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순이

by 봄플

오늘도 밥을 한다. 냉장고에서 동면하던 쌀을 꺼내 씻쳐내면 쌀도 깨우고 나도 잠에서 깨는 듯하다. 20년 넘게 집에서 밥을 해왔지만, 요즘처럼 밥이 맛있던 적이 없었다. 집밥을 하는데 식당밥보다 맛이 좋았다. 설탕을 뿌린 것처럼 달콤하면서도 과하게 끈적이지 않은, 쫀득한 그 식감이 일품이다. 밥만 먹어도 맛있어서 자꾸만 손이 간다. 아버지께서 들여온 햅쌀도 한몫했겠지만, 사실 가장 큰 변화는 밥솥에 있었다.


작년 여름쯤 쿠첸 밥솥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터치키가 먹히질 않았다. 하이마트에 찾아가 수리를 맡기려 했으나, 며칠 뒤 받은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더 이상 터치기 부품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새로운 밥솥을 찾아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밥솥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신중했다. 쿠첸은 기기 오작동이나 압력 조리 시 뚜껑이 터지는 경우가 많다는 후기를 여럿 보았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이번엔 더욱 주의 깊게 조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쿠도 밥솥이 터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쿠첸보다는 확실히 안전성이 높았다.


안전성만 따지다가 기능까지 살피게 되었다. 밥에 크게 집착하지 않아서 고급 기능은 필요 없었지만, 트윈프레셔(고압 2.1)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소음이 싫어서 저소음 제품을 골랐다. 요즘은 대부분 저전력 제품이라 소비전력은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으나, 확인차 살펴보았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중요했다. 덕분에 기존 모델보다 10만 원 정도 더 주고 샀다. 그렇게 고른 제품이 '(신상)쿠쿠 트윈프레셔 마스터셰프 사일런스 오브제 6인용'이었다. 44만 원대에 구매했을 때 사람들은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하지만 확실히 밥값을 한다.


처음엔 물 조절에 애를 먹었다. 마치 잡곡밥을 지을 때처럼 이전 물양보다 적어야 했다. 이전처럼 똑같은 물량으로 맞추면 밥이 질어진다는 것을 몇 차례 실험 끝에 확인했다. 물양 맞추는 연습을 거치다 보니, 이 친구가 저당 잡는 데 선수인가 싶기도 했다.


고압 백미로 밥 짓는 과정에서 전분을 제거해 당 함량을 감소시킨다던데, 지금 고압 백미는 너무 달아서 다른 모드로도 먹어보고 싶다. 특히 당뇨병 환자나 다이어트 식단에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 전기밥솥은 중간 알람음을 통해 밥을 짓는 도중에 콩나물, 곤드레를 넣을 수 있게 해준다. '잡곡밥' 또는 '영양밥' 모드를 선택한 후 시작하면, 중간 오픈쿠킹 알림 시 재료를 섞으면 된다. 예전에는 돌솥에 밤과 대추를 올려서 밥을 지었다. 이 밥솥은 압의 단계를 높혀 벗긴 밤 5개와 대추 5개를 썰어 쌀 위에 올려 밥을 지을 수도 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밥솥의 압력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압 모드에서는 죽이나 이유식을 만들 수 있고, 고압 모드에서는 찜, 수비드, 감바스 등을 만들 수도 있다. 압력을 전자레인지처럼 세밀하게 설정할 수는 없지만, 한글로 표기된 찜 기능 등을 찾아 설정하면 된다.

문제는 가족 내에서 밥 짓는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밥은 하루 세 끼이기 때문에, 가족이 4인이면 하루에 9번 밥타령을 듣게 될 수도 있다.


밥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맛없게도 하지만

그렇게 나는 밥순이가 되었다.


2026.01.04 작성


P.S. '(신상)쿠쿠 트윈프레셔 마스터셰프 사일런스 오브제 6인용' 사서 셀프로 밥을 지어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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