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 에세이를 마치며

by 봄플

브런치는 최대 연재글이 30개다.

미술 브이로그는 처음에 내 사색적인 부분에 치우쳐 금방 쓸 수 있을 것이라 자부했다. 미술평론이나 미술 에세이를 쓰는 게 쉬울 거라고 생각한 것은 과소평가였다.

한 개의 글을 쓰려면 최소 2시간은 인물을 공부하고, 이후 2시간은 그 인물이 어떤 생각까지 했을까 고민해야 했다. 2시간은 글을 쓰고 고치고, 2시간은 저작권에 문제없는 작품 사진을 찾고 출처를 정리했다. 하루에 8시간씩이었다.

사색을 하려면 부수적으로 여러 정보가 필요했다. 기획했던 내용보다 부수적인 면에 훨씬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시간들이 아깝기까지 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미술에 대해 특별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작품에 대해 논하려면 시대상과 시대 철학까지 알아야 했다.


제일 큰 문제는 작품 사진이었다. 저작권에 문제가 없는 사진을 게재하려면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없었다. 좋은 작품일수록 국내 사이트에서 저작권이 막혀 있었고, 해외 갤러리 사이트는 유독 저작권에 민감했다. 제일 큰 고비였다. 시중 AI가 뽑아내는 이미지는 훌륭하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아마도 좋은 작품이 되지 못할 것이다. 가로막힌 명작을 대신할 수는 없다.


두 번째 문제는 인물에 감정이입하는 것이었다. 한 인물의 시대상과 그 시대의 철학을 느끼고, 그가 다닌 아카데미와 철학에서 파생된 듯한 미술 학파들은 나를 옥죄였다. 틀에 맞춰져 있는 느낌을 상당히 싫어하는 성향인 나로서는 그 인물에 갇혀 있는 듯했다. 타인에 큰 관심이 없는 나는 그 인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빵을 좋아했을지까지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덕분에 그들에게서 인생의 팁을 얻을 수 있었다. 그들의 작업 태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거창한 예술적 야망보다 일상적이고 가까운 대상에 천착하는 진정성이었다. 그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말했던 것은 좋아하는 것을 하기에도 여생은 짧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에게 그려야 할 오브제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다. 작품 동기의 단절이 올 때마다, 그들은 가까운 인물, 사물, 자연 심지어 도형 등에서 뮤즈를 삼아 전념했다. 개인적으로는 '지혜는 현관문 옆에 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좌우명 삼았던 뜻이 풀린 느낌이었다. 학풍을 바꾸겠다느니 거액을 만지겠다느니의 거창한 목표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또한, 인생 말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깨달았다. 미술 대가들은 말년의 신체적 한계 속에서도 작업을 지속했다. 또한, 성공하지 않았다면 재정적 어려움에 빠지거나, 성공했다면 굳이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여생을 보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작품을 놓지 않았다. 더군다나 노년으로 갈수록 그들은 눈이 보이지 않거나, 팔이나 손목, 관절 등 신체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런 일들은 한꺼번에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은 끝까지 붓을 내려놓치 않았다. 누구나 그러한 상황이라면 업을 내려놓고 한탕주의나 이기주의로 변하기 마련이다. 이는 재정적 안정이나 명성과는 별개로, 창작 그 자체가 그들 운명의 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그리는 업이 그들의 존재성이며,
가까운 대상이 천착하는 진정성에
나는 마스터의 말년에 멋있음을 보았다.

* 미술작품 에세이 바로가기


미술에 대해 나름 깊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금이나마 '글을 짓는다'라는 표현에 걸맞은 작업이 아닐까 싶다. 큰 틀에서는 같은 주제로 30개를 연재해냈고, 각 연재마다 인물마다 다르게 쓰고 싶었다. 글로 아름답게 그려내고 싶은 마음으로 지어냈으니 말이다.

때론 지쳐서 쓰기도 했지만 그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여 끊임없이 사색하고 개인적 의견까지 피력해야 했다. 다 쓴 글은 다시 한번 내 생각을 드러내고 강조하기 위해 고쳐쓰기를 반복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싶었다.

이런 글이 얼마나 읽힐까, 관심이 있을까, 그 관심이 내 만족에 부합할 정도로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게 맞는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비효율적인 미술 브이로그를 작성하면서 이것이 거름이 될까, 취미가 될까 싶기도 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일상을 그리고 이야기하는 곳이라는 걸 알았을 때, 글을 쓰려는 사람들만 모여 있고 외부인의 유입은 적다는 걸 깨달았다. 라이크와 팔로우는 소규모 플랫폼답게 친목으로도 이뤄진다는 걸 알았을 때 실망감이 컸다.


진정성이 담긴 그림을 보는 것만큼 행복 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취미는 필요 없었다. 지난 9월 미술관련하여 다시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해볼까 하여 입학시험에 대해 고심했었는데, 그 생각도 철회했다.


하지만, 브런치에서 좋은 글을 찾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점, 간접적인 반응으로나마 미약하게 읽어낼 수 있다는 점, 계속해서 기획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했다. 덕분에 미술에 관한 사색적인 글을 써볼 동기를 얻었었다. 언젠가는 또다시 개인적으로 미술에 관해 연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취향의 확신이 아니라 성향적 가능성이다.


나는 또 다른 기획을 하고 있다. 미술이 아닌 다른 글이다. 그 연재글이 또 다른 피봇이 되어 내 삶을 지탱해 주길 바란다.



2025.11.24 작성



'갤러리 없는 날: 프라다 브이로그' 연재 중에 있습니다.

링크: 미술작품 에세이 바로가기 (매주 월요일 오전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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