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딩디리링 딩딩딩, 딩딩디리링 딩딩딩~
벌써 몇 분째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우리 집이냐고? 아니, 윗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우리 위층 이웃은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잠을 자는지 늘 알람 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린다. 거의 우리 집 천장에서 들리는 수준이랄까. 베개로 귀를 막아도 소용이 없다.
"아, 제발 일어나서 알람 좀 끄면 안 되나?"
내 탄식을 들었는지 알람이 조용해진다. 그러더니 조금 후에 들려오는 소리.
쪼르르르르르륵~
이번엔 욕조에 물을 받는 모양이다. 윗집엔 할아버지가 사시는 것 같은데(기침소리나 기상 시간으로 미루어볼 때) 아침마다 목욕을 하시는지 꽤 긴 시간 동안 저렇게 물을 받는다. 윗집이 이사 오고 난 후 매일 아침마다 알람 소리와 목욕물 받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있다.
윗집이 이사 오고 달라진 아침
올빼미 족인 나는 평소에 새벽 2~3시에 잠들어서 아침 8시경에 일어나는데 요즘은 매일 새벽 6시 반이면 시작되는 소음으로 괴로움을 겪는다. 노인 분이라 아침잠이 없는 걸 이해해 보려 해도 수면 부족에 시달리다 보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결국 다시 잠드는 걸 포기하고 일어나 앉지만 몽롱해서 집중이 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커피도 별 소용이 없다. 잠이 부족하면 각종 질병 위험도 높아진다는데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환경을 바꿀 것인지, 아니면 내가 바뀔 것인지. 이 정도의 생활소음을 층간소음으로 항의할 수는 없으므로 결국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결코 도전할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미라클 모닝에 도전하게 되었다. 어차피 강제 기상을 해야 한다면 수면시간을 바꿔서 새벽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갓생', '습관 만들기'가 인기 키워드인데 이 기회에 트렌드에 편승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트렌드코리아 2023>에 따르면 큰 성공이 어려워진 저성장기 시대에는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자아의 의미를 찾는다고 한다. 평범한 인생일지라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기 다짐적 삶을 살아내며 바른생활과 일상력을 추구한다는 것이다.(74p)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나 역시 블로그에서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는 이웃들을 보며 한번 동참해 볼까, 하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윗집 할아버지로 인해 그 실행을 앞당기게 될 줄이야.
혼자 결심하면 아무래도 작심삼일이 될 수 있으니 블로그에 미라클모닝 일기를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다분히 강제성을 띤(?) 새벽 기상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첫날부터 실패할까 봐 걱정하며 잠들었는데 다행히 아침 6시 50분에 알람을 듣고 눈을 떴다.
잠기운이 가득한 채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간다. 아침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은 후 주전자에 찻물을 끓인다.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열기가 퍼지자 썰렁했던 주방이 아늑해진다. 보이차를 한 컵 타 들고 거실 테이블에 앉는다. 이제는 모닝페이지를 쓸 차례.
어떻게 쓰는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의식의 흐름에 따라 3쪽을 적는 거란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자유롭게 적으며 덕지덕지 붙어있는 잠기운을 떼어낸다. '근데 이거 이렇게 막 써도 되나? 에이, 어차피 나 혼자 볼 건데 뭐'. 모닝페이지는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 좋다.
글을 쓰다 보니 남편이 일어난다. 하품을 하며 힘껏 기지개를 켜더니 휴대폰을 들고 욕실로 씻으러 들어간다. "따라라라라라 따라라라라라라라 따라라 라라라 라라라라~" 욕실에서 흘러나오는 친숙한 멜로디, 그리그의 페르귄트 모음곡 1번 '아침의 기분'이다.
남편이 언제부터 클래식을 들었지? 유튜브 알고리즘이 추천한 아침음악이든 그의 선곡이든 어쨌든 실내를 채우는 상쾌한 멜로디가 내 첫 미라클 모닝의 성공을 축하해 주는 듯하다.
중요한 건 나에게 맞는 생체 리듬
그렇게 작년 12월에 미라클 모닝을 시작한 후 20일간 새벽 기상을 지속했다. 일주일만 성공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무려 3주를 채울 줄은. 사실 미라클 모닝을 하면서 성취감과 만족감이 커서 할 수 있는 한 계속하려 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일어나려면 적어도 자정에는 잠들어야 하는데 취침시간에 적응하는 것이 영 힘들었다. 늘 새벽 2-3시에 자던 습관 때문에 12시 전에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수면시간이 부족한 채로 무리하게 3주간 미라클 모닝을 지속하다 보니 컨디션이 저하되었는지 덜컥 코로나에 걸려 버렸다. 슈퍼 유전자는 아니지만, 영양제도 잘 챙겨 먹고 휴대용 손소독제도 가지고 다녀서 그동안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무리한 새벽기상으로 몸이 약해진 틈을 타서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 같다.
어쨌거나 코로나에서 회복된 지금 다시 미라클 모닝을 계속해야 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깨어있는 소수만이 누리는 새벽의 고요함을 이미 느껴봤기에 다시 그 마법 같은 시간에 동참하고 싶은 욕구가 내 안에서 꿈틀댄다. 하지만 늦은 밤 은은한 조명을 켜 놓고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편안함도 거부할 수 없다.
일찍 일어나는 새와 심야의 올빼미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계속 고민 중이다. 혹자는 이런 나를 두고 당연히 얼리버드가 되어야지 뭘 주저하냐며 의아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수가 선택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내 생체리듬을 고려해서 하루를 가장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고자 한다. 미라클 모닝이 반드시 새벽에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니니, 내게 맞는 시간에 일어나 기도, 독서, 글쓰기, 운동 등 나만의 생활 습관(루틴)을 행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참,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윗집 할아버지도 요즘은 늦게 일어나시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나도 푹 잘 수 있고. 그동안 할아버지도 미라클 모닝을 하셨던 걸까. 처음의 결정이 강제적이었다면 이제 두 번째 결정은 온전히 내 몫이다. 잘 생각해 봐야겠다.
※ 구독과 ♡는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