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by 봄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상처를 감추는 데 특별한 재능을 보인다. 그것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버티기 위해 연마한 듯하다. 나 역시 그렇게 살아왔다. 밝은 사람인 척, 평범한 사람인 척, 아무 문제없는 사람인 척. 그 연기는 때로 나 자신조차 속일 만큼 속여온 듯하다.


20대 어느 날, 중고등학교 동문이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곁에서 지내면서 내가 그렇게 힘들게 컸는지 몰랐다고. 나와 내 동생이 잘 자라줘서 고맙다고. 언제든 힘든 일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놀라웠고 고마웠다.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숨기는데 재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숨긴 것들이 결국 다 보였던 걸까. 아니면 숨기려 애쓴 흔적 자체가 무언가를 말해주었던 걸까. 친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누구나 가족사가 있고 힘든 부분이 있지만, 유독 우리 가정은 좋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맞는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 그런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소위 '양아치'가 되거나 안 좋은 길로 빠지는 것을 봐왔기에 더욱 놀랍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부모님은 나와 내 동생에게 늘 말씀하셨다. 절대 집안일을 친구에게나 선생님에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그것이 우리의 약점이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어린 나이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끙끙 끌어안고 살았다. 나는 감추는 것을 선택했고, 내 동생은 잊어버리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세계에서 가장 험난하고 예측 불가능한 바다는 드레이크 해협과 북해라고 한다.

그곳의 빅웨이브를 보며 웃는 선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여러 번 경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파도를 견딘 선장은 그 크기와 속도를 가늠할 수 있기에 웃을 수 있다고 말한다. 큰 파도 사이에서 여러 길을 보고,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계산할 수 있는 경험이 있었던 듯 보인다.


어쩌면 그 선장과 비슷한지 모른다. 사람들이 몰라도 될 법한 그런 깊이를 견딜 수 있다는 걸 안다. 시련의 크기와 무게를 가늠할 줄 알게 됐다. 두렵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견딜 수 있다는 걸 안다.


지금은 그 친구에게만은 모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친구는 내게 말했다. 아직도 이렇게 고난이 심한 걸 보면, 큰 사람이 되라고 주어진 시련인 것 같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드라마 같은 인생의 결말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새드 엔딩 드라마는 이제 그만 찍고 싶다. 평온하기만 한 삶이 온다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다.


숨기는 데 재능이 있다는 건, 슬픈 재능이다. 그리고 어쩌면 파도를 읽는 선장의 눈처럼, 언젠가는 더 잔잔한 바다로 데려다주길 바란다.


북해 빅웨이브


2025.12.2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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