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헛소리야. 소연이 누나라면 다연이 언니 말하는 거 아니야?”
“그래 그 예쁜 누나.”
“그런데? 죽었다고?”
“몰랐어? 하하하하. 역시 그랬구나.”
그의 비열한 웃음소리에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게 정말 무슨 소리람. 혼란스러웠다. 방금 전까지 다연이는 언니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올 시간에 맞춰서 허겁지겁 집에도 갔는데! 얘는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누나 정말 유명해 우리 학교에서 얼짱이었잖아. 아이돌 된다고 연습생 생활 하는 것 같더니 돌연 차사고로 죽은 거야. 기억 안 나? 동네에서 큰 사고 한 번 나서 다들 난리도 아니었는데. 근데 그거 그냥 사고가 아니라는 말이 있어. 누나가 기획사에 빚져서 자살했다는 루머도 있고, 살인이라는 루머도 있고.”
“뭐야. 너. 왜 이런 말을 나한테 해?”
“혹시 다연이가 언니 얘기해? 네가 오해할까 봐 말하는데, 걔 그 반에서 정신 나간 애로 유명해. 걔는 아직도 언니가 살아있는 줄 알아.”
“뭐…라고?”
그게 진짜라면 다연이는 지금 타임루프 안에 갇혀 있는 거다. 그녀는 언니가 다칠까 봐 타임루프를 한다고 했다. 나한테 사고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연이는 언니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타임루프를 통해 대체하려고 하고 있다.
“네가 정신 나간 애랑 사귀는 걸 보니 조언 좀 해주려고 했다. 오지랖이라면 미안하고.”
“꺼져.”
한 대 칠뻔했다. 키득키득 거리며 사라지는 저 새끼 뒤통수가 영글어 보였다. 그냥 한 대 치자.
퍽!
“그래 오지랖이다. 씨발놈아. 네 인생이나 신경 써.”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대형 기획사 연습생 20대 여성의 의문사’라는 기사가 두어 개 있었다.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어느 해 보다 뜨거웠다. 다연이는 만날 때마다 언니 얘기를 빼놓지 않고 했다. 그녀는 언니가 연습생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얼굴 보는 날이 적다고 했다. 기획사에서 숙박을 한다고 했다가 집에서 꼭 잠을 잔다고 했다가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타임루프에 갇혀 있는 그녀의 사정이 불쌍할 뿐이었다.
“혹시 그 누나가 속해 있는 기획사 이름이 뭐야?”
“호미 기획사야”
“대형 기획사이구나.”
나는 누나의 죽음이 대형 기획사의 만행과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다연이가 하는 다른 이야기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고 싶었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기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다연이의 언니가 정말 죽은 것인지 승학이가 헛소리를 하는 것인지 진위여부부터 파악해야 했다.
다음날 나는 호미 기획사로 갔다. 건물 앞을 기웃거리면서 그곳에서 나오는 연습생으로 보이는 사람 한 명과 무조건 대화를 해보는 것이다. 점심시간이 넘어서야 연습생으로 보이는 세 명의 여성들이 나왔다. 나는 그들에게 달려가 ‘이소연’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중 두 명은 이름을 듣자마자 기겁을 하며 피했고 그 와중에 더 착해 보이는 다른 한 명은 근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 대해서 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성형을 많이 한 전형적인 미인이었는데 나는 그 높다란 코가 작은 눈과 부조화를 이루어서 인지 좀 기괴했다.
“소연이 언니를 어떻게 알아요?”
“저는 소연이 누나 동생 친구예요. 뭐 좀 알아볼 게 있어서. 그 누나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으면 말씀 좀 해주시겠어요?”
“소연이 언니 얘기라면 이곳에선 곤란해요. 이름조차 거론하면 안 돼요. 이따 저녁에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커피숍에서 볼래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그녀와 빠르게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녀는 전화번호를 교환하면서도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고 있었기에 나도 덩달아 무슨 암거래라도 하는 것인 양 고개를 푹 숙이고 괜히 이곳저곳을 살폈다.
모두들 ‘이소연’에 대해 애도하는 분위기보다 그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꺼려하는 눈치였다. 기획사는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그녀의 죽음을 교통사고로 처리했다는 기사에 신빙성을 실어주는 느낌.
나는 그분이 지정해 준 커피숍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소연의 죽음은 어떻게 발생한 것이며 왜 일어난 것일까. 초조한 마음으로 연습생을 기다리는 동안 카페라테 한 잔을 다 마셔버렸다.
“안녕하세요.”
검은색 모자와 검은 뿔테를 쓰고 나타난 아까 그 연습생은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이라고 했다. 이름은 김예지. 그녀는 앉자마자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커피컵이 어디 도망가기랄도 할까 봐 양손으로 꼭 감싸 쥐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위축되어 있었다.
“제가 기사를 몇 개 좀 봤는데. 소연 누나의 죽음이 명확하지 않더라고요. 살인이라고 의심을 하는 블로거도 있고요. 전말을 알고 싶어서요. 혹시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신가 해서요.”
“소연 언니는 억울하게 죽은 거예요.”그녀가 말을 꺼내자 더 긴장이 됐는지 손으로 머그컵을 쥐었다 놓았다 했다.
“네? 어쩌다가요?”
“하…. 우리 기획사….”
“‘우리는 가족입니다.’그 광고 아시죠. 우리 기획사가 가족 같은 대외적 이미지를 표방하지만 연습생들에겐 폭력과 욕설이 난무해요. 연습시키는 것도 거의 폭력에 가까워요. 하루에 18시간씩 연습해야 되고 몸무게가 1킬로라도 늘면 다시 빠질 때까지 밥도 안 줘요. 새벽까지 연습은 물론이고, 숙소에서도 CCTV가 있어 자유롭게 쉬지도 못해요. 그러다가 결국 사달이 났는데. 우리 팀 중에 유난히 체력이 약한 소연 언니가 그만 쓰러진 거예요. 다들 걱정했어요. 조금만 더 하면 데뷔가 코 앞인데. 하지만 언니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며칠은 좀 쉬게 해 줄 줄 알았어요. 사람이 죽게 생겼는데. 참나. 그런데 오히려 늦게 늦게 나타난다며 구박했고 연습 시간을 채우지 못하니까 실력이 못 미친다고 구박에, 체력이 없어서 쓰러진 사람한테 다이어트하라고 밥도 안 먹이질 않나. 규칙에서 벗어났다고 이상한 벌칙에 언니는 하루도 안 혼나는 날이 없었어요.”
“이상한 벌칙이요?”
“정말 이상한 벌칙이에요.‘트레이너를 잘 따라 해야 하지만 눈은 마주치지 말라’ 뭐 이런 거였어요. 언니는 그렇게 혼나도 별로 위축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언니가 자꾸 혼나는 것이 박실장님을 거슬리게 했는지 어느 날 박실장님이 언니를 따로 불렀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박실장님을 따로 만나는 날부터는 트레이너가 언니를 구박하는 일은 없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언니 표정은 날로 날로 더 안 좋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언니한테 괜찮냐고 물어봤죠. 언니는 좀 피곤해서 그런다는 둥 별 대꾸를 안 했어요. 그러다가 유난히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한 날이었는데 나는 언니가 곧 쓰러질 것 같았죠. 언니가 너무 신경 쓰여서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봤더니 그날 나에게 충격적인 얘기를 해줬어요. 언니가 나한테만 얘기한다며 조용히 말했는데, 박실장이랑 스폰서를 만나고 왔다고 했어요. 이후로도 몇 번이나 강제적으로 접대성 미팅을 하기도 했다고.”
그녀는 감정이 격해졌는지 갑자기 말을 멈췄다. 울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려는 것 같았다. 나도 당황해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는 너무 무서웠어요. 이야기로만 듣던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었다니 너무 충격적이었죠.”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는 휴지를 한 움큼 가져가더니 급기야 울었다. 그녀는 감정을 추스른 다음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언니는 탈모 증상도 시작됐어요.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나 봐요. 이건 제 생각인데, 박실장이 언니의 가정 사정을 알고…그러니까 아시죠. 언니는 부모님이 안 계시다는 거. 언니 뒤에 보호자가 없는 걸 알고 얕봤는지 점점 더 막대하기 시작했어요. 언어폭력은 기본이었죠. ‘너는 얼굴로 안돼, 니 목소리랑 얼굴로 데뷔는 원래 어려워. 데뷔하려면 이런 거라도 해야지.’ 라던가요. 박실장이 언니를 데리고 다닌 건 한 2주? 3주? 그리고 언니가 어느 날부터 나오지 않았는데 연습생들 외에 트레이너 선생님이나 실장님들은 언니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지도 않고 궁금해하지 않았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갑자기 안 나왔다고요? 그날 이후로 소연 누나를 못 본거예요?”
“네, 우리 모두 너무 궁금했죠. 이 언니가 다른 기획사로 옮겼는지 관뒀는지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얘길 안 해주니까. 뭔가 이상한 게 있다 싶었어요. 소연 언니에 대해서 물어보는 애가 있으면 괜히 ‘쓸데없는 얘기 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연습해! 탈락하고 싶어?’라며 소리 지르는 거예요. 그러다 저는 뉴스를 보고 본능적으로 감지했어요. 언니가 죽었구나. 저는 소름이 끼치도록 무서웠는데 회사에선 말을 못 하게 하니까 답답할 노릇이었어요. 이후에도 몇 명의 기자들이 저희들을 취재하러 왔지만 만약 그것에 응하게 되면 데뷔도 못하고 탈락하게 될까 봐 쉬쉬하고 있었죠. 사실 쉬쉬 하니까 기자들이 더 의심하는 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럼 이소연 누나는 어떻게 죽은 건지 모르는 거예요?”
“사실 언니가 나오지 않았던 바로 전날 밤에 언니가 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그녀는 갑자기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 층 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가 접대성 미팅을 거부할 때마다 그분들이 자신을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밤엔 도망갈 거다. 혹시라도 내가 다음 날 안 나오면 경찰에 신고해 줘라. 접대성 미팅 장소는 이곳이다.”
그러면서 나에게 문자 속에 있는 주소를 보여 주었다.
“그래서 신고했어요?”
“전 신고 했죠. 실종 신고. 그런데 언니는 이미…. 흑흑….”
“아…. 그럼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는군요.”
“박실장님만 아시겠죠.”
“박실장….”
알고 봤더니 박실장은 이소연을 데리고 다니면서 누구보다 일찍 데뷔시켜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지만 실제적으로 데뷔는 시켜주지 않았다고 한다. 박실장은 이소연을 더 이용한 것 같다. 성적 착취가 가능한 만만한 이소연을 데리고 다닐 수 있게 되자 데뷔를 계속 뒤로 미룬 것. 이소연은 폭력이 난무한 강요된 삶을 살게 되자 판단이 흐려졌고 제대로 된 결정을 할 수 있는 힘이 없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박실장에게 심리적인 복종 상태에 들어간 것 같다. 이런 폭력 사태를 그녀에게 쉬쉬 시키기 바빴다. 박실장은 이소연에게 만약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 데뷔는커녕 이소연만 망하고 말 것이라는 겁박도 했다고 했다.
“언니의 사건을 알게 되니 저도 겁이 나요. 이 회사에서 데뷔하는 것이 맞는지. 어느 순간부터 데뷔가 아니라 탈출을 꿈꾸게 됐어요. 하지만 어떻게 끊어내야 될진 잘 모르겠어요. 사건의 경위를 밝혀주실 거죠? 언니의 죽음이 이대로 묻히면 동생분도 너무 억울할 거 같아요.”
“다연이를 알아요?”
“언니한테 얘기만 들었어요. 동생분은 잘 지내시죠?”
나는 동의도 부정도 아닌 어떤 이상한 미소를 지었다. 졸지에 다연이를 지키려다가 이 사회의 부조리를 뽑게 생겼다.
다음날,
다연이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아직 잘 몰랐다.
다연이는 언니의 죽음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언니가 누군가에게 쫓기는 건 말해주었다. 매일 밤 그녀가 서둘러 들어가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언니가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언니를 숨겨주거나 쫓는 자의 방향을 바꿔주거나 했다. 그러면 언니는 안심하고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다. 매일 아침 운동장에서 달리기 연습을 하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언니에 대한 집착은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가 너무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사실을 이야기해 줘야 할지 잘 몰랐다.
다음 날 만난 다연이는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아마도 어젯밤 타임루프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과거로 돌아갔다가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현재로 바로 오는 루프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또 언니를 구하느라 열심히 뛰었다고 했다. 한 참을 말 없이 걸었던 우리는 어떤 주택 앞에 섰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우와 이렇게 큰 집에 살고 있었어?”
“우리 집은 저기 밑이야.”
그녀의 손가락은 큰 집 밑에 작은 창문이 보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반지하였다. 이런…. 나의 놀라는 표정을 보고 그녀가 작게 웃었다. 그녀가 가난할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타임루프를 사용해서 당장이라도 1등 로또 번호를 갖다 주고 싶었다. 그녀는 언니에게 집착한 나머지 주변 환경이 눈에 보이지 않았나 보다.
“언니가 숙소에 있으니까 옷이랑 물건 몇 개 좀 싸서 가져다주려고. 도와줄래?”
“숙소에 간다고? 그러니까 소연누나를 만나러? 지금?”
“응. 우리 언니 이참에 소개해줄게.”
다연이는 언니의 생존을 확신하고 있었다. 너무 확신 있게 말하는 그녀의 순수한 미소 때문에 자칫 헷갈릴 뻔했다. 숙소에서 만날 참이라면 어쩌면 정말 소연이 누나가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그녀를 따라 잘 정리되어 있는 작은 방에 들어갔다. 방 한편엔 언니의 물건들이 있었다. 다연이는 핸드폰을 들어 보이며 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 주었다. 나는 무심코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이거, 언니와 찍은 사진이야.”
나는 숨이 턱 막여서 입만 뻐끔거렸다. 사진 속에 소연 언니라는 사람은 흰 티셔츠에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여자다. 건널목 건너편에 서 있었던 그 여자. 내가 손을 잡고 뛰고, 또 내가 타임루프를 할 수 있게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