼운 일이었다. 물론 그 ‘진실’을 벗겨내는 과정은 고됐지만 나라는 사람에게 ‘정직’은 언제나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다. 적어도 나를 꾸미고 사는 일 따위는 안 해도 되니까. 발가벗겨진 내면이 되레 더 시원했다고나 할까.




다소 소강 국면에 접어들던 우리의 관계는 이렇게 다시 탁한 회색빛 급물살을 탄다. 서로를 신뢰한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장난처럼, 거짓말처럼 무너진다. 이제 나와 그녀는 그저 닥치는 일이나 하면서, 서로에게 ‘입을 닥치는’ 서먹한 사이가 되어야 한다. 상대의 속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들든 말든 서로 관여하지 않으면서 '같은 곳에서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이렇게 자기 앉은자리에서 계속 썩고 있는 지금의 우리,



우리는 어쩌자고 서로의 ‘속’을,

이리도 상한 채로 내버려 두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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