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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여름 Nov 16. 2023

모범생의 봉변

이젠 눈빛만 봐도 알아요



미움받은 기억은 오래간다. 시간이 흘러도 의문으로 남는 일이 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서 수업마다 과목별로 선생님이 다르다는 게 신기했다. 매번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 시간에는 어떤 선생님을 만날지 한껏 기대했다. 다가온 수학 시간. 교실 앞문을 열고 큰 키에 검고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여자 선생님이 들어왔다. 얼굴에는 코 옆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아주 큰 점이 있었고 표정이 굳어있어서 화가 나 보이기까지 했다. 반 아이들은 선생님의 첫인상을 보고 “오 서방 같아.” 소곤대며 키득거렸다. 솔직히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선생님이 무안할까 봐 차마 웃지는 못했다. 첫 수업이 시작되었고, 아이 콘택트를 잘해서인지 선생님은 나를 쳐다보며 수업했다. 학창 시절 동안 집중을 잘하는 수업 태도로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수학 선생님은 어딘가 조금 다르게 보는 듯했다. ‘왜 이런 기분이 들지?’ 묘하게 불편한 감정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바로 다음 수업부터 선생님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유독 내게만 안 좋은 시선을 보내며 째려보기까지 하는 선생님의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있었다. 그날도 수업이 한참 진행된 후 각자 문제를 푸는 중이었다. 

교실 안은 종이 위에 서걱서걱한 소리로 가득 찼고 공기마저 조용히 가라앉은 것 같았다. 

선생님은 자리를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문제를 잘 풀고 있는지 살피다가 내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풀고 있던 나의 수학 책과 공책을 손에 쥐고선 바닥으로 패대기를 쳤다.

“야! 넌 공부하지 마!”

“…?”

“너는 공부 안 해도 되잖아.”

“네…?”

“반반하게 생겼으니까 공부하지 말라고. 안 해도 먹고 살 거 많잖아? 안 그래?”

경상도 사투리 억양 때문인지 쏟아지는 말들이 더욱 무섭게 느껴졌고, 당황스러움에 손이 떨렸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반 아이들도 눈만 깜빡거리며 숨죽이고 쳐다봤다. 선생님은 분이 안 풀리는지 계속 씩씩거렸고 나는 심장이 쿵쾅대며 현기증까지 났다. 곧이어 선생님은 교탁 앞으로 돌아갔고 화가 가라앉지 않는지 나를 계속 노려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반 분위기는 얼음 상태가 되었다. 정적이 이어지던 가운데 때마침 울리는 쉬는 시간 종소리가 나를 살렸다. 선생님은 성난 걸 온몸으로 티를 내며 교실 문을 세게 열어젖혔고 ‘쾅’ 소리가 크게 났다. 교실 안에는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친구들이 내 자리로 모여들었다. “수학 왜 저래? 맨날 너 째려보더니 진짜 뭐가 있나? 완전히 이상해.”

온갖 추측을 하며 곁에서 떠드는 말들. 별로 안 친한 아이들까지 와서 토닥거렸다. 그제야 긴장이 풀려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다음 시간이 체육이라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체육 시간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전까지는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았다. 또 언젠가 선생님들 대화를 우연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냥 예쁜 애들 있지 않아? 진아가 그렇더라.” 

“맞아. 진아 같은 딸 낳았으면 좋겠어.”

나중에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을 때, 그 말뜻을 온전히 알 수 있었다. 말썽 안 부리고 잘 따르는 아이에게 마음이 더 간다는 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모범 어린이 상을 받는 아이였고 반장도 줄곧 해왔다. 그만큼 거슬리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는 성실한 학생으로만 살아왔다. 

그래왔던 내게 수학 선생님의 행동은 너무나도 공포였고 모욕적이었다. 돌이켜 보니 엄연한 학교 폭력이었다. 요즘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선생님은 내게 사과해야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반 아이들과 나만 알고 있는 이 사건을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없었다. 담임 선생님은 임신 막달로 반 배정 때 인사만 하고 자리를 비우셔서 다른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임시 담임으로 바뀌었다. 하는 수없이 1년 동안 수학 선생님의 정체 모를 구박을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다. 수학 시간만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렸고, 최대한 선생님과 눈이 안 마주치도록 노력했다. 


1학년을 마치고 전학을 가면서 다시는 수학 선생님을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기억력이 매우 좋은 편이며 뒤끝도 오래오래 가는 사람이다. 만약 당장이라도 길에서 수학 선생님을 마주친다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수학 선생님의 행동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물음표로 남아있다. 이때 이후로 별나고 무례한 선생님들을 다양하게 만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여전히 사람들과 눈 맞춤을 잘한다. 그러다 보면 가끔 수학 선생님과 비슷한 눈빛의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의 경험으로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마주한 사람의 눈을 보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얼핏 보인다는 거다. 아마도 투시력이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최근 이 일이 자주 떠오르고 곱씹어 보게 된다. 눈빛 탐정으로서 촉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느낌이 퍽 씁쓸하다.   



  



기억은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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