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왜 그렇게 사니?

그걸 저도 잘...

by 봄책장봄먼지


대체 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선생님, 그 라벨지는 도대체 왜 그렇게 하신 거예요? 그냥 저희 안내용 전화번호가 바뀌어서 그걸 뽑아만 달라고 한 건데……. 그걸 왜 하나씩 다 잘라서 그 끝을 일일이 다 칼집 내신 거예요? 아니,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시지. 아무튼 전 도무지 이해가 안 돼요. 시간이 너무 많이 들잖아요. 일을 효율적으로 빨리해야지…….”

“저는 나중에 붙일 때 뜯기 편하라고 그렇게 칼집을 낸 거고, 시간도 그렇게 많이는 안 들었어요.”

“아니 왜 나중에 붙일 사람을 생각하고 일을 해요? 왜 불필요한 데 시간을 쓰는지 전 잘 모르겠어요.”

“뜯기도 편해야 하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이딴’ 변명을 하고 있나 싶다. 그녀는 그 라벨지가 뭐라고 열을 내는 것인지, 또 나는 그 라벨지가 뭐라고 변명을 꾸역꾸역해 대는 것인지.


물론 나도 안다. 나를 취급하는 범위가 ‘평범’에서 ‘바보’쯤으로 한 단계 다운그레이드된 상태인데도 아직도 난 정신을 못 차리고 느려 터지게 살아간다. 이런 내 일 처리 방식을 나도 잘 안다. 사실 나도 칼집을 내면서 이거 혹시 쓸데없는 데 시간을 쏟는 건 아닌가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서로 말을 거의 안 하다 보니) 라벨지를 만들어 달라는 게 대체 어느 수량까지인지도 모르겠고, 이렇게 열심히 해야 할 일인가 싶기도 했다. (그것도 집에 와서까지.)



하지만 이게 골탕이라 해도 나는 드라마 속 ‘착한 척’ 여주인공처럼 그저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해 줘 버리고 싶었다. 그게 더 속 시원하고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았다. (그 와중에 할 줄 아는 게 이것뿐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이 덤으로 따라붙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아니란다. 그건 골탕도 뭣도 아니고 그저 필요하기에 맡긴 일일 뿐인데 당신이 오버해서 엉뚱한 데 시간을 잡아먹었다고 내게 말해 온다. 나도 안다. 그녀가 일부러 누군가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할 사람은 아니다. 그것을 알긴 안다.


다만 이제 그녀는……. 그냥 단지,



어쩐지 고만 나라는 사람이
괜히 싫어지고 만 것이다.



내가 하는 일 처리가 싫어졌고, 그 일을 하는 내가 싫어졌다. 아니, 조금쯤 그녀도 내가 지겨워진 것이다. 왜 저렇게 알아서 하는 일 없이 느리기만 한가,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가 보기에는요, 선생님 너무 느려요, 일 처리가. 문화 행사 준비하는 것만 해도 그래요. 제가 선생님 준비될 때까지 기다렸잖아요. 그런데 바로 다음 주가 행사인데 제가 준비 다 됐냐고 물으니까 그제야 정리해서 회의한 거잖아요. 그리고 라벨지 붙일 사람을 미리 배려해서 그렇게 일을 처리한다는 것도 전 이해가 안 가고요.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선생님은 거의 모든 일을 능숙히 하는 편이고, 제가 일하는 수준이나 방식이 선생님의 기준에는 잘 안 맞…….”

“아니, 전에 다른 ○○ 선생님도 그렇고, 선생님도 그렇고 왜 그렇게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지 전 모르겠어요. 제 기준이 아니라, 단지 일을 잘하려는 것뿐이잖아요. 왜 제가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따지시는지 모르겠어요.”


문득 그녀의 말속에 ‘자기 고백’이 있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말한 ‘전에 다른 ○○ 선생님’이란 내 전임자를 일컫는다. 내 전임자와 나의 동료는 일할 당시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고 했다. (이것도 그녀가 내게 직접 해 준 이야기이다. 물론 우리의 사이가 친했을 때 나에게 했던 이야기들이다.) 그녀는 지금 내 앞에서 말한다. 전임자도 나도 왜 똑같은 말을 하느냐고. 그녀는 ‘그럼 제가 이상한 건가 보네요.’라고 자조한다. 그 자조에 고개를 저어 주었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아무튼 전 그냥 선생님이 이해가 안 가요."

'이해하기 싫은 건 아니고요?'

일을 잘하기 위한 기준도 따지고 보면 자네가 세운 기준이잖아,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만큼 배포가 큰 나는 아니다. 게다가 그런 말을 하고 나서 후폭풍으로 정신을 못 차리는 건, 뻔하게도 나뿐이리라. 무언가를 또 혼자 해 보라고 맡기면 나는 또 버벅거릴 테고, 일한 지가 얼마인데 아직도 그러냐는 핀잔을 또 받을 터였다.


“선생님 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1년 반……. 됐죠. "


무엇에 대해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무엇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꼭 ‘질문’이란 것을 한다. ‘그건 A인가요?’라는 질문에 ‘B인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면, 질문자는 질책의 눈빛으로 '아니죠. A가 맞죠.’라고 자기의 답을 정답으로 꺼내 보인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상대에게 꼭 질문을 통해 그 답을 듣고자 한다. (혹은 자기 마음속에 답을 미리 그려 놓기도 한다.) 그들은 그냥 평서문으로 가르쳐 줘도 될 것을 ‘왜 그렇게 하신 거예요?’라고 따져 물으며 상대의 간을 보고 기색을 살핀다.


평소 나는 모르면 모른다고 정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편했다. 그런데 나 속 편하자고 응답했던 말들이 때로는 상대로 하여금 ‘무시’라는 ‘발판’을 딛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로 인해 상대는 그 판을 밟고 내 위로 올라서기도 하는데 나는 사는 내내 그 사실을 간과하며 살았다. 간과의 대가는 오롯이 홀로 뒤집어쓰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넌 또 한마디도 못 했어?”

자초지종을 아는 친구가 내게 묻는다. 판이 깔렸을 때 너도 할 말 좀 하지 그랬냐고 나를 질책해 온다. 제대로 된 자기 입장조차 또렷이 발설하지 못하는 나다.



대체 왜 그러고 사느냐고?



그러게나 말이다. 왜 그러고 사는지 그걸 참, 나도 잘 모르겠단 말이다. 그저 이렇게 ‘생겨 먹은’ 게 나라는 어이없는 대답만 내 안에서 들려온다.



"왜 그러신 거예요?"

그 질문은 되레 내가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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