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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여름 Nov 22. 2023

물든다는 것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온다


얼마 전, 춘천에 있는 ‘제이드가든’ 수목원에 다녀왔다.

온갖 식물과 나무들을 보면서 물드는 것에 대하여 상념에 잠겼다. 제 역할을 하기 위해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면서는 감탄까지 했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설악산 단풍 구경’을 가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수목원 안에 있는 식물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뽐냈지만 모여 있으니 더욱 근사했다. 가을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날만큼은 다르게 보였다. 구경으로 눈이 바쁜 와중에 문득 어떤 글이 떠올랐다.

‘자신을 둘러싼 다섯 명의 사람이 곧 자기의 모습이다.’

식물들을 보다가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었는데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불필요한 인간관계가 많이 정리되었다. 더 이상 상처받으면서까지 봐야 할 사람들도 없다.

관계를 정리한다는 게 겁이 나던 때가 있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불편한 자리에서 멀리할수록 나는 나를 지키는 힘이 생겼다.

좋은 습관이 좋은 삶이라는 말처럼, 내게는 좋은 관계가 좋은 삶이기도 하다.


한동안 독서 모임에 열심히 나갔다. 책이 제일 재미있기도 했고, 책을 읽고 나누는 일이 좋았다.

그래서 친구들에게도 넌지시 말을 꺼냈다.

“우리 독서 모임 할래?”

“책 읽는 것도 힘든데, 그걸로 모임까지 하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안 내켜 하길래 기대를 접었다. 대신 주말이면 독서 모임으로 먼저 향했다.

시간이 흐르니 자연스럽게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주변에는 읽는 사람으로 서서히 번지고 물들어 갔다. 남편도 독서 모임을 통해서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책 읽는 것에 시큰둥하던 친구들이 궁금해했다.

“독서 모임은 어떻게 하는 거야? 재밌어?”

“책 읽고, 이야기 나눠. 한 번 와봐.”

“아…. 자신 없어. 근데 나도 취미 모임 나가고 싶다.”

한참을 고민하며 나른한 주말을 보내던 친구들은 곧 각자에게 맞는 모임을 찾아갔다.

등산 동호회, 테니스 모임에 빠져서 이제는 만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취미가 주는 기쁨과 결이 맞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좋은 물듦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잘 살고 있다는 기분과 수목원의 기운, 공기 덕분에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고 상쾌했다.

알록달록한 단풍들처럼 삶도 그러하다. 다채로웠던 지난날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

‘좋은 사람이 되면 좋은 사람이 온다’라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현재 맺어진 관계들이 가장 편안하고 안정적이다.

충만한 행복으로 스며든 일상이 감사하고 소중하다는 걸 자주 느끼곤 한다.

나도 낙엽처럼 물들어 간다는 걸까.




춘천 '제이드 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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