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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혼들의비행 Feb 19. 2023

[여행 3] 두 번 간 개심사

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여행 3] #. 두 번 간 개심사     


개심사는 거꾸로 가야겠다.

2015년 7월 모처럼 1박 2일 MT를 갔다. 비비는 공동체의 변화를 꾀할 때마다 여러 차례 워크숍을 진행했다. ‘공간비비’를 연 지 5년 지났고, 공간의 형태와 내용에 변화가 필요했다. 5년간 미등록 단체로 16평 사랑방 같은 공간에서 셋이서 꼼지락꼼지락 지냈다.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가? 이 삶을 지속할 수 있을까? 우리는 ‘협동조합’ 법인 형태를 논의했다. 서울에 있는 1인 여성 가구를 위한 협동조합을 견학하기로 했다. 상근자뿐만 아니라 비비가 함께 여행 분위기를 냈다. 내려오는 길에 개심사, 해미읍성을 가보면 어떨까. 12년 만이다. 거기 두고 온 초심은 그대로 있을까.

    

견학은 공간비비가 2016년 1월 협동조합 법인을 설립하고, 5월 공간을 확장 이전하는 데 현실적 도움이 되었다. 우리는 카페와 프로그램 두 마리 토끼를 잡지 않고, 프로그램 중심의 운영에 합의했다. 우리가 돈을 벌면 얼마나 번다고 말이야. 12년 전, 개심사 앞 민박집에서 ‘주얼’ 지도로 요가를 마치고, ‘돈 모으는 방법’ 주제로 토론했었다. 지금까지 돈을 ‘많이’ 모으지 못했다. 우리는 ‘조금’ 벌어서 ‘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걱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후련한 마음으로 개심사로 향했다. 그래, 우리는 우리 식대로 가는 거야.

    

여기 맞아? 이렇게 올라갔었어? 밤새 토론하다가 잠이 든 새벽, 깨워 개심사에 올랐지. 어쩐지, 뭔가 뿌연 안개 같은 장면이 생각나더라고. 스님의 낙엽 쓰는 소리, 사진 동아리 대학생의 셔터 소리, 바람 소리가 자다 일어난 우리를 반겼지. 그래서인지 비몽사몽의 기억이다. 그런데 반소매 차림으로 더위를 식혀가며 올라가고 있으니, 너무 다른 곳으로 느껴졌다. 돌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저기, 한 번만 돌아봐봐봐봐. 찰칵.

    

해미읍성은 여름 자락이라 초록투성이다. 나무 그늘에서 한참 쉬었다. 그래도 성곽은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어? 저는 괜찮아요. 우리는 잠시 흩어졌다. ‘마을’, ‘주얼’과 나는 성곽을 따라 한참 걸었다. 우리 그때도 여기 올라왔어요? 나는 어스름 저녁 노을빛과 함께 성곽 끝에서 만난 은행나무 한 그루를 찍어왔었다. 그리고 모니터 옆에 한참 동안 붙여놓았었다. 노란빛인가 붉은빛인가 모를. 우리는 다시 만나 정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왔다. 성곽을 배경으로 거기, 거기, 그대로, 그대로, 잠깐만, 찰칵.

     

여행에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는 나이를 먹었고 개인적 상황이 많이 생겼다. 셋은 공간비비에서 상근했고, 비비의 활동 중심이 공간비비로 옮겨가면서 외연은 확장되고, 비비의 결속력은 떨어졌다. ‘반짝별’은 ‘영어읽기’를, ‘푸른산’은 ‘산희당쿠킹클래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종종 공간비비에 왔다. ‘천영’은 생일날 왔다. 그리고 40대를 맞은 우리에게 질병과 부모 돌봄이 왔다. 다 함께 1박 2일 일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초창기에 비비가 함께 간 해외여행은 2007년 백두산 여행이 마지막이다. 이후 각자 해외여행을 갔고, 비비는 잘 갔다 오라는 격려금을 전달했다. 뒤늦게 합류해서 함께 해외여행을 간 적 없는 ‘이청’에게 비비는 터키 여행 경비를 지원했다. 최근 우리는 2019년 해외 여성주거공동체 탐방을 위해 프랑스와 영국을 극적으로 갔다 왔다.  

   

여행 구성원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건 마치 각자 비비와의 관계가 변화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미르’는 백두산 여행을 함께 갔지만 2012년 결혼했다. 중국 단동으로 떠나는 인천 국제항, 15시간 배 타기, 10시간 버스 타기, 허허벌판의 1시간 동안 1,008개쯤 되는 계단 걷기로 이어진 백두산 천지를 향하는 길에 함께 했다. 우여곡절의 여행을 함께 했어도 결혼은 별개의 선택지였다.


‘이청’은 두 번째 개심사에 갔지만 지금은 비비와 함께 여행을 가지 않는다. 초창기 잦은 여행에서 얻은 친목, 친밀, 신뢰로 이어진 숱한 시간을 공유해야만 가능한 무엇이 있었을까. ‘이청’은 2021년 비비를 떠났다.


‘천영’은 첫 번째 개심사에 갔었지만 앞으로 언제 함께 떠날 수 있을지 그게 언제일지 잘 모르겠다. 우리는 공간비비에 집중하면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비혼PT나이트’, ‘정상가족관람불가展’, ‘걷기여행’ 등 이전 여행과는 다른 모습으로 여행길에 나섰다. ‘천영’은 공간비비와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 비비의 여행은 취향보다 의미가 더 강해졌다.

     

마음을 여는 절 개심사開心寺.

산사의 고요 속에서 설렘과 떨림으로 마음을 열었던 초심! 나의 초심을 거기 두고 왔다. 늘 찰칵하는 순간만이 남아 있었다. 우리는 긴 시간을 통과해 개인적으로, 공동체적으로 변화하는 상황을 바라본다. 나는 여행의 변화를 받아들이듯 관계에서도 그러고자 한다. 이 모든 상황과 관계가 ‘비비의 변화’ 속에 물들어가면서 비비가 지속되고 있었다. 비비는 또 어떤 변화 앞에 서게 될지 궁금하다. 비비의 여행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어떤 모습으로 죽어갈까. 우리는 앞으로 공-산共-産할 수 있을까. 우리는 기꺼이 서로의 공생자共生者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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