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의 파도를 잠재우는 연습
둘째 태오가 어제 밤부터 고열이 나는 바람에 모든 일정을 취소해야 했다. 약을 먹으면 열이 내려 가길래 한시름 놓았지만 전날같이 놀던 친구들이 걱정이 돼 연락을 해봤다. ‘우리 애는 열이 갑자기 나는데 다들 괜찮나요?’라고 다급하게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그들은 아무 증상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아침엔 누나랑 깔깔대며 웃기도 하면서 잘 놀던 아이가 내가 열이 나는 것 같다며 손을 이마에 대고 심각한 얼굴로 안아주자 갑자기 서러운 울음을 토해냈다. 그는 울다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숨이넘어가는 듯한 쉰 목소리로 어쩐지 계단에 올라가는 것이 너무 어지럽고 힘들었다고 했다. 이와중에 귀여운 녀석.
“그랬구나..” 라는 말에 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니나 다를까 열은 39.5도. 누나가 달려와서는 현장에 나가 있는 리포터처럼 한 마디 더했다. “어! 나도 뜨거운 열을 느꼈어!” 뜨거운 머리를 쓸어내며 안쓰러운 마음에 별별 생각이 다 지나갔다. 콧물도 흘리지 않고 기침도 안하는데 열만 나다니, 어디 장기에 염증이나 생긴것이 아닐까 라는 괜한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발을 동동 굴리며 하루 종일 걱정하고 있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일이니까.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고 시간이 지나면 태오는 바이러스와 싸워 이겨낼 것이고 다시 원 상태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렇게 아픈 아이를 옆에 두고 아무렇지도 않게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가끔 인터넷에서 올라온 기사도 뒤져 보다 보면 어느새 마법처럼 ‘그 아이의 열’은 내리고 원래의 일상 대로 다시 활력을 찾게 될것이니까.
염려, 근심해도 소용이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 것을 연습하는 중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런 용기가 더 필요했다. '괜찮아 지기'로 결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지레 짐작으로 미리 생각하고 하루의 기분을 나쁘게 몰아가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었다.
가만히 멍하고 앉아 있다가 안 좋은 생각으로 빠지게 되면 마치 파리를 내 쫓기라도 하듯 재빨리 고개를 휙 저으며 “아니야” 소리 내어 외쳤다. 그리고 나면 조금 나아졌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런 생각은 아니었을 거야” 라며 떨쳐 내듯 말하면 내 귀로 듣고 단념할 수 있는 능력이 갑자기 생기게 된다. 그러면 다시 등을 꼿꼿히 펴서 의자를 고쳐 앉고 피아노를 두드리듯 책상위에 대고 손가락을 현란하게 움직이며 몰두해야 될 일을 생각해 낸다. 물론 매 번 이렇게 되는 건 아니다.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가, 침대에 누워 봤다가, 분노의 설거지를 해 보다가도 안되면 잠이라도 잔다. 실제로 이런 작은 행동이 나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대부분의 생각들이 정말 그럴 리 없었고, 그런 생각은 아니었었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병원에 갔더니 태오는 목이 좀 부은 상태이고 약을 먹으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감사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