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힘

인테리어

by 봄남

서랍의 크림색 손잡이 장식이나 커피색 헤링본 나무 바닥에는 속절없이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색깔의 조합이나 사소한 물건들의 아름다움에 머물며 감상하는 일이 많았다. 세모 모양의 나무 프레임이 아이보리색 벽지 위에 걸려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때 느끼는 쾌감이 있다. 나의 이 심미적인 라이프 스타일은 검소한 생활이 강요되었을 때에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봄이 되면 화사한 색의 매니큐어를 직접 칠해야 했고 엔틱 샵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한 접시들을 이리저리 재배열하며 벽에 걸어야 했다.


그렇지만 몇 년 전부터 이러한 즐거움을 일정 부분 포기하기 시작했다. 깔끔함을 유지하는, 거의 편집 증세에 가까운 내가 어지러운 바닥과 비뚤어진 가구 정렬에 타협하게 되었던 것은 육아 때문이었다. 내가 정성 들여 꾸며놓은 인테리어의 아름다움과 그 기능성을 이해하기엔 그들은 너무 순진하고 어렸다. 집안 모양을 가꾸기 위한 심오한 예술적 선택과 노력 사이에 있어야 할 나의 행복은 때때로 아이들의 공격으로 인해 위협받았다.


순진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호기심은 그 인테리어에 대한 존중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아 놓았다. 거기에 왜 그런 물건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야 하거나 그냥 거기 있으니까 만져보고 싶은 강력한 유혹에 사로 잡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침략은 흡사 과학 실험이나 수학적 사고에 기초하여 이루 어는 것 같다. 휴지를 다 풀어 꽃 병에 물과 함께 넣기, 가구 구석구석 작은 장난감을 숨겨 놓기, 새로 산 컵의 무게를 달아보듯 굴리거나 던져보기 등 그들의 '창의적인 놀이'에 매번 기함을 한다.


아끼는 컵이 깨질 때는 정말 눈물이 날 뻔했다. 아이들이 과자 부스러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떨어 뜨릴 때마다 청소기를 들고 다니며 치우는 피곤함을 늘 자처했다.


딱히 이러한 이유에서는 아니지만 거의 모든 부분에서 미니멀한 인테리어는 취향 이상이며 기능성을 위한 욕구가 되어 버렸다. 이런 식으로 단순함을 쫓는 나의 취향은 패션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테리어까지 확대되었다. 우리의 안락한 집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의 부산스러움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만 했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아이들이 다치거나 어지를 수 있는 확률을 줄이고 싶었다.


거실에 놓았던 소품들을 하나둘씩 제거했더니 바닥과 벽을 이어주는 직선과 하얀 벽인 면만 남게 되었다. 바닥에는 크림색 카펫을 깔아 명도가 다른 하얀색으로 심플함을 유지했다.


오브제들이 주었던 즐거움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 단출한 벽면을 보고 나는 의외의 느낌을 받게 되었다.



햇살 좋은 날 해변가에 온 것처럼 심연의 안식을 느낀 것이다. 과감한 생략의 과정에서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는데 걱정과 달리 단순한 기하학적 무늬에서 오히려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거실에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그리고 식탁 의자, 깔끔한 하얀 벽 옆으로 100cm 정도의 키를 가진 외로운 선인장 화분만 있을 뿐이다. 고향을 멀리 떠나 기후에도 맞지 않은 낯선 곳에서 자리를 지켜 주는 저 생명체를 하얌 없이 바라보며 곤란했던 것, 힘들었던 것, 긴장했던 상태를 조금 느린 시간으로 되짚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자 저 깊은 어딘가 마음속에 갈망했던 여유와 생각의 풍성함이 솟아났다.


공간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컸다. 나무 질감의 가구들은 따뜻한 위로를, 선명한 색이 있는 액자는 무의식의 소망을 고무시켰다. 그리고 미니멀 해진 거실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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