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여름 Nov 02. 2023

보내지 못하는 마음

단비가 별이 되다



본가의  둘째 강아지 단비가 토요일 새벽에 별이 되었다. 준비하지 못한 이별이었다.

첫째 루비가 떠난 지 8개월 후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슬픔은 믿어지지 않을 때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진짜 현실임을 또렷이 알게 되면 그때부터 감당하지 못할 슬픔에 허우적거린다. 


본가에서 키웠던 루비와 단비는 아빠가 데려왔고, 각각 사연이 있었다. 

그중 루비는 학대받아서 트라우마가 많았다. 짖지 못하게 성대 수술까지 시켜서 평생 목에 뭐가 걸린 듯 

‘컥컥’ 소리를 냈다. 간혹 사람들이 “얘는 강아지가 왜 인형 같은 소리를 내요?” 물어보면 우리가 한 일이 아님에도 죄스러웠다. 그런 루비가 요 며칠 계속 생각났고 함께 사는 강아지 사랑이를 산책하면서도 몇 번을 울었다. ‘펫로스 증후군’인가 싶었는데 루비가 꿈에 나타났다. 꿈에서 본 루비는 아픈 곳이 없었고, 생기를 되찾아 어려진 모습이었다. ‘정말 루비가 맞나?’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는 내게 루비가 달려왔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눈을 보니 우리 루비가 맞아서 얼른 안아 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꿈이 깨서도 선명한 기억이 좋았다. 그런데 바로 며칠 뒤에 단비가 떠났다. 루비가 꿈에 나온 건, 단비가 이곳에 오게 되면 자기처럼 행복하고 건강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였을까.


8개월밖에 안 된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온 날,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진아야 집에 빨리 와봐. 너 엄청나게 놀랄지도 몰라.”

“뭔데? 궁금해. 미리 말해주면 안 돼?”

“와보면 알아. 그러니까 빨리 와. 알았지?”

무슨 일인가 싶어서 허겁지겁 집으로 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배냇 미용이 안 되어 있는 귀여운 솜뭉치가 꼬물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루비는 성견이 되어서 만났는데 어린 강아지는 처음이었다. 

먹을 물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방치되어 있었다고 했다.

“단비라는 이름 어때?” 

떠오르는 이름을 말하자 모두 찬성했고 그날부터 우리 집 둘째 강아지가 되었다.


어린 강아지의 이갈이는 귀엽고 난감했다. 뭐든 가져다가 물고 뜯어놓았는데 실내 자전거 페달은 물론, 책들까지 몽땅 갉아 놓았다.  단비의 행동이 깜찍하고 어이없어서 우리는 그저 웃었다. 루비는 학대 트라우마 때문인지 배변을 못 가렸는데 단비는 패드에 알아서 볼일을 봐서 기특했다. 단비로 인해 상처받을까 봐 한동안 루비가 안 볼 때만 단비를 예뻐했다. 둘이 서로에게 적응하는 건 조금 어려웠다. 루비는 적대감이 심했고, 그럴수록 단비는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면데면하면서도 둘은 의지하며 지냈다. 긴 시간 아팠던 루비는 17세 나이에 별이 되었고, 단비는 더 오래도록 우리 곁에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단비가 얼마 전부터 이상했다.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하고 어딘가 아파 보여서 바로 동물 병원에 갔다. “약 먹으면 괜찮아요.” 원래 말이 짧고 정이 없는 선생님이지만 유독 더 쌀쌀맞게 느껴졌다. 단비는 약을 먹고부터 밥은커녕 물도 못 먹게 되었다. 약을 중단해야 하지 않을까 병원에 전화했더니 선생님은 치료 과정이라며 무안을 줬다. 두 번째 약을 지어서 먹이는데 엄마는 직감적으로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다 필요 없어. 단비 밥 안 먹으면 죽어. 이제부터 약 안 먹여야겠어.”

약을 중단하니 밥을 거부하던 단비가 그제야 조금씩 먹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던 걸까.

곧 물도 거부하며 걷는 힘이 점점 빠졌다. 고비가 많았던 루비를 봐왔기에 이 시기가 지나가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배변 패드로 걸어가다가도 쓰러졌고, 모든 게 힘들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컨디션이 괜찮으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단비 걱정에 바닥에서 이불을 깔고 자던 언니 곁에서 단비는 홀연 성격처럼 온순하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새벽에 떠난 단비 소식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마는 모든 게 자기 책임처럼 말했다. 지켜주지 못한 것 같다고 자꾸 같은 말만 반복했다. 잠자고 있는 것 같은 단비였지만 차갑게 굳어있었다. 루비를 보내면서 이런 장면은 아주아주 나중에 올 것 같았는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서 단비의 장례가 이어졌다. 2월에 갔던 곳을 10월에 다시 갔다. 단비는 몸에 염습하고 수의를 입은 후 입관했다. 눈물이 주저 없이 흘러내렸다. 


추모식이 끝나자 마지막 인사를 하라고 했다. 심장이 비틀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단비야, 언니 동생으로 와줘서 고마웠어. 하늘나라에서 아빠랑 루비 언니 만나서 잘 지내고 있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너무너무 사랑해. 언니가 오래오래 기억할게. 잘 가….”

인사 후 화장식을 했다. 작은 유골함에 담겨 다시 우리 품에 들어온 단비를 안았다. 따뜻했다.


“단비야 산책하러 갈까? 단비야 껌? 껌 줄까?”

“응-응-”

높고 길게 소리를 내던 특유의 단비만의 대답을 더는 들을 수 없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는 단비의 장난감이 주인 없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2023년 10월 28일 새벽 2시 50분. 단비 11세. 별이 되다.)



우리 단비



단비야 사랑해





작가의 이전글 믹스커피는 사랑을 타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