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같은 내 강아지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사랑이와 첫 만남부터 그동안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어느 날, 사촌 오빠는 강아지가 임신 중이라며 한 마리 키워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새끼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살짝 걱정되었지만 설렘이 더 컸다.
“응응! 나 키워볼래!”
“안돼. 진아 연애해야 하는데 강아지 키우면 연애하기 힘들어.”
“연애 안 할 거예요. 저 혼자 살 거라서 괜찮아요.” (그땐 정말 그럴 줄 알았다.)
옆에 계시던 큰 이모부한테 자신만만하게 말했고 오빠는 한 달 후에 연락하겠다고 했다.
2020년 11월 8일 늦은 저녁에 사촌 오빠에게 카톡이 왔다. 마지막 강아지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태어난 아이들의 영상을 함께 보내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상을 눌러보니 눈도 안 뜬 새끼 강아지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내가 혼자서 키울 수 있을까?’ 그동안은 본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강아지들을 키웠기에 그제야 두려움이 조금 생겨났다.
하얀 털의 순진한 인상이 매력인 ‘꼬똥 드 툴레아’ 사랑이는 네 마리 중에서 첫째였다. 오빠가 제일 키우고 싶었던 아이였지만 막내가 가장 약해서 사랑이를 내게 보냈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되었다. 태어나고 얼마 동안은 엄마 강아지가 돌보는 시간이 필요했기에 틈틈이 사랑이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러다가 2021년 새해가 시작될 때 ‘엄마 안녕?’하고 카톡이 왔다. ‘엄마? 어 어 엄마?’ 낯선 엄마라는 단어에 당황함도 잠시, 사진 속 사랑이가 전보다 자라 있었다.
‘응. 사랑아 안녕? 우리 곧 만나자.’ 바로 답장을 보냈다. 강아지를 키워보면 어떻겠냐는 말을 들을 이후 정해놓은 이름이었다. 그 뒤 “사랑아, 사랑아?” 하며 불러보는 연습도 종종 했다.
그리고 직접 부를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 무렵 나는 이사를 하게 되었다. 새집 정리를 마치고 나서 드디어 사랑이를 처음 만나던 날.
열 살의 조카 담희의 품에는 아이보다 더 작은 사랑이가 안겨있었다. 강아지는 내려놓자마자 아장아장 걸어서 내 품으로 쏙 들어왔다.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속에서 일어났다. 책임감과 벅참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제부터 너는 내 사랑이야. 우리 잘 지내보자.’
새끼 강아지를 맞이한 날, 가족들끼리 모여서 파티를 열었다. 엄마랑 언니는 사랑이를 보자마자 그야말로 사랑에 빠졌고, 엄마는 ‘강아지 손자’라며 자칭 할머니가 되었다.
파티를 잘 보내고 나서 둘만 있게 되자 사랑이는 낑낑거렸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일까, 잠자리가 불편한 걸까. 내가 화장실만 가도 낑낑거렸고, 불을 끄고 누우면 더 울었다. 다급해진 나는 언니한테 ‘SOS’를 쳤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언니의 도움을 많이 받으며 사랑이와 함께하고 있다. 혼자서 돌봄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랑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집 안에 움직이는 생명체가 있으니 신기했다. “사랑아, 잘 잤어?” 아침 인사를 하고, 내 밥은 안 먹어도 강아지 밥은 챙겼다.
새끼 강아지는 하루에 세 번 밥을 먹여야 하기에 외출도 힘들었다. 어딜 나가도 “강아지 밥 줘야 해서 난 이만.”을 말하고 쏜살같이 집으로 향해야만 했다. 누군가를 살뜰히 보살핀다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없었는데 본능적으로 변했다. 뒤늦게 자동 급여기를 구매해서 그나마 마음 놓고 외출할 수 있었다.
어린 강아지는 날마다 자라났다. 유치가 빠지면 그게 또 신기해서 사진을 찍었고, 소중히 보관 중이다.
이갈이 시기를 대비해서는 미리 다양하게 스틱을 주었더니 다행히 가구들이 멀쩡했다. 사랑이의 진짜 엄마 아빠는 가구와 벽지를 많이 망가트렸다는 걸 알았기에 준비해 두었던 것이었다.
예방 접종이 다 끝나고 첫 산책을 했던 날. 땅을 처음 밟아 본 사랑이는 신나게 달렸다.
차가운 겨울 공기는 민트 향기처럼 상쾌했고 우리는 발을 맞춰서 뛰었다.
그날의 기쁨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있다.
그저 바라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사랑이는 정말 ‘사랑’ 그 자체의 존재다.
어느덧 사랑이의 세 번째 생일이다. 이번에는 어떤 이벤트를 할지 고민했다.
‘사랑이 엄마 아빠는 번쩍번쩍하게 파티를 열어준다던데. 내 새끼 기죽일 수 없지!’
강아지 케이크와 쿠키를 사랑이 먹거리로 준비하고, 생일 선물과 가랜드 등 이것저것 꾸며보았다.
생일 파티에는 가족들을 초대했고 다들 선물을 준비해 왔다. 생일인 강아지 보다 참석한 사람들이 더 많이 웃었다. 또 작년부터 생일잔치에 동참한 남편까지 있어서 두 배로 행복한 자리가 되었다.
사랑이는 생일상이 만족스러운지 카메라를 쳐다보면서 다양하게 포즈를 취했다.
“우리만 보기 아까운데.”
“그렇지? 이 정도면 모델감이지.”
나를 포함해서 사랑이 주변 사람들은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는 콩깍지가 단단히 씌었다.
우리 집 막내, 이제는 하나뿐인 금쪽같은 내 강아지 사랑이.
올해도 엄마, 아빠, 할머니, 이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한 생일을 지냈다.
고깔모자를 쓰고 해맑게 웃고 있는 사랑이는 우리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아, 너의 모든 시간을 책임질게. 많이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