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과 보편성이 불러일으키는 감동
그녀는 나를 고얀 년, 더런 년, 망할 년, 혹은 그저 <불쾌한 계집애>라고 불렀다. 척하면 나를 때렸다. 특히 따귀를 때렸고, 가끔은 어깨에 주먹질도 했다.(「내가 참지 않았으면 쟨 벌써 죽었어!」). 그러고 나서 5분 뒤엔 나를 꼭 껴안았으니, 나는 그녀의 <인형>이었다. (중략) 어머니는 나를 치과 전문의, 기관지 전문의에게 데려갔고, 내게 좋은 신발과 따뜻한 옷, 선생님이 요구하는 학용품 전부(그녀는 나를 읍내 공립학교가 아니라 사립 기숙학교에 집어넣었다)를 신경 써서 갖춰 줬다. 가령 내가 반 친구 한 명이 깨지지 않는 칠판을 갖고 있다고 얘기하면, 어머니는 즉각 그게 갖고 싶은지 물었다. 「네가 다른 애들에 비해 넉넉하지 못하다고 입에 오르내리는 건 싫어.」 그녀의 가장 깊은 욕망은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 전부를 내게 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다는 것은 결국 그녀에게는 과중한 노동, 극심한 돈 걱정을 의미하는 거였다.
- <한 여자> 중에서
그녀는 더 이상 나의 모델이 아니었다. 나는 「레코 드 라 모드」를 넘기면 만나게 되는 여성스러운 이미지를 민감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프티부르주아인 학급 친구들의 어머니들은 그러한 여성적 이미지에 가까워서 날씬하고, 행동이 점잖고, 요리를 잘하고, 자신들의 딸을 다정하게 <사랑하는 딸>이라고 불렀다. 내 어머니는 너무 요란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다리 사이에 병을 끼고서 병마개를 딸 때면 눈길을 돌려 버렸다. 나는 그녀가 말하고 행동하는 거친 방식이 부끄러웠는데, 내가 얼마나 그녀와 닮았는지 느끼고 있는 만큼 더더욱 생생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른 세계로 옮겨 가고 있는 나는 내가 더 이상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내 모습인 것에 대해서 어머니를 원망했다.
- <한 여자> 중에서
나의 어머니와 동갑인 남편의 어머니는 여전히 날씬한 몸매에 얼굴에는 윤기가 흘렀고, 손은 말끔하게 손질되어 있었다. 그녀는 어떤 악보를 가져다줘도 칠 수 있었고, <접대>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실크 블라우스를 걸치고 진주 목걸이를 건 50대 여인, 텔레비전 통속극에서 볼 수 있는 <매력적으로 순진한> 타입의 여자들).
- <한 여자> 중에서
그녀는 시몬 드 보부아르보다 일주일 앞서 죽었다.
그녀는 받기보다 아무에게나 주기를 좋아했다.
글쓰기도 남에게 주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이것은 전기도, 물론 소설도 아니다. 문학과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이리라. 어머니의 열망대로 내가 자리를 옮겨 온 이곳, 말과 관념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서 스스로의 외로움과 부자연스러움을 덜 느끼자면, 지배당하는 계층에서 태어났고 그 계층에서 탈출하기를 원했던 나의 어머니가 역사가 되어야 했다.
-<한 여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