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혼들의비행 Jan 30. 2023

[공부 3] 날 버리지 말아줘!

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 비비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공부 3] #. 날 버리지 말아줘!     


2003년 봄에 쑥을 캐러 갔다. 

그해 2월 비비 첫 모임을 시작했으니, 봄이 오고 있을 때였다. 월 정기모임이 아닌 첫 번개를 쳤다. 쑥 캐러 갈 사람, 모이시오! ‘마을’과 ‘주얼’, 나 셋이서 갔다. 정기모임 외에도 영화 볼 사람, 등산 갈 사람, 잦은 번개들이 친목을 불러왔다.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반짝별’이 문득 그때 쑥 캐러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에 만나서 언니들이 쑥 캐러 간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뭔가 소외 감정을 느꼈다고. 아, 그랬구나, 새삼 알게 되는 마음이다. 그래, 우리는 각자 모임 안에서 느끼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을 어떻게 견뎌왔을까? 부딪히지 않는 갈등도 갈등이라 할 수 있겠지. 내면적 갈등.     


비혼여성들과의 네트워크 장을 마련하고자 공간비비 운영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비비 모임은 별도로 일정을 잡아서 만났다. 마을과 주얼, 내가 같은 공간에서 더 많은 일상을 공유하다 보니 비비 모임 때 만나는 다른 구성원들은 개별적으로 소외를 느꼈을지 모르겠다. 비비 모임만을 할 때와는 다르니까. 우리는 점점 공통의 기억이 줄어가고 있었다. 마을이 3개월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도, ‘푸른산’이 1년간 부산으로 사찰요리를 배우러 갔을 때도, 주얼이 6주간 인도로 요가 수련을 떠났을 때도 어느 개인이 소외를 느끼지는 않았다. 우리는 계속 통신했으니까. 우리는 열렬히 응원했으니까.     


소통이 쉽지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격려와 지지로는 나눌 수 없는 감정, 그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낯선 세계, 반짝별은 질병을 만났다. 비비는 당연하게 많은 것을 공유하는 공동체이지만, 분명하게 서로에게 타자임을 확인하는 육체성이 소통보다는 소외를 불러왔다. 반짝별은 유치원 영어 강사를 하면서 언니들이 있는 공간비비를 사랑방처럼 드나들었다. 모든 것을 언니들에게 묻고, 모든 것을 언니들에게 요청하고, 모든 것을 언니들에게 이야기했다. 반짝별은 공간비비에서 ‘영어 읽기’ 소모임을 꾸렸다. 소모임 1주년을 기념하고, 박차를 가하던 때, 2013년 7월 반짝별은 수술하러 서울에 갔다.     


반짝별의 발병에 우리는 놀랐지만, 질병 초기 단계라는 것에 안위하며 의연하여지려고 애썼다. 자연스럽게 하는 것은 더 어색하고, 반짝별의 심기를 살피는 것은 신경 쓰였다. 우리는 질병의 몸을 가진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반짝별은 그 마음을 비비와 나눌 수 없었다. 이건 우리가 예상한 바가 아니었다. 수술은 금방 끝났고, 반짝별은 일터에도, 공간비비에도 복귀했다. 돌아와 ‘왕초보 탈출 영어읽기’를 모집했다. 탈출하지 못했다. 반짝별은 2016년 11월 다시 서울에 갔다. 발병 5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번에는 긴 수술 시간과 긴 치료 기간이 뒤따랐다. 반짝별이 암을 만나기 전의 정체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반짝별은 요양하는 동안 질병 경험을 비비가 아닌 당사자들과 나눴다. 지금까지 많은 것을 공유한 비비보다 ‘몸의 상황이 같은’ 병실 언니들과 이야기할 때 ‘알아듣는 연대감’을 느꼈다. 우리는 비비 모임에서 전희경의 논문 ‘젊은 여성들의 질병 이야기와 시간 다시-읽기’,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봄날의책, 2017)를 함께 읽었다.     


반짝별이 겪은 질병 경험에 대해 예전보다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각자 다른 시간을 잘 지나온 힘이었다. 공동체가 서로 다른 개인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 타자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했다. 반짝별이 차곡차곡 몸을 회복하는 동안 코로나19가 찾아왔다. 어느 초등학교에서 방학에 본국으로 돌아간 원어민 강사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 자리는 반짝별의 새로운 일자리가 되었다. 반짝별은 수업이 없는 오전 타임에 요가를 하러 공간비비에 나온다. 여전히 영어를 사랑하지만 무리하지 않으려고 한다. 소모임을 꾸리기보다는 새롭게 만난 아이들과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영어 수업할까 고민한다. 컴퓨터 작업이 필요한 일은 주얼이 도와준다. 문제가 생기면 마을이 해결한다. 나는 가만히 바라본다.     


우리는 비비에서 모든 마음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간다. 각자 견뎌야 할 제 몫의 마음들. 마을은 없다고 해도 엄연히 존재하는 리더의 책임, 푸른산은 언젠가는 당도할 엄마와의 이별, 주얼은 삶의 가치인 이타심을 방해하는 외부 상황, 천영은 비비와의 느슨한 관계 설정, 내가 비비와 나눌 수 없는 마음은 무엇일까? 지금 비비의 20년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쉽게 정리되지 않는 글, 오로지 혼자서 질병을 견뎌낸 반짝별은 혹시 알까? 나는 이 마음을 고이 간직한다. 반짝별이 종종 말하던 ‘나를 버리지 말아줘!’가 떠오른다. 그건 마치 언니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각자 자신에게 하는 말로 느껴진다. 자기돌봄은 공동체에서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덕목이 아닐까. 나는 더는 미룰 수 없어, 이제는 써야 한다.     


오늘도 반짝별이 큰 숨을 몰아쉬며 요가를 하러 공간비비에 나온다. 

오늘 컨디션은 어때? 

좋아요. 근데 할머니처럼 눈물이 나네. 근데 이거 슬퍼서 우는 거 아냐. 

알아, 알아. 우리 늙어서 그러잖아. 

한참 다르게 흘렀던 각자의 시계가 다시 간극을 좁혀가고 있다. 

나, 오늘은 병실 언니들이랑 점심 먹기로 했어요.

그래? 오늘은 네가 한턱내는 걸로 하렴. 비비가 쏠게.

반짝별에게, ‘병실 언니들’에게 한턱내라고 ‘비비 언니들’이 격려금을 보낸다. 우리는 서로의 목격자로서 서로의 다른 몸을 인지하고, 위로의 다른 방법을 배운다. 

봄이 가기 전 쑥을 한번 캐러 갈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 2] 나는 그만두었을지도 몰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