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 안경을 쓴다.
올해 초, 직장인이었던 나는 자주 가던 절 근처에서 이 안경을 샀다. 미스터젠틀맨, 테만 60만 원짜리이다. 눈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단순히 블루라이트 차단용으로 구매했을 뿐이다. 덕분에 시력이 조금 더 나빠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래도 만족하며 쓰고 있다.
처음 안경을 고를 때가 생각난다. 안경은 그 사람의 분위기를 만든다. 그래서 쓰기가 어려웠다. 화려한 크롬하츠를 고르려다가도, 결국 최대한 테의 노출이 적고 가벼운 안경을 골랐다. 안경테가 나를 규정하는 것 같아서였을까. 아니면 안경 너머로 보이는 내 얼굴이 낯설어서였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안경을 살 때면 묘한 충동이 인다. 안경도 패션의 한 장르라 하나씩 모으고 싶어진다. 10년 전에 산 5만 원짜리 뿔테 안경은 지금도 서랍 어딘가에 있다. 두툼하지만 나름 디자인이 재미있는 안경이었다.
그렇게 안경을 모으면서도, 정작 나는 안경을 끼고 밖을 나서지 않는다. 눈이 그리 나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멀리 있는 것들은 흐릿하다. 하지만 차라리 안 보이는 게 속 편하다고 여기는 편이다. 보고 싶지 않은 것들까지 선명하게 보일 필요는 없으니까.
요즘같이 많은 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인지, 시력도 좋아지는 느낌이다.
그런데도 글을 쓸 때만큼은 다르다. 집에만 있으니, 글짓기에서도 사적인지 공적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브런치도 나에겐 엄연히 공적인 존재이다. 안경을 쓰면 마치 직장인처럼 다른 사무실에 입장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안경을 쓰면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이 글에 더욱 진심이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 독자들에게 영감이 되는 글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안경을 쓰면 차분해지기도 한다. 세상이 조금 더 선명해지고, 나는 조금 더 집중하게 된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제외하고는 안경을 쓴 채 한참 동안 생각을 한다. 마치 빵 굽는 마음으로 오븐 앞에서 할 일도 없이 가만히 지켜만 본다. 특히 미술과 같은 얘기를 쓸 때,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쓸 때 유독 심한 듯하다.
반복적으로 누구나 알 법한 흔한 얘기를 써서 디지털 세상을 더럽히는 쓰레기를 만들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글체의 화려함보다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게 된다.
사실 언어유희나 화려한 말빨은 청순할 때나 가능한 것 같다. 많은 지식을 쏟아내는 전문가, 있는 듯이 내뱉는 영업사원, 포장마스터 작가, 작사가, 평론가 모두 얼마나 청순한가! 그것 또한 실력이라고 세상은 말한다. 얄팍한 속임수 같은 그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의 주임교수님은 늘 말씀하셨다.
- 그런데 우리 주임교수님은 화려한 미쉐린 맛집을 자주 찾아다니신다.
물론, 그 말을 모두 지키기엔 아직 내가 현명하지 못한 듯하다. 나 역시 안경을 쓰고 글을 쓰면서, 나의 글이 때로는 화려했으면 싶고, 때로는 소박했으면 싶다.
안경은 공간을 다르게 인식하게 만든다.
같은 책상,
같은 노트북 앞이지만,
나는 오늘도 안경을 쓰고, 그 공간에 나를 둔다.
안경을 쓰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다시 구별 짓는 일이다.
25.11.01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