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뭔가요?"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이런 거 여쭤봐도 될지 모르겠지만, 죽을 때 어떤 느낌인 건가요?"
점쟁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했다.
"사실, 최근에 매년 지인분들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마치 죽음이 가까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말하면서 오른손 손등을 왼쪽 어깨에 가져다 댔다. 죽음이 어깨 너머로 따라다니는 것 같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지난 7년 동안 1~2년에 한 명씩 조부모님, 친인척, 지인분들이 돌아가셨다.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다. 강단있게 나의 죽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을 빨리 끝내고만 싶었던 때도 있었다.
나는 나름 강하다고 생각했고, 가실 분들이 가신 거라고도 여겼다.
하지만 매년 그런 일을 겪고보니 그들의 부재가 겹치고 겹쳐 슬픔에서 두려움으로 변질되었다.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코앞에 나의 일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매일 출근길, 나는 나의 죽음을 상상했다.
"처음엔 죽으면 어디로 갈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사실 죽으면 그게 끝일 수도 있잖아요."
나는 점쟁이를 향해 왼손 손등을 살포시 뻗고 그 위에 오른손을 영혼은 없다는 듯 나풀거렸다. 이런 생각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는 걸 몸짓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출근길. 2년 동안 지하철을 타고 논현역에서 신사역 방향으로 환승할 때마다 나는 긴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그 계단은 무척이나 길었다. 평범한 날이였다면 직장일, 직장상사, 동료들 등에 대한 생각들로 스트레스를 받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죽음이 직장 내 괴로움을 앗아갔다.
매일 아침 계단을 내려갈 때면 같은 생각들이 반복되었다. 죽는다는 건 뭘까. 어디로 가는 걸까. 어떤 느낌일까. 다음은 없지 않나. 계단을 한 칸씩 내려갈 때마다 다라를 가까스로 옮겨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심지어 전혀 상관없는 연예인들, 예를 들어 김수미 배우님의 부고 소식을 들으면 감정이입돼요. 그러다 보니 밤에 잠을 청할 때면 잠드는 것이 죽을 때 느낌과 똑같지 않을까 생각하게 돼요. 두려워요. 저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2025년 1월, 신년운세를 보러 간 자리였다.
다른 사람들처럼 나도 한창 직장 승진이나 재물운에 대해 물어봐야 했다. 하지만 정작 내 입에서 나온 질문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아는 지인에게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인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삶에 미련이 많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라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들었다. 내가 되물으니, 나의 오해라고 했다. 알고보니 현재를 즐기라는 말이었다라고 했다.
죽음이 두렵다는 말이 어떻게 삶에 대한 미련으로 들릴 수 있는지, 그게 또 어떻게 현재를 즐기라는 조언으로 바뀔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인은 내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물어볼 수 있는 곳이 점쟁이 집이였다.
점쟁이는 내 질문에 신기한 듯 대답했다.
"통상적으로 죽음에 대해 물을 때, 사람들은 두렵다고 말하진 않아요. 막연하게 무섭다고 말을 하지. 두렵다는 건 당장 내일 일어날 일처럼 느낀다는 거잖아요? 당신은 아직 그럴 나이도 아니고..."
점쟁이는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아버님도 한참 정정하시고,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죽음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 이쪽 세계에선 죽음이 끝이 아니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모르니까..."
점쟁이의 목소리가 한 템포 낮아졌다.
"그리고, 죽을 때 느낌은 잠드는 느낌과 달라요. 영혼이..."
점쟁이는 말을 멈춰 섰다. 무언가 더 말하려다가 그만둔 것 같았다.
"잠은 꼭 자야 해요. 쉬어야 하고 그렇게 내일을 시작해야 하니까. 잠드는 게 무서워서 못 자면 그게 더 큰 문제가 돼요."
점쟁이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죽는다는 느낌과 잠드는 느낌은 달라요. 죽는다는 건 삶에서 자연스러운 한 부분이에요. 당연한 이치인 것이고,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생각하지도 말아요. 당신에게 지금 더 중요한 건 잠을 잘 자는 거예요."
점쟁이의 말을 들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난 10년이상동안 혼자여서 다행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슬픔은 나누면 배가 되니까.
가족이 아닌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그 누군가가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떠나고 나면 더 비참해져 버릴테니까.
살을 혼자 맞고 혼자 견뎠고 혼자 견디는 중이라 차라리 잘되었다.
이후에도 어쩌피 가족을 만들 수 있는 물리적 생리적 어려움이 있으니까.
앞으로도 오히려 혼자인게 나을 수도 있다.
25.12.05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