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학!”
떠들썩한 교실 안, 승학은 분명 나의 목소리를 듣고도 앞에 앉은 친구와 장난질하기 바빴다. 내 목소리가 커질수록 그의 신나는 목소리는 한층 더 높아졌다. 나는 급기야 소리쳤다.
“최! 승! 학!”
그는 여전히 웃으며 나를 향해 돌아 보았다. 웃음을 차마 떨쳐내지 못했다는 듯, 계속 뭐가 웃긴지 숨이 넘어갈 것 처럼 끄억 끄억 대더니 중심을 잃고는 나의 어깨를 털썩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잠시 푹 떨구었다가 다시 쳐들고 만면의 미소, 정말 즐거운게 맞나 싶을 만큼 살기가 돋은, 그러니까 희한한 미소를 지었다.
“오오오, 송재윤이 우리 재윤이. 무슨 일이래?”
나는 그와 대면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사실 몇 주전, 미국에서 돌아온 외삼촌이 한국에는 없는 디자인의 나이키 가방을 선물로 주셨다. 그것은 형형색색의 색깔로 채워진 나이키 로고가 아주 크게 박혀있는 심플한 검정색 가방이었는데 집안 사정이 어려운 나로선 횡재가 아닐 수 없었다. 나는 그걸 아끼다 아끼다 못해 조금이라도 떼가 탈까봐 어깨에 모시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승학이 저놈이 ‘중요한 장소’에 갈 일이 있다며 내 가방을 빌려달라고 했다. 빌려주는 동안 자기 가방을 들고 다니면 된다고 했다. 그의 제안은 평상시 못된 행실과 달리 조심스럽다 못해 온화하여 나는 뭐에 홀린것 처럼 순순히 가방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책 꾸러미를 꺼내 홀라당 그 가방을 그에게 넘겨 주었고 그도 그가 메고 있던 냄새나고 허접한 가방을 나에게 주었다. 그 일은 운동장에서 한 가운데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나는 승학이의 가방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빌려 가고 싶을때 언제든지 빌려가’라고 말했다. 나는 우리학교 일진에게 선심을 베푸는 느낌마저 들어 잠시 기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 다음날이 되고 다음 날이 되어도 승학이는 가방을 돌려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나는 왠지 애태우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주변 친구들과 더 과격하게 놀았고 그 와중에 틈틈히 나의 눈길은 승학이 자리에 걸려 있는 가방으로 쏠렸다. 그때 도진이가 내 시선을 잡아채며 물었다.
“야 저거 네가방 아니야? 왜 저 새끼가 너껄 가지고 있어? 뺏겼냐?”
“아, 빌려간거야. 중요한 자리에 간다고 나한테 잠깐 빌려달라고 했어.”
“미친. 웃기고 있네. 너 뺏긴거야.”
“아니라니까? 빌려준거라니까?”
“어히구. 언제부터 쟤랑 물건 빌려주는 사이가 됐냐. 언제 빌려줬는데?”
“이…주 됐나…? 삼주?”
“푸하하하하하하. 맞네. 뺏긴거. 일진한테 너도 당한거야.”
나는 아름다운 자태의 나이키 가방이 승학이 자리에 아무렇게나 걸려 있는 것을 보며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모시고 살았던 가방이 살짝 더러워진것 같다.
“달라고 해. 쫄리냐?”
“딱 기다려.”
그렇게 나는 승학이를 대차게 불렀던 것이다. 나의 대찬 목소리가 무색해지게 그의 몸짓은 여유 있다 못해 하물며 살짝 술에 취한 아저씨처럼 흐물거렸다.
“오오오, 재윤이 우리 재윤이. 무슨 일이래?”
그의 온화한 미소가 섬뜩해서, 아니 지금 그가 어깨를 짓누르는 힘이 생각보다 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목소리는 아까 그의 이름을 외쳤을때와 사뭇 달라졌다. 젠장.
“내 가방 언제 줄꺼…야?”
“어? 가방? 가바아앙. 아아아.”
그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검지 손가락으로 나의 얼굴 앞에대고 아무렇게나 휘두르더니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리고 하는 말이.
“왜?”
였다.
“왜? 왜....왜라고?”
“응.”
“네가 빌려갔잖아. 이제 나한테 줘야지.”
“급해?”
나는 입만 벌린채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가방을 선뜻 빌려주었던 나의 너그러운 마음이 일그러지는 순간이었다. 방금 전까지 나는 분명 넉넉했고 관대하기 그지 없었는데…. 이상한 논리에 휘둘려 나는 갑자기 치사한 놈으로 변질되기 직전이었다. 겨우 내뱉는 말이. 생각해 보면 급하진 않았다.
“아…. 니?”
“그럼 됐어.”그가 불쾌한 윙크를 날렸다. 그 짧은 순간 나는 공포를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 자리로 돌아왔다.
‘저 새끼가 그러니까 지금 내 가방 훔치는 중인가?’
뒤늦게 드는 이성적인 생각은 이미 나의 자존심을 제어할 수 없었다. 나는 끝까지 우리학교 일진에게 아량있는 친구로 남고 싶었다. 생존적인 판단이다.
폭력은 없었다. 교묘한 심리전만 있었을 뿐.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웃긴 상황이었다. 승학이는 사실 나보다 체구도 작다. 싸우면 내가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차라리 주먹을 걸어오지 치사하게 자존심을 건드려? 하지만 나는 그에게 기가 죽었다. 주먹으로도 이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무성히 들리는 그에 대한 잔인한 소문(면도칼을 가지고 다닌다, 핵주먹이다 등)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 표정은 다 늙은 사장님처럼 자신감 있었고 위협적이었다. 그와의 짧은 대화만으로도 난 그에게 굴복적이었다. 나는 멀리서 뒤통수에 깍지를 끼고 비스듬히 앉아 있는 승학이를 바라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나에게 느끼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더니 갑자기 앞에 앉아 있는 친구 뒷통수를 치고 말을 걸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비열한 놈.’
생각외로 가방 사건은 빨리 잊혀졌다. 아니 잊고 싶었다. 가방을 다시 가져올 생각을 그냥 포기했다. 사실상 빼앗긴 가방에 대해서 도진이는 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렇게 같은 약자의 마음에서 나를 공감해 준 걸까.
우리 반에서 나를 싫어하는 친구는 없었지만 연락처를 나누는 친구는 별로 없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때와 달리 아이들이 미래에 사뭇 진지했다. 우린 고작 17살인데 대학을 못가면 인생이 쫑나는것처럼 굴었다. 그곳에서 우리들의 옵션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곧 있을 기말고사의 중압감에 비하면 그깟 가방 스트레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도진이는 공부의 압박과 별개로 챗바퀴 같은 날들을 너무 지루해 해서 나에게 수업을 빼고 학교를 나가자는 일탈을 권했다. 제법 겁이 많고 소심했던 나는 그의 유혹이 거북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의 제안은 나름대로의 서사가 있고 그럴듯해서 함께하고 만다. 우리에겐 학교를 빠져나가는 백만 가지 이유가 있었고 이제는 누구보다 더 능숙하게 PC방에 가서 새벽까지 앉아 있는다.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는데 집 안의 불이 아직 켜져 있었다. 나의 일탈이 걸린게 아닐까 하는 마음에 초조해졌다. 나는 그제야 승학이의 헌 가방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혹시라도 내가 가방 뺏긴걸 눈치채면 폭풍같은 잔소리가 쏟아질게 분명했다. 어떻게 핑계를 댈지도 잘 몰랐다.
나는 최대한 가방을 드러내지 않으며 집안을 들어섰다. 그런데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다. 내가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을 때까지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가 갑자기 무거운 분위기를 대차게 찌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게 왜 그 돈을 다 집어 넣었어!왜 몽땅 다 왜!”
뒤돌아 앉아 있는 아빠에게 엄마는 소리쳤다. 엄마는 거의 울 지경이었고 아빠는 죄인처럼 고개만 푹 숙이고 계셨다.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그들을 지나 방으로 들어갔다.
“왜! 왜! 그 사람 말을 들어!! 그 돈 그럼 다 못찾는거야?”
“나라고 뭐…. 그럼 그 평가액이 그렇게 종이짝이 될줄 알았나. 다시 오를때까지 기다려야지 뭐.”
“허이구…. 팔자 좋은 소리한다! 우리 당장 이사가야 되는데 그 돈 없어서 어떡하려고 그래! 당장 지금이라도 팔라고! 더 떨어지기 전에!”
“으이그!”
벽을 타고 넘어 오는 부모님의 싸움 소리는 언제 들어도 새롭게 아프다. 하지만 그와중에 난 가방이 걸리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싸움은 그 이후로도 몇 시간이나 계속 되었다. 잘 모르지만 아빠는 누군가의 소개로 우리 전재산을 특정 주식에 투자했고, 돈을 집어 넣는 순간 그래프는 곤두박질 친것 같았다. 엄마는 아빠가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결정한 투자가 일순간에 망하자 울분을 극대화 시켰다. 그렇게 소리지르는 엄마를 앞에 두고 아빠는 그저 아무 말도 없이 앉아 계시는 듯 했다.
엄마는 늘, 아빠가 이랬다면, 아빠가 조금만 저랬다면 하면서 과거를 탓하기 바빴다. 아빠는 늘 돈을 까먹는 존재였다. 엄마는 나에게 아빠의 무능력을 논하지 않으면 하루를 끝내지 못했고 나는 엄마의 고통을 보며 아빠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아빠는 나와 대화하지도 않으셨는데 나도 그런 아빠가 점점 불편했다.
그러니까 이번에도 여지없이 아빠의 선택은 잘못된 것이다. 아빠는 왜 늘 그런 결정을 할까 생각해 본적도 있었다. 그렇게 아빠가 싫으면서 이혼을 하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이혼을 한다고 생각하면 가슴은 덜컹 거렸다. 그렇게 고통스러우니까 헤어졌으면 좋겠는데 막상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더 고통스러울것 같았다. 오늘도 엄마는 같이 사네 못사네 타령을 했다. 나는 에어팟을 귀에 쑤셔 박고 침대에 철퍼덕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