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화장품이 눅눅하다. 이런 날에는 단편소설을 쓴다 해도 축축할 것만 같다. 그래도 밑그림을 그리듯 그려본다. 망설이듯 줄기를 다시 잡아보고 기억을 더듬어본다. 어쩌면 이런 날이 더 반짝일 수 있다. 잠들어 있는 것을 흔들어 깨우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아침처럼.
7년전에 썼던, 그러나 잊어버린 단편소설 속 주인공들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내 안에서 변해 있을까, 아니면 버려졌다며 화를 낼까. 조심스럽게 그 상황과 그들을 불러본다. 새로운 시각과 늙은 욕망으로 회색빛으로 남은 그 글들 위로 다시 한번 채색해 볼 수는 있을까 싶다.
떠올린 주인공은 거울을 응시한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남자였지만 단장을 하곤 했다. 그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거울을 응시하는 것뿐만 아니라 화면도 응시했다. 누군가와 계속해서 소통하고 싶어 했던 그였다. 아니면, 뱉은 말에 어느 하나라도 공감대를 형성하여 유인하려던 갸륵한 계책이었을 수 있다.
거울 앞의 그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화면 너머로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었고, 말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다. 화면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던 사람.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사실 이 모든 상상과 각색 뒤에는 한 사람이 있었다. 7년 전, 그 해는 내가 많은 시도를 했던 해였다. 당시 그는 또 다른 누군가로부터 질투 어린마음으로 찾게 되어버린 사람이였을 뿐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저 궁금증에 불과했다.
우리 사이에는 아버지라는 매개체가 있었다. 나의 아버지 상황과 그의 상황이 비슷했었다. 발칙하게도 이성관까지 비슷해 보였다. 같은 무게를 짊어진 두 사람. 아버지라는 존재로부터 받은 상처, 혹은 아버지라는 존재의 부재가 만들어낸 공백.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비슷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안에 피어난 꽃들은 마치 거친 가시를 품고 있거나, 어떤 꽃은 다른 생명체를 먹기도 했다. 아름답지만 만질 수 없는 장미처럼,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잡아먹어야 하는 식물처럼. 우리는 각자의 정원에서 그렇게 자라났다.
작가로서 나는 주인공을 사랑스럽게 써보고 싶었다.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싶었고, 철저하게 정말 다른 사람인 것처럼 써보고 싶기도 했다. 질투에서 시작된 관심이었지만, 글을 쓰는 동안, 내 글 안에서 그는 점점 독립적인 인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를 쓰는 것은 결국 나를 쓰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꺼내어 보일 용기가 없다는 말이 맞다. 각색이라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때의 기억을 훼손하기라도 하면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미 많이 달라진 이야기를 들춰보고자 다시금 찾아간 자리는 닫혀 있었다. 그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그도 알고 나도 아는 집안사, 아버지에 대한 그 무거운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너무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닫아버린 창에 멱살 잡고 끌어내고 싶지 않았다.
올해 초,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를 가벼운 대화가 오고 갔다. Coldplay 콘서트에 같이 가서 "Fix You"를 듣자는 말에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항상 나는 그런 편이었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일까 봐 말하지 않았다.
"Fix You"는 마지막에 그가 듣던 노래였다. 그에게는 고장 난 것을 고치겠다는, 위로하겠다는 그 노래가 필요했나 보다. 그는 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동시에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처럼.
내 안에서 많은 대화가 오고 간다.
비가 와서일까. 다시 펼쳐본 이야기는 여전히 축축하다.
쓰려했던 이야기는 결국 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였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결국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 되었다. 가족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나는 그를, 그리고 나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보듬으며 살아온 우리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지 않는 것도, 닫힌 창을 억지로 열지 않는 것도, 모두 지키는 방식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떤 이야기는 완성되지 않은 채로 남아도 괜찮다는 것을. 어떤 인연은 먼 곳에서 그저 안부만 전해도 충분하다는 것을.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그리고 늘 내게 말씀해 주셨다.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너무 많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아버지 말씀이 그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어쩌면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그가 변하고 싶었던 것은 그의 상황이 아니라 그의 내면이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가 변하기를 바랐다. 가시를 품은 꽃이 아니라 햇살 아래 편안히 피어나는 꽃이 되기를. 그러나 그것은 내가 바라는 변화였을 뿐, 그가 원하는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 쓰지 못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할지도 모른다.
변하는 것보다 평안하길 바란다
시간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과 마주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방식을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어떤 마음을 품느냐였다. 변화를 강요하는 마음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마음. 완성을 재촉하는 마음이 아니라 미완으로 남아도 괜찮다는 마음. 부정하는 마음이 아니라 수용하는 마음. 지난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어도 괜찮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내 친구였던 그에게, 나는 이제 변화가 아닌 평안을 바란다.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비가 그친다. 빗소리가 멈춘 자리에 고요함이 찾아온다. 창밖을 보니 젖은 아스팔트가 반짝인다. 쓰지 못한 소설도, 지키지 못한 약속도 지나간다. 다 덮고 이제 나는 다음 페이지를 펼친다.
2025.09.29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