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여행 2] #. 회문산 자연휴양림 촛불 앞 대화
나는 직장에서 신비주의 전략을 썼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고는 굳이 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결혼하지 않고 일만 하는 나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았다. 나를 의뭉스럽다고 보았을 수도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묵묵히 성실하게 일했다. 그리고 비비 모임에 와서 나의 고충을 토로했다.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다, 라고 말해질 수 있는 사람이다. 상관없다. 수많은 가십이 떠돌아다니는 직장은 사적으로 안전한 곳이 아니다.
비비는 드디어 1박 2일 휴양림으로 MT를 떠났다. 계획이 있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주제가 있는 여행을 시작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인근 자연휴양림을 두루두루 섭렵했다. 이번 주제는 ‘자신의 성장기를 여성주의 시각에서 바라보기’. 나는 낯설었다. 나는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만, 그것을 쉽게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의견이나 주장보다는 정서나 표현에 관심 있는 나는 말보다는 글이 편해서 노상 끄적였다. 하지만 함께 살아가려면 주장이든 표현이든 나를 타인에게 전달해야 했다. 나의 말주변이 조금이라도 늘었다면 그건 비비 워크숍에서의 말하기 덕분일 것이다.
2004년 11월, 비비 2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기념으로 1기와 2기가 함께 가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1기만 떠났다. ‘푸른산’은 아버지 제삿날이라 동행하지 못했다. ‘마을’이 준비한 안내지와 전기가 나갔을 때나 쓸 하얀 초를 하나씩 받고, 어둠을 만든 후 초를 밝혔다. 우리의 판도라가 열렸다.
나는 머릿속으로 수없이 반복해서 복화술을 만들었던 하나의 장면을 이야기했다. 딸인 내가 대학교 합격 소식을 전하지 못한 그날에 대하여. 그건 내가 딸이어서인지, 아들의 불합격 소식이 먼저 도착해서인지 하나의 이유를 찾기 어려웠지만 분명한 건 그날은 슬픔 가득한 날이었다. 나는, 내가 떨어졌어도 엄마는 그렇게 슬퍼했을까, 곰곰 생각했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는 자식 교육에 대해 차별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날 이후로 말을 잃고 글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롤 모델로 불혹에 등단한 박완서를 언급했다. 박완서의 세계사 전집을 모으고 있을 때였다. 작가가 되겠다는 것보다는 여성 이야기를 쓰는 여성 작가에 대한 선망이 더 컸다. 그런 접촉면을 만나는 것이 반가웠다.
우리는 어둠 속 촛불 앞에서 개인의 역사를 풀어냈다. ‘반짝별’은 롤 모델로 학창 시절 영화관에 데리고 간 영어 선생님을 떠올렸다. 결혼하게 된다면 남편과 동등한 입장에서 결혼생활을 해야 하는 문제 등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눴다. ‘주얼’은 유복한 집안에서 보낸 어린 시절, 대학에서 사회 부조리와 불합리를 알게 되며 학생 운동을 시작한 사연, 차라리 여자로 태어난 게 가부장적 집안에서는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했다. ‘천영’은 형제 많은 집안에서 딸이 공부해서 뭐 하냐고 했지만, 본인 마음 가는 대로 밀고 나가는 성격, 직장인이 된 다음에야 경제적 안정이 주는 평안함을 나눴다.
우리는 모두 집안에서 의사소통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자 ‘마을’과의 관계를 새삼 알게 되었다. 나는 영화 모임에서, ‘반짝별’은 대학 선후배로 ‘마을’을 만나면서 자신만의 잠재적인 능력을 발견했다. ‘주얼’은 학생 운동과 여성단체에서 일하게 되면서, ‘천영’은 같은 곳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인연을 이어왔다. 첫 모임에 ‘마을’의 직장 동료라며 정장 차림으로 나타난 ‘푸른산’이 떠오른다. 이런 이야기를 직장에서 발설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매번 주제를 바꿔 이야기 나눌 때마다 각자 삶의 맥락을 이해하게 되었다. 너는 그렇게 살아왔구나. 비비의 비혼 생애사가 차곡차곡 이어졌다. 어디에서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안전한 관계’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