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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여름 Nov 05. 2023

고귀한 그녀

우리 언니



어릴 적부터 취향이 고급스러웠던 세 살 위 언니가 있다.

1997년 11월 1일에 발매된 첼리스트 요요마의 <Libertango>를 즐겨 들었고,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등 웅장한 뮤지컬 음악도 좋아했다.

노래방에서는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앞부분 “궂은 비 내리는 날”에서 ‘궂’을 힘주어 부르며 

뭘 좀 아는 어른처럼 굴었다. 그녀 나이 고작 열일곱 때였다.     


프로 고백러였던 언니는 이모 삼촌들을 만날 때마다 

“여름 방학이 끝나면 ○○에게 고백하려고요.” 

묻지도 않은 말을 당차게 했고, 어른들은 “어, 그래.” 시큰둥했다. 

그건 좋아하는 사람이 방학마다 바뀌어서였다. 

유행하는 다이어트는 다 했던 것 같은데 방학이 끝나도 변한 게 없으면 그다음 방학으로 호쾌하게 넘겼다. 

“다음 방학 때 고백하려고.” 

그런 언니가 신기했다. 나는 수줍어서 눈으로만 고백하는 타입이었으므로.


우리 자매는 외모도 달랐다. 오래 다니던 교회인데 매주 한 분씩은 물어봤다.

 “어머! 자매 맞아요?” 그게 뭐 놀랄 일입니까. 

매번 듣는 말이 잠잠해진 건 부모님과 같이 예배를 드리면서 종결되었다. 

엄마 닮은 언니, 아빠 닮은 나로.      

소꿉놀이도 안 좋아하고, 인형 놀이는 더 안 좋아했던 언니가 본격적으로 나와 놀아준 건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비가 얄궂게 내리던 날. 설레며 약속한 지하철역으로 갔다. 

집에서 맨날 보는데도 몹시 반가워서 “언니이-” 반갑게 손 흔드는 동생과는 달리 시크하게 손짓 한 번 끝.

지하철 노선도를 쓱 보고 척척 찾아가는 언니만 졸졸 따라가니 명동역 도착! 

우리끼리 카페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먹고 싶은 거 시켜.” 돈가스였나? 도리아였나? 메뉴는 가물가물한데 그날 분위기는 또렷하게 기억난다.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은 바래서 심령사진처럼 남았다. 

그 뒤로는 영화관, 종로, 언니 친구들이랑 놀러 가는 롯데월드까지 부지런히 데리고 다녔다. 

그로부터 지금껏 징글징글하게 놀아준다.  


한때 괴롭힘을 당할 때가 있었다. 곪고 곪아서 터트린 그간의 일들을 말하면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듣고 있던 언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고 같이 울었다. 

“내 동생 건드리면 다 죽었어!” 화나면 무서운 그녀였기에 가만있지 않았다.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괴롭혔던 그 아이들은 벌을 받았고 나는 전학을 갔다. 

나를 건드리면 언니가 싸웠고 언니를 건드리면 내가 싸웠다. 피는 물보다 진하고 뜨겁기까지 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모든 관심을 받아서 미웠다고 했던 언니의 고해성사를 들은 적 있다. 

어릴 때 안 예뻐한 게 미안하다고 여태껏 황송하게 잘해준다.

에드워드 호퍼, 데이비드 호크니, 잭슨 폴록, 웨인 티보 등 모두 언니를 통해서 알게 된 화가였고 

다양한 책과 영화를 보여주고 추천해 준 것도 언니였다. 모두 그녀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다. 

이제는 나도 언니를 데리고 다니게 되었다. 전시회도 가고, 맛있는 걸 먹으러도 다닌다.

입장이 반대되어서 “또 데리고 가.” 말하는 언니는 알고 보니 엄청난 길치였다.

비록 어릴 때는 미웠다지만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 건 언제나 언니이다.

드넓은 시야를 갖도록 해준 나의 언니. 한결같이 품위 있는 우리 언니.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말로는 하지 못해서 끄적끄적.




친구같은 자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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