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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진한 Jul 19. 2022

원더풀 라디오

초등학교 4학년 무렵부터 고등학교 때까지는 라디오를 참 많이 들었다. 특히 초등학교 방학 때는 거의 라디오와 살았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 그때부터 가끔 관제엽서라는 것을 사서 사연과 신청곡을 무수히 보냈지만, 거의 대부분 방송을 타지 못했다. 딱 한 번, 신애라의 "오늘 같은 밤엔"이라는 심야 프로에 친구 생일 축하 사연을 보낸 것이 방송을 탔는데, 녹음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벌벌 떠느라 결국 녹음을 하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히 '다시듣기'란 건 없던 시절이어서 그야말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


 시절엔 정말 내가 원하는 노래를 듣기 위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신청곡을 보냈다. 테이프와 CD 있던 시절이지만   듣자고 모든 가수의 음반을  모을 수는 없었으므로, 라디오에서 좋은 노래를 들으면 그야말로 기분이 날아갈  같았다. 카세트에 공테이프(  자체를 오랜만에 하는 ) 끼워넣고 노래가 나오면 녹음을 해서 듣기도 했는데, 노래 중간에 DJ 멘트가 나오거나 노래 끝나기 전에 광고가 나오면 '망했다' 녹음을 멈췄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순수한 엄격함(?).


요새 라디오를 많이 듣다 보니 가끔 사연이나 신청곡이 소개된다. 지금은 음원 사이트들이 있어 앨범을 사지 않아도(하긴 40대 이상이 들을 앨범 자체가 흔치도 않고) 원하는 노래만 콕 집어 반복해서 듣기가 편해졌지만, 그래도 "변진한 님의 신청곡인데요" "5315님이 신청해 주셨어요" 하는 멘트와 함께 그 노래를 라디오로 듣는 기분은 색다르다. 그리고 가끔은 커피 쿠폰 같은 선물을 받기도 한다. 선물을 받으려고 라디오를 듣는 것은 아니지만, 30여 년 전 묵은 한(?)은 이제 거의 씻어냈다.


이제 라디오에 노래를 신청하는 것은 정말 노래를 듣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은 안다. 하나의 주파수를 통해 흐르는 소리를 공유하는 청취자들끼리 느끼는 알 수 없는 뿌듯함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그 사람들과 함께 듣고 싶은 건전한 욕심을, 그리고 사랑하는 DJ들의 목소리로 내 사연이 읽히기를 바라며 기다리는 시간의 달콤함을.


얼마 전 "김이나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는데, 사연을 보낸 사람의 나이를 밝혀야 했다. 별밤은 나의, 아니 우리의 10대를 함께한 방송인데... 20대 이하가 가끔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30~50대였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하지만 그 시절 라디오 전성 시대 때는 유튜브는커녕 TV도 공중파 방송국 서넛뿐이었으니, 이젠 놀랄 일도 아닐 것이다. 나이 든 매체가 되어가는 라디오가 언젠가 소멸의 길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는 라디오의 소중함을 느끼며 듣고 쓰고 같이 숨쉬어 볼까 한다. 오늘 듣고 싶은 노래는 김현철의 "wonderful radio".


- 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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