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과 빈티지

by 봄남

친구들과 오랜만에 근처 카페에서 브런치 만남을 가졌다. 날씨는 제법 따뜻해졌고 하늘은 맑게 파란빛을 내었다. 핑크 운동화를 신어 볼까 초록색 로퍼를 신어 볼까 고민하다가 모든 것을 톤 다운시킨 후 셀린느의 브랜 뉴 트라이엄프 가방을 들고나가기로 결정했다.

둘째 태오를 데리고 나가는데 특히나 아꼈던 가방을 들고나간 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었다는 걸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다. 아직 5살밖에 되지 않은 장난꾸러기 아들 태오는 어른들의 대화가 따분해졌는지 평상시에 관심도 없었던 나의 가방에 그날따라 과한 애정을 쏟았다.


가방 가운데 있는 스냅 금장 장식이 문제였다. 가방 커버 부분에 있는 금장과 가방 바디에 달려있는 금장이 서로의 자리를 찾으며 자석의 힘으로 적중할 때 달칵하며 명쾌한 소리를 내었다. 그 달칵 소리가 재밌었는지 마치 그것을 장난감 다루듯 가방 문을 열고 닫기를 수 차례 계속했다. ‘똑딱똑딱’ 소리가 거슬렸다. 아니 그의 행동이 거슬렸다. 금장 무늬에 작고 따뜻한 그의 지문이 여기저기 묻기 시작했다. 아들의 즐거움이 나의 고통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를 저지시키기 위해 가방을 슬며시 반대쪽으로 갖다 놓았다.


셀린느 매장에서 직원이 초콜릿이나 커피 등 음식물이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는다며 주의를 준 것이 생각났다. 그때부터 나의 눈은 태오의 손을 순찰했다. 그리고 태오가 그것을 다시 만질 까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때때로 대화의 흐름을 놓치곤 했다. 뽐내고 여유를 부리고 싶어서 나간 자린데 태오 때문인지, 가방 때문인지, 강박 때문인지 조급함만 드러내고 온 시간이었다. 표정관리는 잘 되었을까.


가방님을 정성껏 모시려는 의도가 순진한 아이 때문에 들통나서 창피했다. ‘쿨하지 못한 행동’이야, ‘진정한 멋쟁이가 아니야’라는 비난을 충분히 받을 수 있지만 잦은 얼룩이나 사용감, 어쩌다가 생기는 흠집 하나조차 용납할 수 없었던 나는, 깨끗함을 최선을 다해 유지해야 했다고 스스로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가방을 위한 나인가 나를 위한 가방인가 하는 정체성 논란에 잠시 시달렸다.


생각해 보면 나는 비단 가방뿐 아니라 값비싼 사기그릇이나 집안 가구에게도 같은 행동을 한다. 집의 청결과 미모를 위해 집사를 자처하고 어떤 물건은 우리 집에 왕의 자리가 있다면 딱 그곳인 곳에서 떡 하고 자리를 차지하게 한다. 그런 강박적인 모양 유지는 나의 심미학적인 태도를 너머 편집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됐다. 사랑하는 태오에게 다그치고 예민하게 굴어야 하거나 가방에 무엇 하나라도 묻을까 하는 걱정에 전전 긍긍하게 됐다. ‘그까짓 가방’을 새것처럼 유지하려면 라이프 스타일에 많은 어려움이 생긴다는 것을 알아채기 시작한 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며칠 후 성수동의 어느 샵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은 빈티지 물건이 나에게 뜻밖의 위안을 주었다. 그것은 우아하고 아름다웠고 세월의 무게감까지 겸비해 신비하기까지 했다. 그들은 한동안 알아주지 않았던 서러움을 토해내듯 매력을 한껏 어필했다. 게다가 이미….. 손 떼가 묻어 있고 잔 흠집이 나 있었다! ‘새것’을 유지해야 하는 나의 강박적인 습관이 불필요한! 물건들이다. 더 가치가 있었던 건 세월의 흔적들이 묻어있는데 실로 고귀함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빈티지의 매력을 발견한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와 친구 E는 그곳에서 황홀경에 휩싸였다. 보물 찾기라도 하듯 겹겹이 걸쳐져 있는 옷들을 헤집었다. 설레는 마음에 옷걸이를 다음으로 밀어 내고 밀어내던 나의 빠른 손은 블랙 샤넬 블레이져를 발견했을 때 멈췄다. 그리고 그것의 소매를 만지는 순간 놀람의 탄성을 질렀다. 재질은 새털처럼 부드러운데 탄탄한 근육을 가진 것처럼 멋진 라인을 유지하고 있었다. 완벽했다. 검정 색깔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영롱한 빛을 발했다. 주로 이런 것들은 아주 착한 가격이다. 중고인 만큼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이다. 물론 값이 더 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유행하는 트렌드에 빈티지를 믹스 앤 매치하는 잔꾀를 부리면 ‘편하게’ 고급스러우면서 경쾌할 수 있다. 시대 간의 만남을 어색하지 않게 연출해 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게다가 희소성까지 있으니 기성품에 대한 반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구나 똑같이 따라 할 수 없는 것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을 애타게 만들 수도 있다.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색깔, 재질, 모양이니 말이다.


이미 낡아져서 나온 빈티지 물건들은 나에게 새것처럼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즐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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