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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Nov 04. 2022

안녕, 나의 이탈리아!

달콤한 나의 시간


"눈물 날 것 같아."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대화 소리가 휙 날아들었다. 살짝 곁눈으로 살피니 친구로 보이는 세 명의 중년 여성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시월의 늦은 오후, 테라스를 가득 채우며 흐르는 재즈 선율이 불현듯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데려가기라도 한 걸까. 추운 듯 옹송그린 자세로 어깨에 걸친 재킷을 여미며 정담을 나누는 그녀들을 보다가 다시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나 역시 진득하고 끈끈한 멜로디에 붙들려 책에 집중하지 못하던 상태였다. 정면에 명동성당과 남산타워가 보이는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바 콘셉트의 카페는 속된 말로 '분위기 깡패'였다. 테라스에 앉아있으니 유럽의 어느 도시에라도 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한 에스프레소 샷 위에 부드러운 크림과 소금이 첨가된 커피는 달콤함과 짭짤함으로 먼저 다가온 뒤 씁쓸함을 남기고 사라졌다. 커스터드 크림, 견과류 등으로 속을 채운 디저트 '까논치니'는 파삭하고 부서지는 파이 속에 달콤하고 부드러운 필링이 들어있어서 씁쓸한 커피와 잘 어울렸다. 이런 분위기에서 결혼 십 주년 기념으로 떠났던 사 년 전의 이탈리아 여행이 떠오르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겠지. 피렌체와 베니스의 유서 깊은 카페에서, 하얗게 햇살이 쏟아지던 광장을 바라보며 마시던 에스프레소는 새로운 차원의 맛이었다. 현지의 카페만큼은 아니지만, 이렇게 이탈리안 감성에 젖어들 수 있는 곳을 발견하니 그때의 설렘이 되살아나며 가슴이 콩닥거린다.


남산 위의 하늘이 서서히 분홍빛으로 물들어간다. 고딕 양식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위풍당당하게 솟아 있는 성당 건물에도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하나둘씩 켜지는 조명이 거리를 따스한 빛으로 채색한다. 밤은 낮과는 다른 세상을 우리에게 데려온다. 달뜬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고 주변의 자극에 대한 감도가 높아진다. 낮보다 진하게 공간을 채우는 음악 속에서 어둠색을 더해간다.


드르륵! 남편에게서 퇴근을 알리는 메시지가 왔다. 금요일이니 집밥 말고 외식하자는 그의 요청으로(정확히는 기한이 다 되어가는 식사쿠폰을 사용해야 한다는 독촉으로) 회사 근처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달콤한 시간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짧은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안녕, 나의 이탈리아!

치 베디아모!(다음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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