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일지 03

가제본을 받아 들고

by 봄책장봄먼지

내 첫 편집 책이 되려던 책은, 발행을 연기했다.


그래서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에 들어가 발행예정일을 변경해야 했다. 다행히 날짜를 넉넉히 적어 놓은 덕에 손쉽게 정정할 수 있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잘 모르지만 이리저리 검색을 해 보니, 지정해 둔 발행일을 지나서 수정을 하면 지금보다 정보 수정이 조금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한다. 초보자는 무조건 그 ‘어려워지는 길’은 피하고 본다. 자칫 잘못 헛발을 디뎌 실수라도 하게 되면 내 실수로 다른 사람의 자본이 흔들린다. 차라리 내 돈 내가 망하면 그냥 나 혼자만 '바보'를 하면 되지만, 남 돈 말아먹으면 그건 ‘바보 하나’로는 용서가 안 될 일이다.)



요즘 나는 바보짓이나 치명적인 실수만은 안 하려 애쓴다. 그런데 출판이나 편집을 가르쳐 주는 사람 없이 저 혼자 터득하여 알아가야 하니 원래도 느린 걸음이 더 더디다. ISBN 문제만 해도 그렇다. 해당 사이트에서 ISBN이 발급되었다는 소식을 전달받고 바코드 이미지를 받아 들긴 들었는데, 여러 파일 형식으로 저장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보니 뭘로 저장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pdf는 혹 품질이 안 좋아 바코드 인식이 잘 안 될 수도 있다는 경고성 문구를 보니 간이 더 쪼그라든다. 삐끗하지 않기 위해 일러스트 프로그램으로 우선 파일을 열어 본다. ISBN 번호와 부가기호 5자리(책 내용에 따른 분류 기호)는 그냥 두고 가격 부분만 수정하여 ai파일로 저장한다. 그러고는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에서 하라는 방식대로 그대로 따라서 저장을 한번 해 본다. (일러스트는 왕왕초보, 포토샵도 왕초보라 작은 작업도 아직은 매우 힘들다.)


행여 바코드 인식이 안 될까 걱정하며 바코드 인식 앱까지 다운받는다. 그리고 저장해 둔 바코드 이미지를 인디자인 표지 파일에 가져온 후, 직접 바코드 앱을 갖다 댄다. (모니터를 크게 키워 바코드를 찍어 보는 무식한 방법을 써 본다.) 차후에 디자인 감수를 봐 주었던 디자이너 쌤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해 봐야 할 듯하다. 제대로 된 책을 처음 만들다 보니, 뭐든지 조심조심하게 된다. 돌다리가 지구 끝까지 뿌리 박혀 있다 해도 쾅쾅쾅쾅 세 번 네 번 두드려야 한다.


그러나 이런 노심초사로 준비한 책이 작가님 손에 안기려면 아직 멀었다. 앞서 언급했듯 발행일을 연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발행일은 연기했어도 실수를 막기 위해 인터프로 인디고 사이트를 이용해 가제본 한 권을 23,600원 주고 뽑아 봤다. 그런데..


바코드가 코딱지만 하게 나와 버렸다. 바코드 크기를 확인했어야 하는데 그걸 깜빡했다. 애고..

그런데...

그런데.. 하... 책 자체는 너무 마음에 든다!


작가님 동의 아래 내가 구성하고 배치하고 소제목 뽑고 부록도 따로 묶은 책. 내지 색깔도 표지 색도 내가 정한 거라 마치 내 첫 책이 나온 듯 가슴이 콩닥콩닥거린다. (표지는 무료 일러스트를 갖다 얹힌 거지만.) 아무튼 이대로만 나오면 정말 안심이겠다. (이게 또 자만이나 건방으로 이어져서는 결코 안 될 일이다.) 표지를 더 도드라지게 하는 예쁜 후가공이라는 작업을 아직 안 해서 완전히 염려를 놓을 수는 없지만 일단 편집자로서 책 외형 자체는 그 나름 만족스럽다. 부디 우리 청소년 작가님도 기뻐하셨으면... (스포일러를 조금 뿌리자면 대표님 책을 제외한 우리 출판사의 첫 책은, 청소년 작가님의 책이다. 올해로 스물이 되셨지만 열일곱에서 열아홉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도착한 가제본 책을 보고 엄마가 내게 무심히 한마디를 건네신다.

“일 년 내내 아무 것도 안 하고 산 건 아니네?”

사람 구실 못 하고 1년 동안 책 만든답시고 밤까지 새우며, 뭔가를 배우기만 하고 자기 방에서 사부작사부작 조몰락조몰락거리며 동분서주한 보람이, 아주 아주 조금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아주 조금은 생긴 듯하다.


"치명적인 매력은 못 갖더라도 치명적인 실수만은 하지 말자!"

편집 일을 시작하면서 내가 살얼음 위를 걷는 듯한 긴장을 느낄 때면 나에게 건네던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독자의 손에 치명적인 책을 건네고 싶다.

자꾸 들여다보고, 돌아다보고, 보고 또 봐도 엄청 매력적인 책을 만들고 싶다.


편집자로서 치명상(致命傷)을 받는 일 없이, 매력 터지는 치명상(賞)은 받고 싶다.

아직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기어이, 결국'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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