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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혼들의비행 Feb 06. 2023

[여행 1] 분절된 캄보디아

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 비비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비비의 30대는 여행으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함께했던 그 수많은 여행에 기쁨과 슬픔을 넘어 무엇이 있을까. 긴 시간 동안 같은 공간에 함께 있다 보면 많은 일들을 겪는다. 그것보다는 한 사람의 다른 모습을 본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하나의 집단은 어떻게 굴러가고, 개인들은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며 각자의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사뭇 놀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떻게 익숙해져 가는지. 친밀한 관계일수록 함께 여행 갔다 와서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지 않나. 우리는 어떻게 헤어지고, 또 어떻게 헤어지지 않고 다음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을까.


         

[여행 1] #. 분절된 캄보디아


‘가장 기억나는 여행이 어디예요?’

‘나는 캄보디아.’

‘푸른산’의 대답이다.

나는 대답 대신 웃음 이모티콘을 올렸다.

‘봄봄 안 감.’

‘마을’이 올렸다.

‘비행기 회항과 공항에서 12시간 지옥, 새벽녘에 대합실에서 치킨.’

‘안 간 사람에게도, 간 사람에게도 너무 강렬했구나.’

‘태국에서 봉고차로 신작로를 달린 6시간도 기억난다.’

‘반짝별이 그때 심하게 체하고, 푸른산이 바늘로 땄지.’

‘마을’과 ‘푸른산’이 한참 추억을 떠올린다.

‘진짜요?’

나는 없는 기억이다.

‘내가 허준이었지. 열 손가락 아마 다 땄지.’

‘푸른산’의 무용담을 듣는다.

‘진짜요?’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한다.

‘그때 사건이 많았네요. 내가 쓸 수 없는 이야기.’

     

내가 쓸 수 있는 캄보디아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비비는 모임을 시작하자마자 해외여행 경비를 마련했다. 당시 적지 않은 금액 10만 원을 회비로 냈다. 주 5일 근무제가 막 시행되던 시점이었다. 30대 초반, 결혼하지 않은 자, 가장 괴로운 시기는 명절이다. 가부장제가 가장 극명하고 완벽하게 구현되는 시기, 결혼했든 결혼하지 않았든 명절에는 누구나 떠나고 싶다. 각자 직장을 다니고 있는 상황에서 모두가 함께 떠날 수 있는 날은 오로지 명절뿐이었다. 우리는 첫 해외여행을 2004년 1월 설 명절에 맞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로 정했다. 설렜다. 모임을 시작하고 1년이 아직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떠나지 못했다. 아니, 나만 떠나지 못했다. 이건 간직해야 할 경험! 소외의 감정은 때로는 상황이 만든다. 사람이 아니라. 그런데도 관계에서 상처의 주체는 주는 자가 아니라 ‘받는 자’라서 당사자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설마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이 여권으로는 출국할 수 없습니다.’ 공항 직원의 무참한 말이 반복해서 되돌아왔다. 가이드가 알아봤지만, 너무 늦었고, 방법은 없었다. 여행 경비를 돌려주는 방법밖에. 내 여권은 단수여권이었다. 남은 기간만 확인한 여행사를 탓한들, 무지한 나 자신을 책망한들 무슨 소용이랴. 우리는 당황했다. 비비는 캄보디아로 떠났다. 난 캐리어를 끌고 명절 귀성행렬 속에 묻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공항 가는 길만 찍고 온 줄은 아무도 모르겠지.

     

나의 기억은 분절되었다. 흥분한 마음으로 가방을 꾸리던 기억은 떨어져 나갔다. 비비가 캄보디아를 다녀온 후 여행 이야기를 나눈 장면은 페이드아웃 되었다. 나에게는 공항에서 당혹한 순간부터 집으로 돌아와 창문 한 번 열지 않고 지낸 4박 5일만 기형처럼 남아 있다. 창밖에는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캐리어도 덩달아 열리지 않았다. 스스로 갇힌 형국이었다.


온종일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인가. 몇 년 전 직장에서 장기근속자 대상으로 태국 여행을 보내줬다. 그때 처음 여권을 만들었다. 회사에서 한꺼번에 처리했다. 나는 자랑했다. 나 여권 있어. 이것이 단수여권이지, 복수여권인지조차 개념이 없었다. 무지몽매의 결과인가. 한탄했다. 그런데 비비는 떠났구나. (그렇구나!) 다른 방법은 없었겠지. (그렇구나!) 내가 아닌 다른 누구였어도 떠났을까. (그렇구나!) 어리석은 질문들을 수없이 떠올렸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 이후로 줄곧 ‘나와 비비’의 관계에 대해 골몰했다.

     

비비가 우여곡절의 캄보디아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 나는 한동안 애써 태연했다. 나에게 비비는 무엇인가. 비비에게 나는 무엇인가. 나는 이 아슬아슬한 마음을 안고 비비를 계속할 수 있을까. 공동체적 삶에서 미덕은 서로의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사심 없는 격려, 의심 없는 지지를 보냄에 있다. 우리는 언제든 누구에게든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줄 마음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관계에서든 개인의 몫이 있다. 혼자 잘 살아야 같이 잘 산다는 말은 사실이다.

     

이 사회에 대한 소극적 불만, 나의 생에 대한 기저의 허무, 인간에 대한 막연한 의심을 내면에 채우고 살아가는 나는 지금까지 한쪽에 물음표를 차고, 다른 한쪽에 느낌표를 차고 여기까지 왔다. 나와 비비에게 온갖 물음표만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지. 갈등의 중재는 상쇄할 것이 있을 때 사그라든다. 그 이유를 찾으면 그만이다. 찾지 못한다면 슬플 일이다. 갈등이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니까.
     

비비는 이듬해 2월 설 명절에 세부 여행을 떠났다. 나는 새로 만든 여권을 들고 조마조마했다. 이번에는 무사히 공항을 탈출할 수 있겠지. 다음 해 여름휴가에는 지인과 캄보디아에 도착했다. 이후로 비비와 공통이 아닌 각자의 캄보디아 에피소드를 나눴다. 나는 말이야, 그때 같이 갔던 지인이랑 여행 갔다 와서 소원해졌잖아. 정확하게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나 혼자 느끼는 감정이 불편했어. 내가 좋아하지 않은 모습을 본 것 같아. 그 모습도 그 사람의 일부분인데 말이야. 상대방은 아무것도 모르겠지. 이것은 실체가 없는 거거든. 어느 순간 감정이 바뀔지도 모를 거잖아. 마냥 즐거운 여행은 아니었어. 내가 그렇게 가보고 싶은 캄보디아는 아니더라고. 그냥 비비랑 같이 못 간 것이 아쉬웠나 봐. 폭풍 수다가 이어졌다. 나 원래는 이렇게 말 많이 안 하는 거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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