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겸연쩍다. 어디 글로 내놓을 수도 없다.(그러면서도 글을 쓴다.)
우리 출판사는 대표님 하나에 편집자 하나. 시작부터 달랑 둘이서 영차영차. 처음엔 내가 대표님이 진행하시는 스피치 수업을 들으면서 인연을 열었다. (대표님은 스피치아카데미 원장님이시기도 하다.) 내 생전 스피치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디 할 일이 없어서(?) 스피치를 배우나 하며 살았더랬다.
그러나 이전 직장에서 나는 우리말을 가르치고 안내하는 사람. 게다가 직업의 명칭 자체가 ‘◯◯강사’였다. 이것 참 난감했다. 우리말은 좋지만 으잉? 강사를 해야 한다고? 나는 내 목소리와 내 발표불안과 내 제스처 하나하나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스피치를 찾았고, 책 쓰기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스피치 대표님의 수업을 찾아갔다. 마침 서울에서도 스피치를 개강한다기에 덜컥 신청을 해 버렸다.
결과는?
스피치, 1년 8개월의 직장 생활 동안 잘 써먹긴 했다. 하지만 나에게 스피치는 너무 미지의 영역이다. 애써 봐도 잘 안 된다. 그러나 스피치가 내게 자신감을 심어 놓진 않았어도 인연 하나는 확실히 심어 놓았다. 매 수업, 발표하는 내 이야기, 내 원고에 대표님이 관심을 기울여 주셨던 것. 스피치 목소리는 꽝이었지만, 스피치 원고는 크게 나쁘지 않았나 보다.
“대표님, 전 나중에 1인 출판사도 하고 싶어요. 안 유명한 사람들의 작은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싶어요.”
“하자.”
“네?”
“하자고. 까짓 못할 게 뭐여?”
말로만 웃으며 오갔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실행력, 추진력 갑이신 대표님은 기어이 일을 저지르셨고, 지금은 스피치아카데미와 출판사를 모두 운영하고 계신다. 스피치아카데미 쪽은 전국 강의를 다니며 규모도 인맥도 키워 놓으셨지만 아직 출판사는 응애응애 수준이다.
게다가 이 출판사에는 일할 사람이 달랑 둘. 그런데 며칠 전, 우리 출판사 공저 이야기가 오고 가는 단체대화방에서 나는 그만 험악한 이야기를 듣고 만다.
“원고 잘 받았어요. 편집장님.”
악;;;; 안 돼요, 안 돼. 그것만은 제발. 지금 ‘편집자’라는 이름도 버겁고 무거워 죽겄는디 ‘장’이라니요.
“여러분, 저기 ‘이응(ㅇ)’은 빼 주세요. 저 ‘장’ 아닙니다. 그냥 편집'자'여요. 간곡하게 전달드립니다.”
얼른 대화방에다 편집장에서 그 이응을 빼 달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린다. 그런데도 가끔 작가님들이 실수(?)로 ‘ㅇ’을 붙여 부르신다. 이건 화끈거리는 데서 끝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민망해서 불타오른다. 멀리 구석으로 도망가야 할 빨간 부끄러움이다. 또 명함을 만들 때도 이 새빨간 대화가 오갔다.
“‘자’가 아니고 ‘장’ 아니에요?”
명함을 만들어 주시던 스피치아카데미 본부장님 한 분께서 내가 ‘편집기획팀 편집자 ◯◯◯’이라고 파일을 보내 드리자, 저런 질문을 해 오신다. 가뜩이나 편집기획‘팀’에 팀원은 나 1명뿐이라 멋쩍은 명함인데 ‘장’이라니요;; 혼자 쑥스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해명을 해댄다.
아무튼 나는 ‘장’이 아니고, 사실은 ‘장’이 별로다. 책임감이 없어서일 수도 부담감이 커서일 수도, 천생이 ‘사원 체질’, ‘일개미 체질’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훈팀장, 원고 들어온 거 메일로 전달했다. 한봐 봐 봐, 어떤지.”
아이코 우리 대표님, 또. 팀... 팀장이라뇨. 그것도 팀원 1명 없는, 그리고 제가 그 팀원인 것 같은데...
지금 나는 본의 아니게 대표님께, 훈팀장이다(명칭만). 이거 참 얼굴을 어떻게 들고 다녀야 하나. 그나마 명함을 내 마음대로 ‘편집자 아무개’라고 찍어서 다행이다.
오늘도 반쪽짜리 편집자는 과분한 ‘무슨 장, 무슨 장’ 겉치레에 손사래를 치며 다시 교정지의 늪으로 저벅저벅 들어간다. 이젠 제발 훈팀이나 ‘장’ 말고 앞으로 쭉 ‘훈편(훈 편집자)’으로 불리고 살아가길 소망한다.
"저는 편집자 훈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