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1
6개월 전
주말이라 출근할 일이 없었던 김비서는 그의 휴대폰으로 속속들이 제보 연락이 왔다. 최태수의 피해자들이 줄지어 김비서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어떻게 알았는지 한 피해자는 김비서 집 앞까지 찾아왔고 자신을 태수의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소개했다. 둘은 가까운 커피 숍 한편에 자리를 잡았다.
“김비서님. 긴히 할 말이 있어서요.”
“네… 여기까지 어쩐 일로.”
“저는… 안정훈이라고 합니다. 태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고요.”
그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듯 커피 한 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이내 태수와의 인연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최태수에게 고등학교 시절 유일한 보호자는 그의 홀 아버지였다. 아들에겐 관심이 없었고 무슨 일을 하는진 모르겠지만 집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다고 했다. 어느 날 밤 아버지는 돈뭉치를 들고 와서 기분 좋게 술과 참치 캔을 까서 먹고 있었다.
[“태수야 학교는 잘 다니냐?”]
그날은 아빠가 처음으로 다정하게 태수에게 말을 걸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려 왔던 아버지의 친밀감에 이상하리 만큼 울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신경질이 올라오는 것을 꾹 참았다가 대꾸도 하지 않고 문밖을 뛰쳐나왔다고 했다.
며칠 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태수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했다. 곤경에 빠질 때마다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세상에 홀로 있었다. 공평이라곤 없었고 그러기에 돈은 남의 것을 빼앗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 몫은 내가 챙겨야지. 너도 조심해라 내가 뺏는다.”]
[“야… 야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그가 정훈에게 선전포고를 하듯 말했다. 그의 눈빛을 보고 정훈은 간담이 서늘했다. 나이도 어린놈이 독기가 가득했다. 그 후로 태수는 친구들의 물건이나 돈을 뺏기 시작했다. 태수는 누구와의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아니 독보적이었다. 정훈은 그의 뒤를 따르면서 그의 시다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 만난 건 대학 졸업 후 우연히 카페에서였다. 그는 그때와 다르게 조금 더 여유 있어 보였다. 머리는 단정했고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욕이 난무했던 지난날과 다르게 정제된 언어를 사용했다. 정훈에겐 좀 낯간지러운 대화였다.
[“이야… 태수야 성공했나 보네…?”]
[“넌? 어떻게 사냐.”]
[“나…”]
그러고는 정훈의 한풀이가 시작됐는데 같이 불우했던 녀석인지 그답지 않게 한참을 잘 들어주었다고 했다. 그리고 때마침 그의 못난 인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듯 그가 지금 일하고 있다는 사업체 하나를 소개해 주었다. 그가 소개한 것은 다단계 사업. 그 다단계 사업은 정훈에게 그럴싸한 수익구조와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로 보였다. 그의 진실된 눈동자와 확신에 차 있는 표정, 차고 있는 시계, 번듯한 옷차림, 왠지 모르게 세련되진 머리 스타일, 그리고 지금 벌고 있다는 그 돈의 액수가 정훈을 빠르게 설득했다. 그리고 그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5000만 원을 만들어 투자했다고 했다.
“5000이요?”
“네 그 길로 제 인생 쭉 이지경입니다.”
“수익이 나신건 아니고요?”
“났으면 지금 이러고 있겠어요? 금융 사기였죠.”
김비서가 한참을 듣더니 의아한 눈빛을 보내며 물었다.
“그런데 이걸 왜 저에게 말씀하시죠?”
“김비서는 아시지 않습니까. 태수의 치부. 제가 고소할 때 힘이 되어 주세요.”
“제가 최사장님께 말씀드리면 어쩌시려고…”
“저는 압니다. 김비서님도 최사장 뒤통수 칠 준비하고 있다는 걸.”
김비서는 정훈의 짐작이 틀렸음을 암시하는 듯 아무 말 없이 그의 두 눈을 잠시 바라보았다. 물론 정훈의 말이 틀린건 아니었다. 그저 그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의문스러웠다.
“글쎄요…”
“여하튼 부탁드립니다.”
안정훈은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김비서는 들여다보지 않고 커피만 들이켰다. 그의 우회적인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부탁하는 정훈을 어디서부터 믿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물론 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부탁을 거절할 생각은 없었다.
정훈은 주변을 살피더니 짧은 인사를 하고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자리를 떠났다. 혼자 남겨진 김비서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의 말이 맞았다. 김비서는 서류 뭉치와 USB를 보며 이로서 공격할 총알 하나는 챙겨둔 샘이라고 생각했다.
4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