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탕

by 봄플

평소 사우나를 좋아했다.

사우나는 5성급 호캉스에서 어김없이 찾아가는 곳이다. 이상하게 오래된 객실의 꿉꿉한 공기를 벗어나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이기도 했다. 처음엔 여독을 풀기 위해서였다. 그러다 어느새 습관이 되었고, 이제는 필수 코스가 되어버렸다.

객실 요금만큼이나 만만치 않은 사우나 비용이지만, 동네 목욕탕과는 차원이 다른 깔끔한 인테리어과 어메니티 서비스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카드를 내민다. 깨끗한 온탕에 온몸을 맡기고 버블 마사지를 받으며 호흡을 고르다 보면, 마음속 복잡했던 것들이 하나둘 비워진다.

그리고 이번 호텔은 달랐다. 야외 노천탕이 있다는 것이었다. 도심 한복판, 강 건너편으로 빌딩들이 즐비한 곳에서 말이다. 하늘에는 경찰 순찰 헬기까지 주기적으로 비행하고 있었다.

"아무도 보지 않으니 그냥 탈의하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직원의 말은 상상과 달랐다. 아무리 사우나라지만, 아무리 빌딩이 저 멀리 있다 해도 최소한 가릴 만한 것쯤은 제공할 줄 알았는데.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알겠다고 답했다.


먼저, 실내 사우나부터 시작했다.

버블탕에 몸을 담그고 벽을 멍하니 바라보니, 처음엔 물때 낀 타일들이 눈에 거슬렸다. 왜 이런 걸 보고 있어야 하나 싶어 괴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이 후끈한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릿속이 텅 비워졌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때쯤, 문득 깨달았다. '아, 이렇게 생각을 멈추기 위해 여기에 왔구나.' 일상에서 나는 끊임없이 생각한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지치게 한다. 때로는 그 생각들이 나를 망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이런 단절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실내 온탕에 그리 오래 앉아있지 못하는 체질이다. 이번에도 37도 버블탕에서 20분, 43도 온탕에서 10분 정도가 한계였다. 그래도 몸의 긴장을 풀리게 하고 생각을 차단했다. 그리고 숨이 막혀왔다.

숨 차오를 때쯤, 야외 노천탕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리와 몸을 정돈했다.

그냥 체험 삼아, 신선한 공기나 마시고 가자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밖으로 나섰다.


다행이다. 밤이어서.

즐비한 빌딩 앞에서 탈의된 채 제일 두껍고 큰 수건 하나를 두르고 입장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야외 노천탕으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몸을 담그니, 신기하게도 주변의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공기도 달랐다.

날카롭게 차가웠던 공기도 부드럽게 바뀌고, 헬기가 지나가든, 강 건너 빌딩에 누가 있든 신경 쓰이지 않았다. 물론 몸은 최대한 물속에 담그고 있었지만. 몸은 따뜻한 온수에, 얼굴은 차가운 야외 공기에 노출된 상태. 야경도, 찬 도시 바람도 모든 것이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막상 야외에서 옷을 벗으니 묘하게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다. 왜 야외 노천탕이 여탕에만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여성들이 덜 자유분방해서가 아닐까. 그리고 그래서 '선녀탕'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새로운 자극이 복잡한 머리를 깨끗하게 비워주었다. 도심 한복판의 산성비였을 텐데도, 비라도 내렸으면 더 운치 있었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주변을 둘러보니 더욱 흥미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대교도 보고, 다리도 보고, 집으로 향하는 자동차들의 꼬리빛도 보았다. 아래쪽 사람들은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잠시 현실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모든 걸 잊어버리고, 야경을 구경하는 관람객이 되었다. 노천탕 대리석에 몸을 뉘니 잠이 오는 것만 같기도 했다. 물에 몸이 둥둥 떠오를 때면 도시 위를 날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이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온탕에서 한숨과 함께 그리 많은 생각을 아득하게 사라져 버리게 했다. 그렇게 사우나를 오래 못 하는 사람이 한 시간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주의했어야 했다. 일어서는 순간 휘청였다. 찬공기에도 다시 숨이 막혀 왔다.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독주 속에서 끌려다닌 마음을 정돈한 기분이다. 매일 야근으로 탔던 택시에서 본 한강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얼른 샤워를 하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안고 머리를 말렸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잠깐의 일탈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 같았다. 그렇게 보니 굳이 도시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 가까우니 오히려 숙박은 하지 않고 가끔 사우나만 하러 와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에겐 작은 일탈이었고 비틀거렸지만, 낭만적이고 재미있었고 아름다웠다.

비가 내렸다면 더욱 멋있었을 것이다.


2025.09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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