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줄이면 어때?
얼마 전,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다.
“판다월드요.”
1초도 망설일 필요 없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으니까. 예상치 못한 내 대답에 질문자는 조금 당황하는 듯했다. 그때 누군가가 끼어들며 말했다.
“거긴 줄만 길잖아요.”
아무 감정 없이 던진 말이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소를 비난하는 듯 들려 기분이 언짢았다. 함께 나누는 대화 속에서 생각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판다월드를 좋아하는 게 뭐 어때서? 바다나 예쁜 카페를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 떠오른 곳은 판다월드였다. 예전이라면 강릉이라 대답했을 테지만, 좋아하는 장소의 순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
요즘은 그나마 덜하지만, 판다월드에 가면 대체로 긴 줄을 서야 한다. 푸바오의 인기가 너무 많아 처음 만날 때는 2시간도 훌쩍 넘게 기다렸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충분히 기다릴 만하다. 하지만 판다월드를 찾는 사람들은 긴 대기 시간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만큼 판다의 인기가 높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기다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들은 한두 번 줄을 서본 것이 아니기에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판다를 더 좋아하는 사람과 덜 좋아하는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게다가 오랜 기다림 끝에 입장했는데도 판다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전에는 거의 자고 있고, 오후쯤 돼서야 조금씩 활동하는데, 이를 모르는 관람객들은 불평을 쏟아낸다. 나 또한 기다리는 것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웬만한 맛집이라 해도 웨이팅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이해는 가지만, 판다는 생명체 아닌가. 자고 싶으면 자고, 먹고 싶으면 먹는 것이다. 그 자연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관람객의 올바른 자세다. 우리는 판다의 일상을 엿보는 것이지, 판다가 우리를 위해 억지로 행동할 필요는 없다. 범접할 수 없는 그 귀여움은 볼 때마다 경이롭다.
잠에서 깨어난 판다는 대나무를 먹거나 부사료인 워토우를 먹기 시작한다. 요즘은 죽순이 나는 계절이라, 아삭아삭 죽순을 씹어 먹는 소리도 자주 들린다. 대나무를 손으로 모아 한 입씩 우적거리면 그 씹는 소리가 멀리까지 선명하게 들려온다. 수분감 많은 댓잎을 와작와작 넘기는 모습은 어쩜 그리도 복스러운지. 느긋하게 먹는 그 자체만으로도 뭔지 모를 편안함과 동시에 귀여움이 느껴진다. 까만 눈을 끔뻑거리며 하늘을 한 번 쳐다보기도 하고, 식사하다 졸기도 한다. 그런 작은 동작들까지 모두 사랑스럽게 보인다. 어쩌다 이렇게 판다에 빠졌을까? 매번 생각하지만,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찌 되었든 간에, 나는 그 사랑스러운 표정과 동작들을 보기 위해 기꺼이 긴 줄을 서서라도 판다월드를 찾아간다.
판다는 그저 바라만 보아도 행복을 준다. 판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웃음꽃이 피어 있다.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각자의 핸드폰과 카메라에 판다들을 담아낸다. 조용히 관람해 달라는 당부를 지키면서. 물론 시끄러운 관람객도 더러 있지만, 대부분은 판다가 조용한 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숨죽여 바라본다. 나는 판다도 보고, 판다를 보는 사람들도 본다. 동물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자신이 맡은 동물을 아낌없이 사랑해 주는 주키퍼분들의 노력과, 서로 주고받는 사랑이 느껴진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 그리고 실체가 없는 사랑이 눈으로 보이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해하다’는 말이 종종 쓰이는데, 판다월드는 정말 이 말에 딱 들어맞는 곳이다. 같은 세상 안에 존재하는, 아주아주 무해한 장소. 다른 생각을 하지 않게 되는 ‘불멍’처럼, 나는 ‘판다멍’을 한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어도 마냥 좋은 것.
그래서 나는 판다월드를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그곳에 가면 잠시나마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이런 장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줄만 길다고 말한 사람은 아마 이러한 가치를 몰랐을 것이다. 이처럼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른 세상을 마주하는 경우가 또 얼마나 많을까? 그렇다면, 마음이 넉넉한 사람은 주변의 모든 것을 좀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 또한 그러기를 바라본다.
줄만 긴 곳이라고?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긴 줄이면 어때. 기다린 만큼 더 행복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