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숫자

by 봄남

대중들은 호미 기획사를 향해 악플을 달기 시작했다. 그 대상이 미성년자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더 경악해했다. 거기에 불을 지피듯 오정민 기자는 연습생 L 양 뒤에 어마무시한 정재계 인사들의 리스트가 있다는 선전 포고도 했다. 이 기사가 나가자 어딜 가나 너도나도 L 양 이야기만 했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예상대로 사회는 발칵 뒤집어졌다. 기자들은 다연이의 집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녀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다. 정재계 인사들의 리스트가 밝혀지기 전이라 억울한 사람이 지목되기도 했다. 그들은 SNS에 나와서 해명하기 바빴고 이런 사람들이 하나 둘 속출하자 차라리 빨리 VIP 목록을 밝히라는 운동도 생겼다. 네티즌들은 기가 막히게 VIP 목록의 일부를 찾아냈다.


“잘하고 있는 거 맞겠지?”

다연이가 물었다. 사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조금 두려워졌다. 상대는 커다란 기업, 온 국민들이 이 사건을 지켜보고 있다.

“글쎄 모르겠어. 소연누나의 억울함은 풀어졌으니까 잘한 거 맞겠지.”

“함께 해줘서 고마워.”


그녀는 늘 고맙다는 말만 했다. 그 말은 이제 듣기 싫었다.


띠리리링!


“여보세요. 네 오기자님, 네? 뭐라고요?”

“호미 기회사가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아. 법무팀을 이용해 빠르게 기사를 삭제하고 있어. 내 기사도 5분 전에 삭제 됐어. 분위기상 곧 너희들에 대한 가짜 기사가 나갈 것 같아.”


나는 서서히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다연이를 보았는데 다연이가 자신의 핸드폰을 들며 새로운 기사를 보여주었다. 거긴 우리가 김예지와 대화하고 있는 사진이 실려있었다. 모자이크도 없이!


“이제 우리 얼굴도 팔렸어. 여기서 물러서면 진짜 끝이야.”


순식간에 공수가 뒤바뀌었다. 그래, 상대는 대형 기획사. 너무 얕봤다. 김예지의 두려움이 충분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그녀의 과하다 싶은 피해망상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호미 기획사는 공식 입장에서, 김예지가 쇼케이스에서 유출한 동영상은 그들과 상관이 없다고 했다. 박실장이 깔끔한 차림의 옷을 입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억울하고 침울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적어온 글을 읽어나갔다.

이소연과 관련된 영상에서 나온 그 남자의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을 이용해 자신들의 관련자들이 아니라는 발뺌을 한 것이다. 그리고 연습생 L양은 우리 기획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가짜 영상이나 만들어 내 돈을 갈취하려는 꽃뱀이었다고 선동이 되었다. 김예지의 추후 모든 스케줄도 물론 취소되었다. 그녀와 연락이 될 리 없었다.



기사에 따르면 나는 졸지에 연습생 L 양, 그러니까 이소연의 전 남자친구가 되어 있었고 그것에 대한 증거로 조작된 문자 대화 사진이 여기저기서 난무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그녀에게 만나달라고 애걸복걸했으며 만나주지 않는 그녀에게 욕설도 퍼부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때리기도 했고 급기야 의심병이 시작되 집착이 날로 심해졌다고 했다. 그녀와 같은 연습생 중에 한 명이 내가 기숙사 앞에서 밤새 기다렸다고 하면서 어떤 기자에게 순진한 얼굴로 위증했다. 미칠 노릇이었다. 나는 L양이 만나주지 않자 연습실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리기도 했고 난동 부리는 내 성격에 못 이겨 따라나간 L양은 그 뒤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정황상 내가 살해했다는 것이다. 내가 기획사에 왔다 갔다 하다가 세 명의 연습생을 만난 날이 찍힌 CCTV 증거 영상으로 제시했다. 영상 속에 두 명의 연습생은 진저리를 치며 나를 떠났고 김예지만 나와 대화했다. 내가 김예지를 만나러 간 날의 CCTV영상을 날짜만 바꾸어 조작한 것이다.

이에 따른 가짜 뉴스도 SNS에서 판을 쳤다. 진실을 알 수 없는 대중들을 이용해 욕화살의 방향을 호미 기획사에서 우리 쪽으로 돌렸다.

내가 사실은 동성애자라는 둥, 사실은 김예지와 사귀는데 배신을 하는 과정에서 살인이 났다는 둥 여러 가지 소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졌다.

나는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하하하하 미친 거 아니야?”

“상대는 호미기획사야.”

“누가 몰라? 아무리 그래도 이런 뻥이 어딨 어?”

“당장 타임루프를 쓰자.”

“안돼!”

“왜?”


다연이는 자신의 소매를 걷어 팔등에 있는 타투를 보여 주었다.


“타투가 있었어?”


일반적인 타투치곤 심상치 않았다. 약간 푸른빛이 났다. ‘5’라고 쓰여 있었다. 다연이에게 특별한 의미의 숫자인가?


“너도 있어.”


그녀가 나의 소매도 걷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도 있다. 나는 25’이라고 쓰여있다. 내가 놀래자 그녀가 검지 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더니 조용히 말했다.

“지금부터 잘 들어. 원래 타임루프 사용 시간은 제한되어 있어. 30분 이하부터 팔등에 나타나. 난 5분이 남은 거고 넌 25분이 남은 거야. 우리가 쓸 수 있는 타임루프 시간은 이것밖에 없어.”

“넌 이걸 알고 있었어?”

“아니 나도 최근에 알았어. 물론 루프 시간이 점점 짧아지면서 강제로 돌아오는 느낌은 받았는데 이렇게 정확한 시간이 제한되어 있는 건 처음 알았지. 팔에 뭐가 묻어 있길래 봤더니 지워지진 않으면서 빛은 나고 수상했어. 그런데 숫자는 자꾸 변하고 혹시 몰라 온라인 타임루프 클럽에 들어가 찾아보니까 이게 바로 타임루프 없어지기 30분 전 안내였더라고.”

“뭐야 그럼 내가 타임루프를 쓸 수 있는 건 25분뿐이라는 거야? 그게 무엇이든 25분 내에 해야 한다는 거야?”

“어 신중히 써야 해.”

“일단 이 사람들을 이길만한 결정적 증거가 필요해. 얼굴이 나와서 직접 하는 말을 영상으로 찍었으면 좋겠는데….”

“그럼 그 사람들은 이것도 딥페이크 영상이라고 우길 거야. 이렇게 가짜뉴스로 우릴 매도하는데 그걸로 끄떡없을걸.”

“그럼 이걸로 하자.”

“어떻게?”

“그냥 처음부터 다 까발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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