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지 쇼케이스 한 시간 전에 도진, 다연과 나는 스튜디오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우리의 계획대로 실행되길 소망하며 방송국에 들어섰다. 나는 이제 와서 조금 두려웠다. 상대는 어른이다. 그것도 못된 어른. 방송국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가슴은 더 뛰었다. 여기저기 붙어 있는 김예지 홍보물을 보고 여기가 김예지 데뷔 장소임을 실감했다. 손에선 땀이 나는데 도진이는 아이처럼 신이 났다.
“김예지를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고? 밖에 줄 서 있는 애들 봤어? 하하하. 그 수많은 애들 뒤로하고 우리가 그냥 들어올 때. 우리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부러워하는 표정으로 보던 애들 말이야!”
도진이가 너무 큰 목소리롤 말하는 바람에 조금 창피해서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도진이는 내가 못 듣는 줄 알고 더 크게 말했다.
“와! 무대 좀 봐. 실제로 보니까 엄청 크다. 여기서 보는 거야 여기서?”
“아잇! 쫌 조용히 해!”
나는 속삭이며 화를 냈다. 그는 나의 짜증에도 여전히 싱글벙글했다. 그때였다.
꺄아아아아악!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다. 우리는 발걸음을 멈췄다. 바로 뒤이어 성내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저쪽이야.”
다연이가 가리킨 곳은 음향장비실이었다. 우리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용히 걸어가 장비 뒤에 몰래 숨었다.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김예지였다. 불길한 예감이 솟구쳐 올랐다. 김예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화가 난 매니저가 손에 허리를 두고 왔다 갔다 했다.
“뭐야 이거! 어? 설명 좀 해볼래? 이거 알려지면 너 그냥 죽는 거야.”
“죄송해요. 죄송해요. 한 번만 살려주세요.”
김예지는 바닥에 앉아서 두 손으로 싹싹 빌었다. 그녀의 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리고 있었다. 매니저 손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USB. 거기엔 계약서 사본과 VIP 목록이 적혀있는 소연 누나의 일기장 사본이 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김예지의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것일까. 눈치 빠른 매니저에게 들통이 난 게 틀림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음향 엔지니어라는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어떻게 된 거지. 우리의 원대한 계획은 이대로 끝난 것일까. 김예지에게 데뷔 날이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절망의 한 숨을 조용히 쉬며 도진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진이는 그들의 상황을 핸드폰으로 몰래 촬영하고 있었다. 이런 쓸모 있는 놈!
매니저는 그녀의 가느다란 팔을 함부로 잡고 대기실 쪽으로 끌어냈다. 이 모든 것을 도진이는 영상에 담아내고 있었다.
“30분 후면 리허설이야. 메이크업이랑 옷 다시 빨리 교정해.”
“네.”
매니저는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에게 화를 내며 말을 내뱉었다. 김예지는 끌려가는 와중에 숨어있는 우리를 발견하고는 실패의 의미로 고개를 조용히 저었다. 괜찮다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부터 어떻게 한담.
다연이는 기지를 발휘해 김예지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걱정하지 마 내가 여비 분으로 가지고 있는 USB를 음향 엔지니어님께 전할게. 어떻게 생겼는지 말해줘.
-키가 크고 안경 썼어. 파마머리에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어. 예지가 전해줬다고 하면 바로 알 거야. 이렇게 된거 그냥 터뜨리자.
그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아까 김예지가 매니저에게 혼났던 장소에 갔더니 그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그분께 USB를 전달해 드리자 그는 단박에 알았다며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했다. 우리는 셋은 절도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도진이는 왜… 끄덕이는 거야? 나와 다연이는 동시에 도진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엄지 손가락을 펴 보이며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왜….
우리는 무대 언저리에 자리를 잡았다. 방송국 관계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사람들은 교복차림의 우리들을 이상하게 쳐다보다가도 예지님의 지인이라는 소리에 고개를 갸우뚱하고 그냥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팔짱을 끼고 있었고 다연이는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눈치 빠른 도진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같이 진지했다.
쇼케이스가 시작됐다. 예지의 무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녀가 데뷔하기 전부터 회사에서는 그녀에 대해서 이슈몰이를 했다. 이미 형성된 팬클럽이 무대 앞을 가득 메웠다. 함성소리와 함께 그녀가 등장했다. 나는 긴장했다. 폭로가 언제 어떻게 터질지는 몰랐다. 저 멀리 보이는 그녀의 매니저는 팔짱을 끼고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노래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손에 땀이 났다. 매니저나 그녀의 회사사람들이 우리들의 존재를 의심할까 봐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뒤이어 시작된 기자회견. 첫 데뷔부터 기자회견이라니. 엄청난 대우다. 꽤 오랫동안 사진 찍는데만 시간을 할애했다. 많은 기자들 중에서도 오기자가 제일 앞에 앉아 있다.
“자기소개 부탁 드려요.”
사회자가 김예지에게 마이크를 넘기자 김예지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예지예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의 데뷔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해요.”
그녀의 인사가 끝나자 영상이 상영되었다. 매니저와 관계자들은 당황했다. 그들의 큐시트에는 그녀의 영상이 나가는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소개한 영상은 다름 아닌 그녀의 뮤직비디오였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에서 갑자기 돌연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 속 사람들은 어두운 파티 현장이라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어떤 남성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이름이 뭐야?
-이소연이요….
화면 속 인물은 몇 초 뜸을 들이더니,
-너 같은 인물은 그냥 데뷔는 어렵겠다.
같은 조롱의 말을 쓰레기 버리듯 아무렇지도 않게 했고 더러운 단어들이 뒤이어 나왔다. 게다가 화면 속 인물이 마약을 하는 것 같은 행동도 찍혔다.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소연누나가 스폰서와 함께한 파티에서 몰래 찍은 영상인데 소연누나 핸드폰에서 발견된 파일이다. 짧은 영상이 끝나자 기자들의 질문이 순식간에 쏟아졌다.
“저와 함께 데뷔하려고 했던 연습생 이소연은 살해당했습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소름이 돋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김예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했다. 동영상의 출처와 자신의 데뷔과정 그리고 죽은 이소연에 대한 이야기까지 친절히 대답했다. 부조리한 계약서, 가혹한 연습 생활등을 차근차근 폭로했다. 동시에 실검 1위가 된 김예지. 기자회견 한편에 선 매니저는 전화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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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그다음 날에도 기자들은 연이어 네티즌들의 선동을 예감하듯 호미기획사에 대한 횡포 기사를 내놓았고 얼마 가지 않아 연습생 L양사망 사건까지 다루었다. 조용히 사라질 뻔 한 연습생 L양의 사망사건 기사는 엄청나게 소비되었다. 실검 1위는 물론 뉴스까지 다루었고 각종 SNS에서도 ‘호미기획사의 실체,’ ‘노예계약서,’ ‘용감한 김예지, 여신 김예지’라는 제목으로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