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유통기한

by 봄남

“이…이… 분이 소연 누나야?”

“응 예쁘지? 근데 너… 왜 그래? 식은땀이 나네. 괜찮아?”

말도 안 된다. 내가 타임루프 전 이유도 모른 채 같이 뛴 사람이 이소연, 그러니까 다연이의 언니였다고?! 왜 같이 뛰었을까. 나는 사진과 다연이를 번갈아가며 보았다. 그러고 보니 둘이 닮았다.


“나. 알고 있어 이 사람.”

“응? 우리 언니? 네가? 어떻게?”

“내가… 타임루프를 시작하기 전에 만났던 사람.”

“타임루프 시작하기 전에 만났다고?”

“그때 나도 왠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그 사람을, 그러니까 너희 언니가 나한테 뛰어 오고 있었고 나도 같이 뛰었어. 그러다가 무언가에 부딪혔는데 그러면서 과거에서 깨어났더라고.”

나도 모든 걸 정리하느라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녀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연이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갑자기 놀란 표정을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 쫓기는 언니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니 우리가 아니라 너가.”

“그러…까? 어쩌면.”

“왜 네가 언니를 만났겠어! 우리 언니를!! 그리고 타임루프가 시작된 거잖아.”

“글쎄….”

“굉장한 인연인데? 운명 같아!”


수많은 타임루프를 통해 ‘운명적’ 만남을 만들고 싶었지만 다연이는 나의 모든 노력에 시큰둥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운명적임을 느낀다. 그녀의 보석 같이 빛나는 미소를 보고 그녀가 말한 ‘운명’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이 모든 건 정말 다연이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정말. 어쩌면 정말 내가 누나를 살릴 수 있으니까. 그러면 다연이는 그 강박적인 루프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녀의 온전한 생활을 위해서, 그녀의 행복을 위해서!


만약 그렇다면 내가 누나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뜻일까. 나는 갑자기 어떤 사명감을 느꼈다. 그리고 다연이를 위해 소연 누나를 생각하면서 과거로 돌아가기로 했다. 처음 그 누나를 만났던 그 건널목으로 가서 누나를 구해야 하는 운명적 책임감을 안고!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소리쳤다.


“조심해!”


소연 누나를 처음 만났던 그날 밤이다. 나는 건널목에 서있고, 어쩐지 누나가 나를 아는 사람처럼 보고 있다. 그전 시간대에서 다연이가 언니에게 나에 대해서 말해놓은 것이었다. 누나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이유였다. 나는 주변을 살폈다. 아직 벤은 보이지 않았다. 초록불이 켜지고 나는 달려오는 누나와 함께 있는 힘껏 다시 달렸다. 미리 살펴본 좁은 골목을 타깃으로 누나를 끌고 달려갔다. 좁은 골목에 들어와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두 어명의 남자가 우리를 쫓아오는 것 같은 발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다시 뛰었다. 하지만 우리의 방향을 기다렸다는 듯이 어떤 남자가 돌연 나타났고 그 남자에게 누나는 칼부림을 당해 바로 죽임을 당했다. 다른 한 남자가 나타나 나를 제압했고 나는 두 팔이 묶인 채 주저앉았다.


“조심해!”


이번에 나는 누나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갔다. 오히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유인해서 쫓아오는 사람들을 따돌리려 했지만 이내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누나는 죽고 나는 잡혔다. 흉측했다.


그렇게 나는 몇 차례를 더 시도했지만 누나는 벤에 치이던가, 괴한에게 칼부림을 당하던가 하면서 죽어갔다. 그 과정에서 물론 나도 세게 얻어맞았다.

다연이가 언니를 살리러 돌아가는 과거는 내가 누나를 살리려 도망치는 과거보다 이른 시간이다. 그녀는 언니의 죽는 날로 가는 것이 아니어서 언니를 살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는 과거 속에 누나는 결국 똑같은 결말을 갖게 된다.


“이걸로 안 되겠어. 누나는 어떻게 해서든 죽… 그러니까 다치는 것 같아. 이것보다 더 전 과거로 돌아가는 건 어떨까? 애초에 누나가 달려가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거지. 혹은 누나가 이런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도와주던가.”

“왜 진작 생각 못했지?”

“한 번 해볼게. 조심해!”

“재윤아.”


다연이의 대답. 눈앞에 보이는 건 다연이. 방금 그 장소.


“아직이야?”

“조심해!”

또 아까 모습의 다연이. 방금 그 장소.


“나 아직 여기 있어?”

“안 돌아가졌어? 왜지?”

“조심해! 조심해! 조심해!”

“잠깐, 생각해 보니까 나도 타임루프를 시작했던 시점의 더 과거는 돌아가지 못했던 것 같아.”

“뭐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 시점이 누나랑 달리기 하던 그 시점인데.”

“그럼 그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거야.”


타임루프가 제한적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누나를 살리지 못하고 누나는 그런 의미에서 결국 죽는다.


“언니가 나의 이야기에 설득당하지 않았어. 나는 언니에게 그 장소에 가지 말라고도 했었고 그날은 회사에 나가지 말라고도 애원했었어. 하지만 언니는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않았어.”

다연이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보호하면 살았다고 생각하는것 같았다.

“게다가 애초에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사건의 과거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해.”


우리는 서로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결정을 해야 했다. 과거 속에 갇혀 있는 다연이를 꺼내오고 싶었다.


“다연아. 너희 언니, 사실 사고로 죽었어. 나는 누나를 결국 살려내지 못해.”

“뭐?”

“…. 그리고 죽은 지 4개월이 지났어.”

“ 아니야. 말도 안 돼. 내가 계속 살리고 있어. 타임루프를 통해서….”

“…. ”

“맞아! 내가 어제도 살렸어. 어떤 아저씨가 쫓아오는 걸 내가 경찰에 신고해서 막아 냈어. 맞아. 맞다고. 언니가…. 살아… 다고…. 그리고 네가. 네가 살릴 수 있는 거 아니야? 네가 우리 언니랑 같이 뛰었다며! 할 수 있잖아 넌!”

“그건. 네가 살린 그날은 누나가 진짜 죽은 날이 아니야. 내가 돌아간 그날에 누나가 죽었어.”

“말도 안 돼!”


그녀는 거의 울부짖었다. 그녀는 한동안 서럽게 울었다. 확신의 찬 그녀의 울부짖음은 몇 분 동안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연이는 확신의 목소리에서 떼를 쓰는 목소리로 변질했다.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사람처럼.

그녀는 타임루프를 이용해 거짓 세계를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그녀의 삶은 지옥이었다. 그 좋은 타임루프의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를 위해서 나는 용기 내어 말해야 한다. 더는 저렇게 미쳐가는 꼴을 놔둘 순 없었다.


“너도 알고 있잖아. 그거. 가짜라는 거…. 네가 나한테 거짓 감정을 지적했듯, 지금 이이 상황도 진짜가 아니라는 걸.”


그녀는 고개를 강력하게 저었다. 울다 지친 다연이는 나를 바라보는 것도 보지 않는 것도 아닌 눈빛으로 말했다.


“나 그냥 그 가짜 안에서 살면 안 돼? 난 언니 없으면 못 살아.”

“아니야 살 수 있어. 넌 혼자가 아니야. 나도 있고 너를 도울 수 있는 타임루프도 있잖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아. 아빠도 가고, 엄마도 가고, 언니도 없잖아. 왜 내 주위 사람들은 나를 떠나는 거야! 나도 그냥 떠나 버릴래. 그냥 이대로 삶을 마감….”

“정신 차려 이다연!”


나는 대차게 소리 질렀다. 그녀는 그제야 풀어졌던 시점을 조이고 나를 선명하게 바라보았다.


“언니가 하늘에서 편안히 있을 수 있도록 네가 언니의 죽음을 인정해야 해. 그래야 언니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 낼 수 있고.”

“억울하다고? 언니가 억울하게 죽었어?”

“그런 것 같아.”


그녀는 언니의 옷 꾸러미를 잡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그러게…. 언니가 왜 자꾸 쫓기고 있었을까.”


다연이는 언니의 사진을 보며 말했다. 나는 다연이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연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하지만 울었을 때 보다 더 짙은 슬픔이 느껴졌다. 위로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다연이의 감정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리고 조용히 누나의 물건 정리를 도와주었다. 물건을 정리하다가 어쩌면 여기서 사건을 풀만한 증거가 될 것들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누나의 책상 서랍에서 서류봉투 안에 이상한 계약서 같은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읽어 보니 그것은 ‘특정 조건’이 추가되어 있는 부속 계약서였다. 가장 밑단에 작은 글씨로 여러 가지 비합리적인 조건들이 적혀 있었는데 한 마디로 연습생 시절 비용까지 포함하는 7년짜리 노에 계약이었다. 거기엔 ‘대표가 지정한 이벤트에 동행할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문구도 적혀 있었다


계약서에 이어 일기장도 발견됐다. 일기장 안엔 온갖 사람들의 이름, 그러니까 아마도 그쪽 세계에 있는 열 명 남짓의 VIP 리스트가 적혀 있었고 그들과 만난 시간과 장소도 적혀 있었다. 그녀는 일기장에 고통을 호소하는 글과 온갖 더러운 거래들을 목격한 것들을 상세히 적어놨다. 이걸로 사건의 실마리를 좀 풀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연이에게 계약서와 일기장을 보여 주었다.


“누나가 기획사에서 괴롭힘을 좀 당한 것 같아. 동료들 말고 회사 사람들한테.”

“만약 그랬다면 난 정말 몰랐어. 언니가 즐겁게 다니고 있는 줄 알았는데….”

“동료 얘기 들어보니까 심한 일도 당한 것 같아.”

“동료를… 만났어? 심한 일?”

“김예지라고 우리랑 동갑이고 소연 누나랑 가장 친했던 분 이래.”

그녀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 보자 나는 머쓱했다.

“아…아니 그냥. 누나 사건에 대해서 좀 알아봤어.”

“넌 우리 언니가 이미 죽었다는 걸 알고 내 얘길 들은거야?”

“불쾌했다면 미안.”

“…아니야.”


다연이는 그제야 벌컥 울었다. 언니의 죽음 때문인지 언니가 살아 있었다는 자신의 믿음이 부끄러워서인지 모르겠으나 서러웠나 보다. 그녀는 한참이나 눈물을 흘렸다. 그러는 다연이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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