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링 띠링 띠리리리링
알람 소리가 귀를 찔렀다. 새벽 5시 반. 밀려 놓은 수학 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문제집을 풀기로 계획 했었다. 하지만 몸은 요동하지 않은채로 미간만 일그러졌다. 잠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정말이지 신경질 나는 일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끌어 안고 5분마다 울리는 소리를 죽여내며 잠으로 다시 들어가려 애썼다.
그렇게 의식과 무의식이 싸우다 남의 몸 같은 몸을 끌어내며 겨우 일어났는데 8시라니.
부랴부랴 준비하고 집을 나서다가 집안 분위기가 여전히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20대 여성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살인 사건이라는….
티비는 켜져 있고 뉴스를 전하는 여자 아나운서의 똑부러지는 목소리만 거실을 채울 뿐이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거실에 계셨다. 밤을 꼴딱 세신것일까.
그런데 이상하다. 어제밤과 달리 아빠가 화가 나 계시고 엄마가 먼 산을 바라 보신다.
“에잇!”
갑자기 아빠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집어 던지며 성질을 냈다. 아빠의 그런 행동과 목소리는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나는 심히 공포를 느꼈다. 어른 남자의 화는 엄마의 징징 거리는 소리와 차원이 다른 두려움이었다. 그런 아빠의 이상 행동에도 엄마는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화를 내는 쪽은 늘 엄마였는데. 하물며 아빠가 화를 내더라도 엄마가 밀릴 사람이 아닌데. 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공수가 바뀐걸까.
“어..엄마…. 무…무슨 일 있어요?”
평상시 부부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나는 도무지 이 상황이 두렵고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종이짝 같은것 다 팔았더니 쑥 올라버렸어….”엄마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종이를요?”
“아니 아빠가 투자한 그 돈 말이야!”
그것도 못알아 처먹느냐는듯 약간 신경질조의 어투다. 나는 아빠를 바라 보았다. 아빠는 거실 창가 쪽에 서서 먼 산만 바라보시고 계셨다. 그동안 잘못한 것이 있어 엄마를 다그칠 수도 없나보다. 참담한 심정이었다. 그 돈이 얼마나 중요한 돈인지 엄마의 분노로 나는 막연히 알 수 있었다.
“아아아아아앙.”
엄마는 내 얼굴을 보자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끊어졌는지,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를 지르시며 어린 아이 마냥 발을 동동 구르셨다.
“당장 갚아야할 빚이 억인데, 우리 이제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어 야!”
엄마의 그 울음 섞인 외침에 나의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빚의 크기가 가늠도 안되는 나는 무어라 위로의 말도 해결의 말도 할 수가없어 뒷걸음질쳤다.
“어제 팔지만 않았어도….”
“하….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이 와중에 기말고사가 무슨 소용이람. 나는 부모님의 문제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화가 났다. 아빠의 무능력이, 엄마의 징징대는 목소리가 다 싫었다. 나는 현관문을 쾅 닫고는 학교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빠른 속도로 걷다가. 뛰어갔다.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시원한 초여름의 산들 바람이 얄미울 정도로 나는 두려웠다. 숨을 몰아 쉬면서 엄마아빠의 울분을 잊으려 애썼다.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보고 주먹을 있는 힘껏 쥐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탁!
뒷통수를 얻어 맞고 앞으로 꼬꾸라질 뻔했다. 도진이다.
“야, 왠일로 빨리 나왔냐!”
“어. 어.”
“뭐야. 왜 이래? 표정 개구려.”
“닥치고. 잘생겨서 부럽냐.”
도진이의 밑도 끝도 없는 명랑함에 경직된 얼굴이 좀 풀렸다. 그는 기말고사가 코앞이라고 마치 곧 전쟁이라도 나는 것 처럼 호들갑을 부렸다. 하기 싫은 공부타령에 이어 수학 진도는 어디까지 공부 했느니, 단어는 몇 개를 외웠느니라는 보고를 나에게 해댔다. 기말 고사 첫날 부터 수학 시험이란다. 도진이의 해맑음이 이질감을 주었다. 나는 어딘가 모르게 몰려오는 불안을 떨쳐 버리려 애썼다. 그렇게 스멀스멀 삐져나오는 굳은 표정은 숨겨지지 않았나보다.
“그치? 너도 수학 준비 다 못했지? 아주 망한 표정이네?”
“뭐 내가 언제는 공부했냐?”
“공부 안하고 맨날 1등하냐, 지랄. 허세는.”
“이번엔 진짜야 븅신아.”
나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수학 시험이야 아무렴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나는 장래희망 같은 미래를 도모하는 사치를 부릴 수 없었고 당장에 망할지도 모르는 우리 가정사의 위협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고통스러워만 할 뿐이었다.
“오늘 끝나고 같이 스터디 할래? 마지막 단원이 좀 힘든데 나 좀 도와줘.”
아 그러고 보니 학원을 줄줄이 다니는 도진이보다 내가 공부는 더 잘한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여유가 없다. 혼자 공부하는게 속편하지 누굴 앞에다 두고 상대해줄 여력이 있겠느냐고.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시험을 앞둔 분위기 때문인지 모두 조용했다. 그와중에 내 가방을 안고 엎어져 자고 있는 승학이의 뒤통수를 후려 갈기고 싶은 생각이 차올랐지만 손은 어느때보다 공손하게 있었다.
도진이와 친구들은 유난히 경직되어 있는 나의 표정을 보고 시험을 앞두고 예민하게 군다고 수군댔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내비두었다.
다음날 수학시험에서 나는 제대로 망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의 인생의 모든 방면에서 의미를 상실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3교시까지 끝나자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가채점을 하기 시작했다. 도진이가 매우 안타까운 표정과 함께 얼굴 옆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하, 이 문제! 고쳤는데 틀렸네!!!! 씨발.”
“그래서 40점?”
“38점.”
“졸라 부럽다.”
도진이는 그깟 몇 점 마이나스에 호들갑을 떨었다. 고작 수학 시험가지고 걱정하고 마음 졸여하는 친구들이 부럽기 그지 없었다. 고작 시험가지고. 나의 문제는 생존이 걸려 있는데 말이다.
“그거 비아냥이냐? 부럽긴 뭐가 부러워. 깝치지 말고 말해. 나보다 잘봤으면 대갈통 후려 날린다! 몇 점이야?”
“몰라.”
나는 시험지를 구겨 버리고 교실 밖을 나왔다. 구겨버린 시험지를 주어 드는 도진이를 뒤로 하고 매몰차게 교실문을 밀어 닫았다. 그리고 곧장 독서실로 향했다. 집으로 가서 어두컴컴한 분위기와 마주하느니 공부에 집중하는것이 더 나으리라. 지금 하는 행동은 공부가 아니었다. 절망에 휩싸여 있는 엄마로부터의 피신이었다. 다섯 걸음마다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어떤 계획을 가져야 할까. 우리 집안에 희망이 있을까. 내가 대학 졸업하고 돈을 벌려면 적어도 8년 9년은 더 있어야 하는데. 당장 먹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뾰족한 수가 없는 질문을 해대며 땅만 보고 걷다가 건널목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엄마가 부럽다. 나도 엄마처럼 그냥 주저 앉아 소리내며 울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울기라도 하지. 먹먹한 내 심장은 어떻게 달래? 하긴 눈물도 나지 않는다. 시커먼 껌딱지가 붙은 시멘트 바닥을 보며 비웃을 뿐이다.
나는 신호등을 보려 고개를 들었는데 건너편에 하얀색 티셔츠, 빨간색 모자를 쓰고 있는 키 큰 여자가 보였다. 익숙한 건널목이었지만 갑자기 모든 것이 저 여자 때문에 낯설어졌다. 빨간 모자의 그녀는 왠지 그냥 이 건널목과 어울리지 않았다. 나의 시선은 빨간 모자에 고정 되어 있었고, 이름은 모르지만 아는 얼굴 같았다. 이상하게도 그 여자는 나를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초록색 불이 켜지자 갑자기 그 여자는 나를 응시하며 전속력으로 달려 왔다.
“어…어….”
나는 차마 발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반대편 찻길에서 심상치 않은 회색 밴의 움직임이 포착됐다. 밴은 빠른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굉장한 타이어 마찰음을 내며 불법 유턴을 했고, 그 밴은 나를 보고 달려 오는 그 여자를 향해 사정 없이 돌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인지 모르게 그녀와 함께 뛰고 또 뛰었다. 그녀가 뒤쳐질까봐 덥썩 손도 잡았다.
“조심해!!”
그녀를 밀쳐 내기 위해서 손을 밀어냈다. 그리고 나는.
퍽!
“재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