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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볕 Jul 03. 2021

우리 동네 시장 이야기

재래시장, 어린 날의 기억의 한 축


우리 동네에는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다. 돼지고기로 만든 떡갈비 하나에 천 원, 녹두빈대떡 하나에 사천 원, 칼국수 한 그릇에 삼천 오백 원이라는,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물가를 자랑한다. 유명한 평양냉면 맛집도 근처에 자리하고 있어서 가끔 들러 사 먹곤 한다. 굳이 뭘 사지 않고 그냥 구경만 하는 것도 재미있다. 우울할 때는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방문하기도 한다.


사실 이 동네는 내 고향이다. 성인이 된 이후 타 지역에서 살다가 몇 년 전 다시 고향으로 이사 왔다. 다른 곳은 다 변했지만 시장은 옛 모습이 일부 남아 있어서 어릴 적 추억 떠오르게 한다.




어릴 때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보시곤 했는데 혼자 가기 심심하셨는지 늘 큰 딸인 나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으셨다. 그러면 나는 간식이라도 얻어먹을까 해서 얼른 엄마를 따라나서곤 했다.


엄마는 반찬거리를 할 채소와 생선, 고기를 주로 사시고, 가끔은 그릇이나 간식거리를 사시곤 했다. 내 기억에 엄마는 거의 군것질을 하지 않으셨는데 순대는 좋아하셨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가 이런저런 분식류를 파는 가게 앞에 멈춰 서시더니 순대를 주문하셨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순대를 본 날이었다. 주인은 뜨거운 김이 나는 솥에서 길고 시커먼 가래떡 같은 걸 꺼내더니 무심하게 툭툭 잘라 비닐봉지에 소금, 후추와 함께 담아주었다. 엄마는 상기된 표정으로 순대 봉지와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셨고 여느 때와 다르게 바로 저녁을 차리지 않으시고 순대 봉지부터 열어보셨다.


"이거 맛있는데 한 번 먹어봐."


나와 동생들은 징그러워서 안 먹겠다고 손사래를 쳤고 엄마는 이 맛있는 걸 왜 안 먹냐는 표정으로 순대를 집어 맛있게 드셨다. 그날의 젊은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유년 시절을 떠올려보면, 아빠는 무뚝뚝하셔서 별로 대화가 없었고 엄마가 주로 우리 양육을 담당하셨다. 나와 동생 둘, 세 명의 자식을 키우느라 엄마는 늘 바쁘고 피곤해 보였다. 따스한 정서적인 보살핌보다는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잘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셨고, 매우 엄하게 키우셔서 엄마와의 따스한 교감이랄 게 별로 없었다. 하지만 늘 자식 셋에 치이다, 나 하나만 데리고 시장에 가시는 날엔 엄마는 평소보다 훨씬 다정하고 부드러워지셨다. 내가 사달라는 꽈배기나 잡채도 혼내지 않고 잘 사주셔서 그날은 꼭 외동이 된 기분이었다.


당시 시장 안에는 'OO주단'이라고 이름 붙은 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골목이 있었는데, 꽤 규모가 큰 한복집과 이불 집이 많았다. 엄마는 그 골목의 단골집에서 철마다 이불을 맞추기도 하셨고, 명절에 동생들과 내 한복도 맞춰 주셨다. 친정집 앨범에 있는, 알록달록한 색동 소매가 달린 저고리에 빨간 치마를 입고 빠진 이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는, 어릴 적 사진 속의 내가 생각난다.




지금은 그때보다 규모가 훨씬 작아졌지만, 우리 동네 시장은 여전히 이 지역 대표 재래시장의 명맥을 유지한 채 새로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가끔 유년시절이 그리워질 땐 시장을 간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면 느껴지는, 온갖 식재료가 어우러진 시장 특유의 냄새와 시끌벅적한 소리에 휩싸인 채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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