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제목은 대체 어디에
사람이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고 출생신고란에는 이름이 딱 들러붙는다. 가끔 혹은 자주 비슷한 이름들이 유행을 타고 거세게 일어났다 도로 자취를 감추곤 하는데 2019년 한 해 가장 인기가 있었던 아기 이름은 남자는 ‘서준’, 여자는 ‘지안’이었다고 한다. 10월 2일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 통계에서 밝히길, 2019년 4월부터 9월까지 남녀를 포함해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은 ‘지안(1708)’이었단다.(≪국민일보≫ ‘2019년 아기 이름 인기순위…男 서준, 女 지안 1위’, 2019. 10. 2. 김지은 인턴기자)
내 이름은 훈민. 어렸을 적부터 ‘너희 아버지가 세종대왕이냐’는 친구들의 장난 섞인 물음을 받을 정도로 나는 한글의 옛 이름인 훈민정음과 인연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남자 이름 같다는 놀림도 꾸준히 받았다. 학원이든 병원이든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마다 “여자였어요?”라는 질문을 들었다.
우리 출판사 대표님조차 스피치 수업을 신청한 내가 수업 시간, 문을 열고 들어오기 직전까지 ‘훈민’이라는 남자가 들어올 줄로 아셨단다. 이 이름은 우리 아버지가 지어 주신 이름이다. 나는 살면서 동생이 ‘정음이에요?’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고, 그때마다 난 ‘아니요. 아버지가 국어를 좋아하셔서 이렇게 지어 주셨나 봐요.’라는 대답을 똑같이 반복했다.
‘백성을 가르치다(訓民)’라는 뜻의 나의 이름, 나의 제목. 지어 준 사람도 있고 지어 준 명분도 있다. 그 이름이 내게 운명이 되려고 그랬는지 교사는 못 되었어도 강사는 되어 봤다. 심지어 국어를 연구하는 곳에서도 일해 봤다.
흔한 이름은 아니라서, 그리고 남자 ‘훈민’은 봤어도 여자 훈민은 아직 못 만나 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태어날 때부터 수십 년을 함께해 온 정과 의리가 듬뿍 쌓여서 나는 ‘나’라는 사람의 표지에 붙은 이 제목, ‘훈민’을 참 좋아한다.
이름 짓기, 제목 짓기. 사람의 제목을 짓는 것에도 사연이 있고 정성이 있듯, 사실 책의 제목을 짓는 일에도 온갖 고민과 정성과 물음표가 가득 들어찬다. 내가 반쪽짜리 편집자로 일하는 출판사 첫 책은 아쉽게도 ‘부모가 자라야 아이가 자란다’라는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여기서 내가 ‘아쉽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 제목이 책 내용과는 매우 잘 어울리지만 강렬함도 창의성도 없어 보이고, 뭔가 더 나은 제목이 있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제목을 뭘로 할까나?”
책이 나오기 전, 대표님이 내게 물으셨다. 그 책에는 소제목 가운데 ‘반항도 자존감이다’라는 문장이 있었는데 나는 그 소제목을 제목으로 하고 싶었다. 제목으로 그 문장은 어떠냐고 대표님께도 여쭤보았지만, 나도 대표님도 마지막엔 그 제목을 접어야 했다. 전반적인 책의 내용과는 어긋나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 문장은 대표님 책의 글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던 문장이었다.)
그 '아쉬움'에는 열정을 다하지 못한 내 탓도 있다. 당시 나는 직장을 다니며 시나브로 5개월에 걸쳐 느릿느릿 책 작업을 했다. 그때는 이 출판사의 편집자가 아니었다. 더 많이 신경 쓰지도 않았고 더 깊이 애정을 쏟지도 않았던 듯하다. 또한 책 뒤편의 윤문 작업을 오랜 기간 진행하고 난 뒤라 진이 빠져 있기도 했다. 거기에다 개인적으로 번잡한 퇴사 상황까지 겹쳐서인지, 아니면 내가 편집한 책이라고 명시되지 않을 책이어서인지 난 이 책이 갓 태어날 때 제대로 출산 준비도 해 주지 못했고, 산후조리도 양껏 마음껏 해 주지도 못했다.
그 아쉬움을 한번에 날리려는 듯 두 번째 책에는 정성을 다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드는 제목을 은근슬쩍 밀어붙이기도 했는데, 처음엔 내 제목에 대해 반응들이 영 시원찮았다. 대표님도, 작가님을 연결해 준 기관의 센터장님도 반응이 좋진 않았다. 제목이 뭘 나타내는지도 모르겠고, 누군가의 아류 같은, 유행을 따르는 듯한 이름 같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마치 아기의 이름이 유행을 타듯이.)
사실 그 제목은 출판편집학교 실습 때부터 내가 점찍었던, 내가 실습 교재로 만들었던 책의 제목이었다. 어느 수강생 동기는 “이 제목으로 된 책이 시중에 있었다면 당장 샀을 거예요.”라는 말도 들었던 터라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일부러 범해 가면서까지 나는 이 제목을 혼자 사랑해 왔다.
그러나 대접은커녕 내가 밀어붙이려던 제목은 작별을 고할 처지에 놓였다. 나도 곰곰이 몇 번 더 다시 생각해 보니 제목이 좀 이상해 보이기 시작하기도 했고.
“(대표님 왈) 그런데 생각해 봤는데, ◯◯ 작가랑 이 제목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작가님 왈) 구관이 명관이라고 저도 그 제목으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 뒤 구석에 먼지 쌓인 채 넘어져 있던 제목, 그 이름이 갑자기 우리 앞으로 불려 나왔다. ‘제목’은 갑자기 불려 나간 것에 어리둥절해하는 눈치였다.
‘정말 나를 부른 게 맞다고?’
‘어. 맞아. 앞으로 잘해 보자, 제목아.’
책은 제목과 표지가 중요하다는데 우리의 이 ‘제목’, 과연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발행예정일도 미뤄져서 아직 출간하지도 않은 책인데 괜히 미리 사서 걱정이다.)
내 첫 (편집) 아기의 이름이 어떤 삶을 살아갈지, 그 녀석의 유년과 사춘기, 청년, 장년, 노년의 시절이 벌써부터 정말 궁금하다. 부디 오래오래 장수하는 운명을 타고난 이름이기를. 욕심을 내자면, 거기에 더해 이름운에 재복까지 있는 녀석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