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가 되어 가는 저녁 시간. 아이들을 재워야 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몇 살 정도 돼야 스스로 잘 수 있을까.
아직 아이들은 깜깜한 밤이 주는 두려움과 창문 밖에서 들리는 거친 바람 소리, 혹시 쳐들어 올지도 모르는 도둑 또는 괴물에 대한 생각들을 떨쳐 버리기 위해 부모의 ‘곁’이 필요한가 보다. 잠깐의 토닥 토닥과 따뜻한 스킨십은 마법같이 그들을 안전한 세계로 인도했다. 엄마의 목소리와 아빠의 이야기 소리에 괴물 따위는 두렵지 않게 되고 그렇게 안심한 그들은 어느새 잠이 든다.
남편에게 아이들을 재워 달라고 부탁했다. 낮 동안 아이들과 부대끼느라 저녁 시간에는 혼자 만의 시간이 절실히 필요했다. 남편과 나는 우리가 부부 역할에 대해 평등해 지려고 역할을 반으로 딱딱 나누지 않았다. 애초부터 부부 역할에서 남자와 여자가 완벽히 평등 해진 다는 것은 말이 안되니까.
이렇게 생긴 생리적 차이로 인한 능력 차이 및 체력의 차이 때문에 집안 일이나 육아의 영역을 무 썰듯 딱 자를 수 없었다. 평등의 논리만 따지면 어느덧 선을 정확히 그을 수 없는 문제에 도달할 수 밖에 없다고 결론 지었다. 결혼 9년 차인 우리는 서로를 대하는 법에 실력이 생겼다. 사랑과 이해는 늘 중요하지만 신경질을 내거나 어린애 처럼 구는 일을 받아 줘야 하는 헌신도 필요하다는 것을 유념하는 것이다.
“애들아 잘 시간이야.”
“이잉 아직 다 못 놀았는데” 태오가 우는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막 시작 했는데” 해안이가 아쉬운 목소리로 덫 붙인다.
이제 막 놀기 시작했다면 그 전까지는 공부라도 했다는 것인가. 아이들의 체감 시간은 결코 객관적일 수 없다.
아이들은 밤이 되면 더 신이 난다. 엄한 소리로 ‘자야 할 시간’ 이라고 말했지만 모두 납득할 수 없는 표정이다.
“벌써 자야 할 시간이라고? 말도 안돼!”
회사에서 잘렸거나 주식이 급락했다는 소식만큼 절망적일까. 아이들은 ‘자야할 시간’에 대한 이해가 아직 없는듯 하다. 하품을 연신 하면서 자고 싶지 않다고 한다.
남편은 애착 인형과 담요를 가져다 주고 불도 끈다. 나는 그들의 좋은 잠을 위해 방을 조용히 나와줬다. 아이들의 방에서 졸음에 저항하는 듯한 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20분이 지나자 드디어 조용해 졌다.
‘아빠가 애들 재우기 선수’가 되었네 생각했다. 육아가 이제 우리를 어렵게 하진 않는 것 같았다. 그 사이 나는 여기저기 방을 치우고 설거지도 했다. 드디어 임무를 막 마치고 아이들 방에서 이곳으로 걸어 오는 발자국 소리가 났다.
“애들 자?” 라고 말하고 뒤를 돌아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태오가 서서 말없이 활짝 웃고 있었다.
“태오야 안자는거야? 아빠는?”
“아빠 자…”
“뭐?”
“아빠 내가 재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