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일지 02

방콕 편집자

by 봄책장봄먼지

아버지를 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이 싹튼 것도 잠시, 나는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가 '일'이라는 것을 한다.


출판사가 구미에 있어 평소에도 경기도민인 나는 재택근무를 한다. 달랑 한 명뿐인 대표님에 달랑 한 명뿐인 편집자다. 이를 조직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 출판사의 조직 구조는 이렇다. 딱 2명이라 좋은 점은 뭐든지 Direct.

“투고 들어왔다. 한번 봐라.”

대표님이 전화를 주시면 내가 검토를 해 보고 이런저런 말씀을 드린다. 대체로 원고를 보는 시선에 대해서는 대표님과 나의 시선이 일치하는 편이다. (뭐 결국 최종 결정은 내 영역이 아닐 테지만, 우선은 그렇다.)


투고가 많지는 않다, 아직은.

‘아직’이라는 단서를 드는 이유는 아직 이 출판사가 딱 한 권의 책만 출간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한 권은 대표님 본인의 책. 9개월째 그다음 책이 감감무소식인데, 이 부분에서 나는 은근슬쩍 고개를 수그려야 한다.


그 감감무소식의 ‘깜깜한 신간 소식’은 아무래도 편집자 탓이 크다. (이 출판사에는 편집자가 하나이고 그 하나가 나란 사람이기 때문에 내 탓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작년 한 해 두 종류의 편집자 관련 교육과정을 듣고, 출판마케팅 수업도 들으며 출판편집 일을 탐험했다. 그러나 계속 배우고 배우기만 하고 아직 제대로 펼치지를 못한다.

세상에 나오라, 나서라, 이런 주문에도 “아니요. 아직요. 잠깐만요. 배워야 하는 게 많아서요.” 분주한 핑계를 대며 다음 책 작업이 늦어졌다. 내가 적극적으로 일을 시작하기까지 기다려 준 대표님에게 사실 감사해야 한다. 다른 인연을 통해 그분과 ‘아는 사이’가 된 탓에 내 사정이나 입장을 너그러이 봐주시는 편이다. 그래도 일은 딱 일이어야 한다. 더 열심히, 더 분주히 편집 일에 몰두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도 내 일에 게으를 수밖에 없었던 나만의 속사정이 있다. 이 일이 정말 ‘너무나 좋긴 한데’ 과연 내가 이것으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 일을 하는 와중에도 몇 개월을 고민했다. 당시에는 출판사가 자리를 잡으면 제대로 체계를 잡기로 했었기에 그 시기가 과연 언제일지 머릿속, 마음속이 좀 복잡했다. 지금은 다행히 일도 체계도 급여도 자리를 잡아간다. 갈 길이 멀지 모르지만 조금씩이나마 편집자로 발을 내디딘다.


아무튼 나는 오늘도 나의 집, 나만의 방구석으로 출근한다. 아무 옷이나 입어도 되고 아무개에게서 스트레스를 받는 일도 없다. 원할 때 편히 먹고 원할 때 산책도 나간다. 일하다 말고 누웠다 앉았다 몸을 비틀거나 머리를 벅벅 긁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더욱이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더 방콕 편집자가 되었다. 3월 초에 나오기로 한 신간도 발행예정일을 늦췄다. (코로나로 인해 출간기념일 행사를 크게 할 수 없으리라는 걱정 끝에 발행일을 뒤로 쭉 밀었다.)


이제는 더 방으로 ‘콕’ 들어가서 우리 출판사의 세 번째 책인 공저를 다듬고 고치려 한다. 스물여덟 분의 초보 혹은 기성 작가분들의 따끈따끈한 초고들이 나를 기다린다. 그 원고를 빛나게 하기 위해, 그분들이 글자에 담은 마음들이 윤이 나게 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내 방 스탠드를 밤이 늦도록 밝히려 한다.

방구석 내 의자에 무거운 엉덩이를 앉히고 노트북을 연다. USB를 꼽고 ‘인디편집자’ 폴더를 누르고 그 밑에 있는 ‘공저’라는 폴더를 연다. 노트북 옆에 갖다 놓은 뜨거운 맹물을 한 모금 들이킨다.


아무래도 나는 천생 방.콕. 체질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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