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타이밍

by 봄남

“오늘 저녁 식사… 같이… 어떠세요?”

“…. 약속이 있어요…”



다음날 그다음 날에도 주혁은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로봇처럼 같은 말만 물어보는 자신이 싫긴 했지만 그로선 최선이었다. 그날따라 퇴근길에 다희의 남자 친구로 보이는 사람이 다희를 마중 나왔다. 그는 다희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희는 남자 친구 있냐는 질문에 왠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의 진실한 눈빛에 사로잡혀 ‘남자 친구 따위 없어요.’라고 말할 뻔했다. 그러나 워낙 솔직한 사람이라 즉흥적인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주혁은 오늘도 다희에게 ‘밥 먹자’고 물어보았다. 벌써 세 번째다. 때마침 취소하지 못할 약속만 줄지어 있어 다희는 번번이 거절해야 했다. 게다가 남자 친구가 마음에 걸렸다. 남자친구와는 오래된 연인이었다. 연락을 자주 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저녁을 같이 하자고 하는 주혁을 생각하며 갑자기 남자 친구에게 서운한 감정이 생겼다.


누구는 나에게 저녁 약속을 잡으려고 매일 물어보는 정성을 쏟는데. 남자친구는 여차하면 마음이 바뀔 수도 있는 여자 친구에 대한 자각이 있을까 싶었다.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민호야,”

“어 자기야. 뭐 해?”

“나 아직도 좋아해?”


그는 대답 대신 웃었다.


“무슨 일 있어?”

“… 지금 뭐 해?”

“친구랑 술 마시면서 곱창 먹고 있어.”

“나랑 놀자.”

“음.. 곱창 먹어야 해.. 미안.” 그가 곱창을 질겅질겅 씹으며 말했다.

“나야? 곱창이야?”

“그야 당연히 곱창”


주저하지 않는 그의 농담에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그녀를 최우선으로 두지 않는 농담이 거론될 만큼 그들의 관계는 탄탄한 믿음 위에 안정기를 지나고 있었다. 재미있어야 할 그들의 대화가 여차하면 감정의 단절을 불러올 만큼 치명적인 실수가 될지 민호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녀는 그제야 마음껏 ‘남자친구를 향한 나쁜 감정’을 가질 수 있었다. 그날 저녁 그녀는 주혁에 대한 죄책감을 남자친구에 대한 서운한 마음으로 치환시킬 수 있었다.


다음날 그녀는 다른 날 과는 조금 상기된 마음으로 주혁을 보았다. 그녀가 시선을 돌리면 주혁과 눈이 마주쳤었고 그가 먼저 그를 보고 있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나 그날따라 업무가 바빴는지 그는 그녀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발행 결제를 받으러 진혁 씨에게 갔을 때에도 ‘오늘 저녁 약속’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 왠지 마음이 허탈했다.


시작도 안 했는데 시련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넋을 놓고 얼마간 앉아 있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던 동료 민희가 그녀의 심란한 얼굴을 눈치챘는지 남자 친구랑 싸우기라도 한 것이냐며 걱정해 줬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벌써 퇴근 시간이 왔다. 그녀는 자신이 생각 보다 주혁을 신경 쓰고 있었다는 것을 무너져 가는 마음을 느끼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민희에게 인사는 하고 온 것일까. 책상은 정리하고 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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