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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밤 Jun 14. 2021

엄마와의 27년 만의 싸움


그는 전화를 서둘러 끊으려고 했다. 내 말이 다 떨어져 가는 걸 짐작한 까닭이다. 전화기 너머로 기다리기를 그만 두려는 것 같다. 조금만 더 있어주면 나는 이 문장을 다 완성할 수도 있는데, 전화를 끊으려는 것이 잘 보여서 만들던 말을 그만두었다. 그는 서둘러 끊었다. 잘 있고.


기다린다는 것. 

안 올지도 모르고 먼저 떠날 수도 있지만 거기 남기로 하는 것. 온종일 그곳의 해와 함께 하기로 하는 것. 그림자가 짧아졌다가 길어졌다가 사라지는 것에 초조해하지 않는 것. 거기서 나의 일을 하며 넉넉히 있기로 마음먹는 것. 그는 나에 대해서라면 한 번도 초조한 마음을 비친 적이 없다. 이제 막 탄생하려는 나의 말과 완성되지 않은 몸짓을 모두 기다려주었다. 한 걸음이 있기 전, 무수한 넘어짐을 본 사람. 


나는 그로부터 태어났고, 자랐으며, 해를 함께 맞았다.
그의 곁에서 머문 시간만큼 떠나 있기도 했다. 



짐작대로, 그는 나의 엄마다.

우리는 최근 크게 싸웠다. 이 싸움에 엄마와 나 사이에 있는 27년의 시간이 모두 참여했다. 자신의 시간을 다 들여서 내게 소리를 낸 엄마와, 전력을 다해 집에서 나온 내가 있다. 정류장으로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이제 우리에겐 어떤 시간이 필요할까. 이 시간을 넘어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그런 시간으로는 속을 알 수 없다. 토성 정도 되는 아주 무거운 질량의 편지를 쓰기로 했다. 이 편지는 너무 무거워서 돌아다니면서 읽을 수 없을 것이다. 27년 정도 되는 시간을 제대로 깁기 위해서는.  


이십 대에는, 서른 살 중반이라는 나이가 되면 다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다 말이다. 얼마나 현명하고, 지혜로워져서, 대 싸움의 나날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 것은 하나도 없이 나도 엄마도 모두 처음 살아보는 나이에 서로가 낯설다. 우리는 벌써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않았니. 그러나 여전히 하나도 모르겠다는 사람처럼 군다. 


아까의 전화는 갈비 때문이었다. 회사가 보낸 갈비. 회사는 왜 보내는지 연유를 동봉해도 좋았을 테지만 그런 것은 없이 그저 도착했던 것 같다. 이게 다 뭐냐는 전화에 자리에서 말할 수 없어서, 문자로 대답하겠다고 했다. 승진 선물이래요. 맛있게 드세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다시 걸 수도 있었다. 그 편이 더 좋았을텐데. 날씨가 덥다는 얘기로 서둘러 지나갔다. 


여름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벌써 지치는 일은 안된다. 미워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조금 덜 가여워하고, 어쩔 수 없이 사랑하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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