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의 사업 계획을 다 듣고 헤어진 태수는 생각에 잠겼다. 고등학교 때 민지는 태수에게 미소를 보여준 유일한 여자아이였다. 태수는 단 번에 사랑에 빠졌지만 민지와 가까워지긴 어려웠다. 이후 보여준 그녀의 차가운 모습에도 그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다른 세상에 있는 아이 같았다. 3년간 짝사랑. 그게 다였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태수와 혜진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태수는 핸들을 잡은 손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듯 손가락만 움직였다. 혜진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에 대한 불타는 첫사랑의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여전히 차분하고 상냥한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설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고등학교 때 생각했던 만큼 커다란 존재는 아니었다. 더 이상 그녀는 그를 흔들지 못했다.
그리고 태수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사업에서 돈 냄새를 맡았다. 언제나 그렇듯 돈 냄새가 그를 각성했다. 그는 재빨리 이성을 되찾은 다음 늑대처럼 사냥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자명종 소리처럼 그의 생각을 깨우는 혜진의 목소리에 태수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던 표정을 얼른 고쳐 먹었다.
“너 쟤랑 많이 친해?”
“친하지… 그냥 그런대로… 왜?”
“배신할 수 있어?”
“어? 왜? 갑자기?”
“너 잘하는 거잖아.”
“할 수 있지. 근데 나 민지 언니 배신해야 해?”
그녀는 그의 제안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섞여 있는 말을 내뱉었다. 혜진은 태수의 질문이 흥미로운 듯 태수를 쏘아보듯 웃었다.
“오빠 대단하다…”
태수는 그런 그녀의 조롱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후 태수는 그녀가 하려고 하는 고양이 텀블러 모양을 본인의 이름으로 특허 출원 및 등록했다. 그리고 그녀의 아이디어인 마케팅 전략을 이용해 순식간에 시장을 점령했다. 단 기간에 매출은 어마어마하게 뛰었다. 그 후로 몇 달 동안 태수와 혜진은 성공에 취했다.
그것은 태수가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번 돈이었고 이 사업이 그의 추악함을 드러내지 않는 방패막이되어 줄 수 있었다.
쾅쾅!
‘이놈에 문 두드리는 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김비서는 두 눈을 지끈 감았다 떴다.
“누구세요.”
“내 고양이 텀블러!!!”
문을 열자 한 여성이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고양이 텀블러를 외치는 걸 보니 이 여자가 민지일 것이라고 김비서는 생각했다.
“들어오세요.”
“태수 있어요? 최태수.”
“지금 안 계시는데… 어쩐 일로…”
“어쩐 일로? 모르시는 거예요?! 저건 원래 내 거였다고요.”
그녀가 벽에 붙어 있는 특허증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김비서는 그녀를 진정시키며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 차분하게 물었다.
“증거 있습니까?”
“.... 증거요?”
“네. 확실한 증거만 있으면 되잖아요.”
김비서의 부드러운 표정에 민지는 흥분을 가라앉혔다. 어쩌면 도와줄 수도 있을지도 모를 것 같은 온화한 표정이었다.
“제가…”
말문이 막힌 민지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띠리리링!
그때 눈치 없이 민지의 핸드폰에 벨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어.. 도영아. 응. 아니야. 나 잠깐 바빠서 이따가 전화할게.”
김비서는 ‘도영’이라는 이름에 귀가 열렸다. 또 다른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지랖을 피워 보기로 했다.
“누구세요?”
“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아는 분 이름이 들려서요. 도영이라고… 실례했습니다.”
“오래전 헤어진 남자친구요…”
“혹시 성이…”
“이도영이에요.”
“제가 아는 분도 이도영. 최사장님의 친구분이거든요… 하하..”
“… 친구요?”
“네 같은 분일지도 모를까 해서.. 하하 아, 제가 선을 넘었네요.”
“아니에요. 친구분이면 나이가 같고….”
“네, 제야회사 대표님이세요.”
민지는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 고개를 들어 김비서의 얼굴을 보았다. 이런 기가 막힌 인연에 아연실색했다.
7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