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혼들의비행 Jan 23. 2023

[공부 2] 나는 그만두었을지도 몰라

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로 비비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공부 2] #. 나는 그만두었을지도 몰라     


고백할게. 20년 지나서 말이야. 지금 생각났거든.

모임에서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함께 공부하지 않았다면, 나는 그만두었을지도 몰라.

나에 대해서 계속 말하라고 하면 좀 피곤하지. 내가 언제나 똑같은 모습은 아니잖아.

비혼의 정체성, 여성주의 인식, 공동체적 실천을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 

나는 조용하고 고요하게 살고 싶어. 어떤 충돌도 없이. 너도 알잖아. 불가능하지. 나도 알지.

난 타인보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잖아. 인류애는 꽝이지. 그래도 가까스로 동참해야지.

나는 내가 좋은 사람이기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은근히 바랐어.

그래서 열심히 공부한 거야. 다른 건 없어!     


나는 노처녀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또하나의문화 편집부’에서 펴낸 『새로 쓰는 사랑 이야기』(또하나의문화, 1991),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또하나의문화, 1996), 조한혜정의 『글 읽기와 삶 읽기』(또하나의문화, 1995)를 읽고 있었다. 비혼모임을 하기 전이다. 나는 거시적 관점에 취약하다. 소설도 장편보다는 단편이 좋고, 대선의 향방보다는 오늘 본 영화에 나온 시詩 한 구절이 더 궁금하다. 90년대 초반 학내 학생운동이 남아있을 때, 나는 딱 한 번, 긴 행렬 마지막에 쭈뼛하게 서 있었다. 단체활동에 대한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나는 일상에서 가능한 삶의 실천을 찾고 싶었다. 나는 1984년 대안적 문화를 만들고 이를 실천해가는 동인들의 모임으로 시작한 ‘사단법인 또하나의문화’에 매료되었다. 내 삶에서 생활과 문화를 통해 작은 변화를 찾길 바랐다. 사랑과 결혼 이야기를 새로 쓰고, 나의 글 읽기가 나의 삶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텍스트를 통해,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 나아가는 삶이 나의 소박한 운동의 결이었다. 궁극적으로 나에게는 비혼의 삶이 결혼의 대안이 된 셈이다.     


‘비비’는 소도시 전주에서 비혼의 대명사가 되었다. ‘너 비혼이야?’ 대신 ‘너도 비비야?’라고 묻는다. 우리는 캐롤 M.앤더슨, 수잔 스튜어트가 쓴 『단독비행(Flying Solo)』(또하나의문화, 1998)을 읽고, 모임 이름을 비혼非婚들의비행飛行이라고 지었다. 줄여서 ‘비비’라고 불렀다. 그때부터 우리의 비행을, 우리의 공부를 시작했다.      


‘결혼을 했든지 안 했든지, 남자 친구가 있든지 없든지 간에, 당신 자신이 내적으로 쌓아 올리는 것 외에는 진정한 안정감이란 없다’라는 길다 래드너의 말처럼, 결혼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 이전에 혼자 사는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했다. 그것은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지를 명확하게 안다는 것, 그래서 단독으로 아름답게 비행할 수 있는 자아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단독비행』은 미국에서 가족치료사 두 여성이 40세~55세 중년기 독신 여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 프로젝트에 기초하여 쓴 책이다. 우리는 『단독비행』을 통해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자기 탐구를 통한 혼자 사는 즐거움이 있고,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비비가 있다는 것에 흐뭇했다. 그래서 우리의 이름이 비혼들의비행이지 않나.     


나는 혼자는 괜찮은데, 비혼도 괜찮은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여전히 정상성을 획득하고 싶었다. 소수성과 비정상성이 날 움츠리게 했다. 우리는 각자 비혼의 정체성에 대해 합의와 토론이 필요했다. 여성학 도서를 중심으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과 편견에 관한 책을 읽었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05), 줄리아 우드의 『젠더에 갇힌 삶』(커뮤니케이션북스, 2006),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시와시학사, 2002) 등을 통해 비혼으로서 여성주의적 사고를 확장했다.      


나는 그 어떤 것에도 갇히고 싶지 않았다. 결혼이라는 제도, 여성이라는 젠더, 페미니즘이라는 인식의 틀. 나는 나를 설명하고, 나를 증명하고, 나를 납득하기를 바랐다. 숱한 타자화 속에서 나는 나의 정체성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페미니즘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아야 한다는 신화는 깨져야 하며 다양한 관점 중 여러분 자신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줄리아 우드의 문장이 반갑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은 없다.’는 정희진의 말은 기존의 가치관을 혼란스럽게 할지라도 사유 방식을 전환할 용기를 준다. 여성주의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는 않지만, 나는 덜 불행하기 위해 나의 소수성을 인식한다. 나는 마냥 행복하지도, 마냥 불행하지도 않은 이 ‘비혼의 삶’이 ‘경험론적인 사실’로 ‘삶의 양식의 하나’라는 입장을 갖는다. 그래서 존재 방식 그대로 존중받아야 하지 않겠나.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사회평론, 2005)에서 ‘행복한 인생이란 대부분 조용한 인생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용한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를 읽고, 나는 행복을 정복한 듯 기뻤다. 내가 원한 것은 이거야. 흥분했다. 반면 하버드생 268명 대상으로 72년에 걸친 성인발달연구 결과보고서, 『행복의 조건』(프런티어, 2010)에서 조지 베일런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라는 사실이다.’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로 바뀌는 삶의 문제는 행복의 조건이 아니라 인간의 조건처럼 느껴졌다. ‘50대 이후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47세까지 만들어놓은 인간관계’라는 문구에, 그래, 우리가 30대에 만나서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했다.     


초록 단체 티를 받고 주춤한다. 이것을 입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입기 싫다. 직장에서도 종일 유니폼을 입고 있는데, 외부에 나와서까지 단체복을 입어야 하나. ‘마을’이 여성단체에서 일할 때, 나는 ‘여(성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캠프’에 참여했다. 참여자들은 다양한 여성단체 활동가들이었다. 나는 ‘활동가’라는 명칭이 어색한 ‘일반 직장인’에 속했다. 나는 낯을 가리고,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내가 있는 듯 없는 듯 드러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인 찬스로 캠프에 왔지만, 너무 어색하다. 착착, 참여자들은 바로 티를 갈아입고, 똑같은 상반신으로 나타났다. 나는 단체 티를 갈아입지 않은 채로 구석을 찾아 방황했다. 


이거 꼭 입어야 해?

정 싫으면 안 입어도 돼. 


싫은 건 맞는데, 나만 혼자 안 입고 있기가 더 불편했다. 나는 다음날 조용히 단체복을 입고 엉거주춤 나타났다. 똑같은 건 싫지만, 튀는 건 더 싫었다. 차라리 익명의 자유로움이 나았다. 어쨌든 거기에 잘 섞여 있어야 했다. 나는 ‘개인’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움찔하면서, ‘집단’이 형성하는 안전한 테두리를 원했다. 나는 좀 괴로웠다.     


비비의 공부가 ‘공동체’로 옮겨가면서 나는 직시했다. 나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사람이 다분히 공동체적 삶을 살 수 있을까?     


스캇 펙은 『스캇 펙 박사의 평화 만들기』(열음사, 2006)에서 ‘공동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했다. 서로 정직하게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운 개인들, 태연자약한 가면의 이면을 뚫고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개인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기’와 ‘서로 반기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개인이 모인 집단. 

나는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유기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나는 ‘공동체’라는 말이 싫었다. 스캇 펙은 ‘평화 만들기’라고 말하지 않나. 그 숱한 개인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룬다고 하지 않나. 우리는 비비에서 약속하지 않고 노력했다. 나는 그동안 어떤 개인이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존중받아 마땅한 개인 이전에, 나는 앞으로 이 공동체 안에서 어떠한 개인이어야 할지를.     


비비의 공동체성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매월 읽은 한 권의 책이었다. 공부가 없었다면, 결혼하지 않은 삶에 관한 질문들에 대해 나는 여전히 ‘그것은 아니고요’를 연발하고 있을 것이다. 『스캇 펙 박사의 평화 만들기』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덜 성숙한 개인으로 공동체적 삶을 여전히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의심이 많아 종교를 믿지 않는 나는 종교인이 쓴 책들에서 의심을 거두고 기꺼이 함께 할 용기를 얻었다. 아이러니다.     


엠마뉘엘 수녀는 『나는 100살, 당신에게 할 말이 있어요』에서 말한다.

“나는 내 삶을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해서는 안 됩니다. 탄탄하고 오래 지속되는 참된 사랑은 자기 자신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랑입니다.”     


비비와 함께 읽은 책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내가 지금까지 공동체적 삶을 지향할 수 있게 큰 울림을 주고, 공동체 안에서 정서적으로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흔들리지 않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희생이 아닌 나의 행복을 위해, 비비의 행복을 위해 나인투식스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16평 공간비비로 출근을 결정했다. 나는 ‘현명한 이기利己’와 ‘가능한 이타利他’를 온몸으로 체득한다. 공부가 몸을 바꾸게 한다는 말은 사실이다. 나는 점점 내 식의 활동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조용한 활동가’라고 해두자. 활동가가 별거인가. 나의 행위성이 내 삶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가고 있다. 나는 조금 설렌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 1]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