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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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지만 반복되는 계절의 속성과 사랑은 닮은 것 같다.
계절이 그렇듯 사랑도 한 가지 모습으로 유지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런 숙명일까?
사실 나는 모든 사랑의 방향이 평행선으로만 흐를까 봐 두려웠는데 계절처럼 순환하는 사랑의 존재와 방법을 깨달아 간다.
해가 지날수록 계절을 느끼는 감상, 좋아하는 계절과 이유가 달라지듯,
사랑의 변모 과정을 몇십 번씩 거치다 보면 사랑과 상대를 품을 감정의 품이 넉넉해지는 것 같다.
아마 이건 그 사랑을 오래 직면하고 지켜내고 지내본 끝에 받을 수 있는 보상이겠다.
선인장에 피는 꽃처럼 말이다.
알랭 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이나 긍정적인 찬가, 낭만적 시각보다는 우리가 현실적으로 겪을 '그 후의 일상'에 방점을 두고, 그 일상을 자근자근 좇으며 현실적이고 통렬한 각주를 달아놓는다. 그 각주는 낭만주의적 결혼관을 분해하고 사랑에 대한 저마다의 이상이 있는 독자들의 마음에 무거운 추를 달아놓는 듯 하지만, 오히려 그 섬세한 분해와 해설 덕분에 내가 인지하지 못하던 내 마음과 무의식에 대한 해답을 얻게도 한다.
사랑의 탄생 과정을 로맨틱하게 보여주는 드라마적 전개에 집중하기보다, 사랑에 대한 특수한 이상이 탄생되는 지점, 주인공들의 마음의 기원을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보여주어 주인공의 선택을, 나아가 한 사람 자체를 입체적으로 이해시킨다.
멀리서 두 주인공의 삶을 한 번에 조망하는 우리는 주인공들의 말이나 행동, 의도와 선택을 비정상적이고 별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가 사랑을 하는 모습을 책으로 엮어 보이고 독자들에게 그 기원을 탐색하도록 해본다면 그보다 별나지 않다는 보장도 없다.
'알맞은' 상대를 찾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라 최면하고 강조하는 현대의 매체, '알맞은 상대에 대한 기준'을 끊임없이 줄 세우는 사회 속에서 낭만주의보다 더한 판타지를 느끼기도 한다. 이것 저것이 더해지고 투사로 점철된 알맞아 보이는 상대를 찾아 나서는 여정보다는 '낭만적 사랑 그 이전, 그리고 그 후의 일상'에서 상대를 위해 알맞음으로 향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하는 게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나도 라비와 커스틴처럼 다른 면을 가진 이에게 느낀 매력이 사랑의 불씨가 된 적이 많았다. 비슷한 것은 서서히 스며서 잘 캐치하지 못하지만, 다른 것은 눈에 즉시 띄어 압도하기 때문일까. 이건 책에서도 말하듯 어쩌면 타인으로부터 부족한 면이 채워지길 바라는 인간의 본능일지 모른다.
단테의 이상의 여인, 베아트리체와의 첫 만남을 묘사했다. 단테가 바라보는 베아트리체는 이상화가 만든 신화적 연극 혹은 피안의 세계 정령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투사 어린 시각은 역설적으로 자신과 대상을 현실과 이상, 만날 수 없는 두 차원으로 분리시킨다.
그런데 이런 다름에 대한 갈구도 라비와 비슷한 그릇된 '완벽주의(267p)' 추구하는 모습이 아닐까? 상대가 이미 가진 것으로 나를 채운다는 것. 진짜 나의 결핍이 채워지는 것일까? 전제가 틀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상대는 완벽한 걸까? 나도 상대가 나의 단면만 보고 ‘완벽하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아직 많이 설익은 인간이고 그런 나의 면을 많이 마주하며 실망하고 슬퍼하고 반성하는 경험을 반복하니까.
상호보완이 똑딱 퍼즐처럼 맞춰지며 삶의 난이도가 떨어지는 결혼도 좋겠지만, 비슷한 결핍이 있어도 함께 고민해 길을 찾고, 먼저 도착한 사람이 좀 이끌어주고 하는 것도 함께 온전함으로 가는 여러 갈래 길 중 하나 아닐까?
단테의 정신적 여정, 마틸다로부터 연옥에서 정화된 인간성을 부여받는 연옥에 인도받는 장면을 묘사했다. 붉은 옷의 단테 옆에는 영혼의 여정의 길을 이끄는 인도자인 'Virgilio_비르길리오'(인간 이성과 지혜의 상징), 이상으로 가기 전 현실에서 정화된 영혼을 준비시키는 중개자 'Matelda_마틸다'가 보인다. 이 과정 이후 단테는 천상에서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난다.
사랑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가 있다는 암시, 낭만과 이상화 속에서 방황하는 자신을 버리고 기꺼이 다시 시작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 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65p)
위태한 도박을 확신의 승리로 매듭짓는 건 자신에 대해 무수히 탐구하고, 타인에게 내가 기대하는 완벽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결혼해서 어떤 좋은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무래도 도박과 같긴 하지만 해보지 않을 이유는 무엇일까.
좋은 것이 분명 있다고 확신을 받아야만 결혼하는 것이 진짜 사랑다운 행동이 맞을까? 우리의 사랑은 견고해, 무슨 일이 일어나도 깨지지 않을거야! 보다는, 흠집이 났네, 지금이라도 알아차려 다행이야, 안전하게 보강해야겠다, 혹은 애초에 상처 내지 않도록 소중하고 애지중지 살피고 다루겠다는 마음가짐을 기본으로 결혼생활을 하는 게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 없으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게 정상이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을 정확히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하지 못한다.” (280p)
맞다. 일생 동안 나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기도 어렵고 평생을 수행해야 할, 어쩌면 완수하지 못할 과제일 수도 있을 텐데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게 가능할까?
그래서 그냥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뛰어들어 같이 헤엄쳐 갈 용기가 있기를,
그리고 나와 그의 성장에 대해 오래도록 의논하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은 사랑하지 않아서, 싫증 나서라기보다 내가 충분히 사랑받고 있지 않아서, 외면당해서, 분노해서 외도를 저질렀다는 라비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라비가 선택한 방식에서는…그 한순간의 치켜드는 분노나 서운함, 혹은 매혹의 순간, 성적 충동을 우위로 택한 외도 행위가 ‘상대의 영혼을 파괴할 수도 있는 일’ (설령 더 이상 상대를 사랑하지 않더라도)이라는 것을 떠올렸다면.. 하는 아쉬움과 원망이 남는다.
그치만 커스틴의 회피와 무심함도 '하나의 배신'이라는 점도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연인에게 약해질 수 있는, 강해질 수 있는 용기를 둘 다 주는,
혼자 외롭게 타다 남은 재로 마음이 새카맣게 뒤덮이지 않도록 시원한 물줄기가 되어주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라비가 자신이 단 한번 결혼했다는 것은 순전히 언어적 표현일 뿐이라고, 사실은 커스틴이라는 한 사람과 살며 수많은 진전, 단절, 재협상, 소원한 기간, 감정적 회귀가 깔려 있어 사실상 그는 적어도 열두 번의 이혼과 재혼을 겪어온 셈이다. 오직 한 사람과 말이다.” (277p)
결국에는 되돌아온다는 말을 하고 싶다. 처음 빠졌던 사랑과 같은 사랑의 모습은 아닐지라도, 더 깊어지고 더 많은 감상과 이해를 지닌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