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볕 Dec 15. 2022

세상이 미워한 휴머니스트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를 둘러보는데 최근에 많이 회자되는 책이 보이길래 집어 들었어요. 하지만 구매해놓고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어요. 빨치산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죠.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라서 빨갱이, 빨치산 같은 단어에 거부감을 느끼는 데다, 아픈 현대사의 질곡을 담은 작품들은 대개 무겁고 울한 분위기라 읽기가 망설여지거든요. 흠, 그런데 책을 펼치니 예상외로 가볍디 가벼운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 본문 중에서



너무나 블랙코미디 같은 첫 문장을 보고 굳게 채워두었던 마음의 빗장을 슬그머니 풀고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어요. 저 같은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작가의 의도였다면 성공한 셈이네요. 화자인 '나'는 아버지의 죽음 후 3일간 장례식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처 몰랐던 아버지라는 한 인물의 삶을 되짚어갑니다. 그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종횡무진으로 누빈 빨치산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지만 패배했고 그에게 돌아온 건 감옥살이와 가난, 그리고 빨갱이라는 손가락질이었어요. 생활 능력도 없으면서 실속 없이 이웃들에게 퍼주기만 하다 뒤통수나 맞고 매일 사회주의 타령이나 하는 가난뱅이 아버지를 '나'는 우습게 여깁니다. 가족은 뒷전으로 하고 민중만을 챙기는 아버지와, 남편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면서도 결국은 뜻을 따르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부모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을 갖게 되죠. 하지만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풀어놓는 생전의 일화를 통해 따뜻하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었던 아버지의 면모를 알게 되면서 단단하게 뭉쳐있던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풀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잊고 있었던 어린날 아버지와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비로소 를 이해하고 포용하게 됩니다.


장례식장에서의 3일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화자인 '나'와 다양한 인물들의 일화가 펼쳐지기 때문에 작품은 해방 이후 70년간의 현대사를 폭넓게 아우릅니다. 그 가슴 아픈 서사를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녹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무겁지 않게 읽을 수 있어요.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우리 민족 특유의 해학적 정서가 녹아 있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인간이 자연스럽게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최대 규모는 150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를 넘어서는 국가나 공동체를 유지하려면 사상, 종교 등이 반드시 필요하죠. 이것들은 인류를 한데 뭉치게 하고 어느 한 방향으로 역사를 진행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히게 해서 씻을 수 없는 비극을 남기기도 합니다. 우리 현대사 역시 이념의 대립을 통해 많은 희생자를 낳았죠. 그 거센 물줄기에 온 몸을 던져가며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고자 싸웠던 빨갱이 아버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이념과 사상을 넘어서서 사람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순겡은 사램 아니다냐?"
"민족이고 사상이고, 인심만 안 잃으면 난세에도 목심은 부지하는 것이여."
한때 적이었던 사람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살아가는 아버지도 구례 사람들도 나는 늘 신기했다.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 본문 중에서


사상이나 이데올로기는 모두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죠. 그래서 사람은 그보다 앞서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국민학교 동창 박 선생과 평생 우정을 이어나가는 것이나, 자신을 감시하는 형사들과도 허물없이 잘 지낸 것 역시 이념에 앞선 인간애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긍제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아버지는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사람들조차 탓하지 않고 보듬어 안습니다. '사람이기에 그렇다'.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말이죠. 과 사를 넘나드는 빨치산 생활, 긴 감옥살이와 모진 고문을 견뎌낸 아버지이기에 누구보다 넓고 큰 마음으로 자신을 냉대하는 세상을 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대안으로 빨치산이 되길 선택했지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득세한 세상보다는 이념을 벗어나 서로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꿈꿨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달픈 인생을 살면서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았던 휴머니스트 아버지를 이해하고 포용하게 되는 이 책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어요.


나의 비극은 내 부모가 빨치산이라서 시작된 게 아니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 자체가 내 비극의 출발이었다. 쉰 넘어서야 깨닫고 있다. 더 멀리 더 높이 나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복도 아름다움도 거기 있지 않다는 것을. 성장하고자 하는 욕망이 오히려 성장을 막았다는 것을. (중략)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책의 화자인 '나'는 여러 모로 저와 닮은 것 같아요. 사람을 잘 믿지 못하는 냉소적인 성향이나, 한 때 부모에 대한 원망을 품고 산 적이 있다는 면에서요. 부모가 하늘이었다가, 자신만의 세계가 형성되면서 부모를 원망하다가, 다시 부모를 이해하고 포용해 가는 수순이 인간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쉰이 넘어서야 돌아가신 아버지를 이해하고 그리워하는 작가의 사부곡이 먹먹한 여운을 남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프랑스 어머니라고 다르지 않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