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어휘력>을 읽고
1. 책을 읽는 행위란 나에게, 내가 사랑하거나 사랑할 이들에게 당도할 시간으로 미리 가 잠깐 사는 것이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이라 당장 이해하기 힘들어도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모양이군.' 하는 식의 감(感)을 얻는다. 신비로운 일이다. 정신 밭에 뿌려둔 감(感)이라는 씨앗은 여하튼 어떻게든 자란다. (중략) 이해하지 못하는 책을 그래도 읽는 게 좋으냐는 질문에, 내 의견을 말했다. "이해하지 못해도 읽으면 좋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못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잊고 살다 어느 순간 찾아옵니다. 이제 이해할 수 있을 때가 된 거지요. 그때 다시 읽으면 기막힌 내 이야기가 됩니다." p.26
2. 언어는 나다. 나의 세상은 언어의 한계만큼 작거나 크다. p.49
3. "물건은 고쳐 써도 사람은 고쳐 쓰는 것 아니다."라고 하는 말도 서늘하다. 무슨 뜻을 전하고 싶은지는 잘 알겠다. 그러나 표현이 과격할 뿐 아니라 분수없다. 누가 사람을 고치고 누가 사람을 쓴단 말인가? 조물주라도 되는가? 사람은 물건이 아니다.
'몸값'이라는 어휘는 나만 불편할까. '트레이드 머니(Trade money)', '이적료'라는 용어가 멀쩡히 있는데 무슨 인신매매단도 아니고 기어이 '몸값'이라 하는 심리는 뭘까? 선수의 실력과 조건, 잠재력에 매기는 가치지 몸뚱이를 보고 쳐주는 값이 아니니 뜻을 제대로 옮긴 것도 아니다. 방송이나 언론에서 아무렇지 않게 몸값 운운하는 걸 들으면 낯 뜨겁다. (중략) 우리는 어휘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졌다. 영혼을 베는 말과 일으키는 말,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p.109-113
4. 만나서 얼굴 보며 대화 나누는 일은 드물다. 온라인에서 다른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을 습관적으로 '본다'. (중략) 랜선 친구는 현대인의 인간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상처받고 싶지 않고 손해 보고 싶지 않고 골치 아파서 거두어들인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 진정한 공감이나 소통보다 자신의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덮어줄 도구로서 기능해주기를 바라는 관계, 알고 싶은 것만 더 많이 알고 싶고 알고 싶지 않은 것은 계속 알고 싶지 않다. p.152-153
5. 자신이 가진 지독한 고정관념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스타인처럼 주변에 있는 물건, 음식, 방 등에서부터 깨뜨린 고정관념은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사랑이나 행복, 돈, 성공 등으로 연결될 것이다. 고정관념을 파괴하면 사고의 한계를 확장할 수 있다. (중략) 고정된 정의에서 벗어나 보는 방식이 달라지면 어휘의 쓰임새가 달라진다. 어휘의 쓰임새가 달라지면 의식의 세계가 커지고 깊어진다. p.291-292
6. 한갓지게 커피 한 잔 음미하듯 낱말을 음미해 보자. (중략) 낱말을 뒤 살피고 음미하면 뇌의 뉴런이 새로운 연결망을 생성한다. 그 낱말에 어울리는, 혹은 너무 어울리지 않아 아이러니한 경험이나 생각이 떠오른다. 붙잡아 글로 앉혀보자. p.295
7.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달변의 조건이 있다면 인간을 이해하는 것, 그중에서도 앞서 오뒷세우스가 연설했듯 '우리의 몸에서는 가슴이 손보다 더 유능하고 우리의 모든 힘은 거기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사람은 머리로 안다 해도 가슴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변화하지 않는다. p.3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