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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여름 Nov 15. 2023

수영을 할 수 없는 이유

물 공포증 있는 사람


최근 운동을 다시 시작한 남편이 말했다. 

“운동을 해보는 게 어때?” 

“운동? 해야지. 할 거야.” 

운동을 좀 해야겠다 싶으면 언제나 수영이 먼저 떠오른다.


유일한 운동 경력은 어릴 적 수영 학원에 다닌 게 전부다. 

물을 두려워해서 배우기 싫었는데 엄마는 상의도 없이 등록시켰다. 

다행히 언니와 함께 다닐 수 있다는 것에 한시름 놓았으나 여름방학의 달콤한 늦잠 대신 

우리는 일찍부터 부지런 떨며 아침반 수영을 다녀야 했다. 

하지만 의지할 수 있던 언니는 중학생이라 다른 반이었고 거기에 더해 나는 호랑이 선생님 반에 배정받았다. 언니 반에서는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았는데 아마도 잘생긴 선생님 때문인 듯했다. 

수영 다니는 거 싫다고 같이 투덜거렸으면서 언니는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첫날 물장구를 치고 잠수 연습할 때까진 괜찮았는데 문제는 다음날부터였다. 

“가리키는 곳까지 잠수해서 와.”선생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잠수해서 어떻게 가지? 물이 가슴까지 와있는 것도 무서운데.’

수경에 물이 들어간 척 시간을 버는 내게 소리를 꽥 지르는 선생님 때문에 가뜩이나 내향적인데 더 당황했다.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아 미안하고 창피해서 수영장 가는 게 정말 싫었다.

진도는 계속 나가는데 나만 제자리였다. 엄마도 같은 수영장에 다녔는데 우리는 ‘수영 못 하는 모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고 얼마 뒤 바람대로 수영 학원은 그만두게 되었다.

 1년이 지나서 엄마는 다른 수영장에 등록했다. 이번에도 싫어하는 나를 안심시키며 함께 저녁 시간 직장인반에서 배우면 된다고 했다. 이전과 다르게 선생님은 성격이 온화하셨고, 같이 강습받는 사람들도 좋았다. 

특히 수영 배우기를 강요하지 않아서 킥판을 잡고 할 수 있는 수영 겸 물놀이만 했다. 

그래서 수영 학원은 다녔지만 수영을 못 한다.


물에 대한 공포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있었다. 유난히 겁이 많아서 바다나 계곡에 가면 아빠가 나를 안고서 물에 들어갔는데 그것도 너무 무서워서 소스라치곤 했다.

언젠가 가족들과 야외 수영장에 놀러 갔을 때 한 번의 사건으로 물 공포증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언니들이 있는 곳에서 놀고 싶은데 물이 깊어 보여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다가와서 나를 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물에 내던졌다. 

그곳은 다이빙을 할 수 있는 깊이였으며 CCTV가 없던 시절이라 누군지 찾아낼 수도 없었다. 

꼬르륵 물속에 가라앉으면서 사람들의 다리가 보였고 귀는 웅웅 거리며 말소리는 희미하게 들렸다. 

‘이대로 죽는 건가….’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움직임이 슬로모션으로 느껴졌다.

“여기 사람이 빠졌어요! 도와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렸고 안전 대원 아저씨가 와서 구해준 덕분에 가까스로 물 밖으로 나왔다. 입술이 파래져서 벌벌 떨었고 그날부터 물 공포증은 더욱더 심해졌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생존 수영’이 있고, 나의 초등시절도 여름이면 수영장 가는 게 필수 수업이었다. 

모두가 즐거워하는 수영이 하나도 안 즐거운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고 외로운 마음마저 들었다.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계곡이나 수영장을 가게 되면 물 근처에만 있더라도 꼭 구명조끼를 챙겨 입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나를 밀어도 물 위에 뜰 수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은 무서우나 여름 분위기만 즐겼다. 

그러다 운명적으로 수영 못하는 남자를 만났고, 신혼여행으로 갔던 고급 호텔의 수영장에서는 

어울리지 않게 나란히 킥판에 의지하여 재미있게 놀았다. 처음으로 즐거웠던 물놀이였다. 


수영을 생각하면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선뜻 용기가 나지 않아서 때가 되면 하겠거니 은근슬쩍 또 미루게 된다. 강아지 산책만으로는 운동량이 부족할까. 어떤 운동을 해야 할까. 

지난번에 홈트를 며칠 하고서는 어깨에 무리가 가서 한동안 정형외과에 다녔는데. 

그래도 뭐, 어쨌든 해야지 운동. 챙겨야지 건강. “미래의 나, 운동하고 있지?”






 그랜드 조선 제주 (수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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